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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5·18은 광주가 아니라 대한민국이었다
입력 : 2019년 05월 20일(월) 00:00


1980년 5월 18일에 저는 전남대학교 사범대학부설 중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학동에 살았는데, 가족의 눈을 피해 잠옷 속에 교복을 입은 채, 몰래 자전거를 끌고 대문 밖으로 나와 잠옷을 벗어 가방에 넣고 광주 시가지를 매일 돌아다녔습니다. 이후 39년 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제가 본 시신의 수가 공개 자료보다 훨씬 많아, 왜? 숫자가 틀리지… 하며 지인들에게 말하면 저는 거짓말쟁이가 되었습니다.

또, 제가 본 시민군들은 광주사람 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절 제가 아는 대학교는 전남대학교와 조선대학교만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시민군 지프차 꽁무니에 매달린 삼각 깃발에는 경상대, 부산대 그리고 많은 수의 모르는 대학의 이름을 분명히 봤던 기억이 있어서 주변 분들에게 말하면 역시나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언론에 나왔던 5·18 진상규명 중에 시신 일부를 공군 수송기로 옮겼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비로소 39년 만에 저 자신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학생이었던 제가 화정 사거리에서 겪었던 이야기 하나를 해볼까 합니다. 사거리에서 보니 송정역 방향 도로에 다 타버린 버스와 폐타이어 그리고 쓰레기더미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모자와 복면을 한 총을 든 시민군들이 있었습니다. 자전거를 끌고 가까이 가려 하니 위험하다며 돌아가라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가지 않고 계속 주위를 얼쩡거리니 한 시민군이 오라며 손짓을 했습니다. 바리케이드 옆 커다란 나무 아래로 가니 빵과 음료수를 건네며 경상도 사투리로 한 시민군이 말했습니다.

“저기 저 탱크들 보이나?”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 탱크 부대의 대장이 내 작은아버지다, 조카인 나는 민주주의를 위해 작은아버지를 향해 총을 겨눴다. 내가 너를 오라 한 것은 절대 죽지 말고 살아서 이 사실을 알리라는 뜻이다.”다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여기에 있는 수많은 시민군들은 내일 뜨는 해를 못 볼 것이다. 너는 집으로 가 내일 또 내일의 해를 보고 있다가 오늘의 사실을 알려야 한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경상도 시민군 형님, 이제야 용기 내어 기고문에 당시 사실을 적습니다. 죄송합니다. 서호준 (나눔문학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