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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진의 어떤스케치- 노벨문학상 논란 착잡하다
입력 : 2019년 10월 14일(월) 18:45


인류가 멸망의 길로 들어서는 것인가.

노벨 위원회가 인간의 존엄과 인류의 미래를 포기한 것인가.

세계 최고 권위의 노벨문학상 논란과 위원회의 해명, 미래를 절망스럽게 만든다.

올 노벨문학상 수상자 중 한명인 오스트리아 페터 한트케를 놓고 거센 비판과 후폭풍이 일고 있다.

페터는 알바니아 민족 집단학살, 인종청소 등을 부정하고 옹호해온 인물이다. 심지어 인종청소의 주범인 전범 밀로세비치 전 세르비아 대통령옹호자다.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집단학살 생존자들은 물론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펜클럽 등 문단과 언론인들까지 나서 노벨의 처사를 비판하며 노벨상 수상 취소를 주장하고 나섰다.

더 절망적인 것은 노벨 위원회의 설명이다. ‘정치적인 상이 아니라 문학상이다. 문학적이고 미학적인 기준으로 선정했을 뿐’이라는.

문학이나 음악 등 인문지녕 인사들의 심각한 친일 행적과 해방후 남한 사회에서 이들이 사회적 권력을 독식해온 것을 지켜본 우리로서는 남일 같지 않다.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엔 이들의 친일 행각을 꺼낼수도 없었다. 독재정권의 레파토리가 ‘정치는 정치고 문학은 문학’이다.

21세기, 세계 최고의 독립적이고 존경받는 재단이 같은 단어와 뉘앙스를 들고 나온건 세기의 불행이다. 과거 치부를 드러내서는 안되는 독재정권이야 그렇다치고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지닌 세계 최고 권위의 위원회 발언에 인류의 암울한 미래가 어른거린다.

‘정치상이 아니’라는 노벨위원회의 설명은 인류에게 불행하다. 비정치적이어서가 아니라 너무 정치적이어서다. 인류나 생명에 대한 존중이 어떠하든, 기교만 빼어나면 된다는 메시지를 줄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불행한 문학적 메시지라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강력한 정치적 함의를 던진다. 나치 협력자더라도 빼어난 문학적 성취만 있으면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노벨이 정치상이 아니라고? 과거 보리스파르테르냐크의 ‘닥터지바고’ 노벨상 수상 선정 과정에 미국 정보국이 깊숙이 관여했다는 것은 너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데도 정치니 문학이니 수식어를 동원하는 위원회의 설명은 21세기 비극의 한 전형이 아닐 수 없다.

영국 가디언지 기자이자 작가인 에드 불리아미의 칼럼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가디언에 실은 지난 12일자 ‘페터 한트케 노벨상은 집단학살 피해자들의 치욕’이라는 칼럼을 통해 노벨문학상을 통렬히 비판했다. 불리아미는 페터가 이 강제수용소 존재를 부정해왔고 유럽 한복판에서의 집단학살 옹호자라고 지적했다. 그는 1992년 밀로세비치의 보스니아 강제수용소 집단학살을 발굴 보도한 기자다. 불리아미는 노벨문학상이 문학적 기교도 중요하지만 ‘도덕’도 중요하다며 시인 에즈라 파운드를 예로 들었다. 에즈라 파운드는 20세기 미국의 가장 영향력있는 시인 중 한명이었으나 파시즘과 끔찍한 반 유대주의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불리아미가 언급한 까뮈의 노벨상 수락연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작가의 의무란 쓰는 것 이상일 뿐아니라 진실을 증명하는 것’.

조덕진 아트플러스 편집장 겸 문화체육부국장 mdeung@sr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