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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순댓국에 막걸리 한사발이 그립다
입력 : 2019년 11월 14일(목) 16:11


문대통령-5당대표 청와대 회동
서민경제 화두된 ‘막걸리 정치학’
박정희·노무현 막걸리 사랑 각별
이낙연, 아베에 선물 국제적 관심
주요 미덕 중 하나로 ‘소통’ 꼽아
문재인 대통령이 2015년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시절 전북 전주시 서신동의 한 막걸리 집에서 시민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단골 막걸리집에 손님이 없는 이유가 막걸리 가격(3000원)이 부담스러워 더 싼 편의점으로 발길을 돌리기 때문이라고 식당 주인이 말 하더라.”

지난 10일 열렸던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들의 청와대 만찬 테이블에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꺼낸 이야기다. 서민경제의 어려움을 막걸리에 빗대 전한 것이다. 당시 청와대 만찬주는 공교롭게도 막걸리. 선거법 개정을 둘러싸고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손 대표 사이에 가시 돋친 설전까지 오가면서 온라인상에서는 ‘막걸리 고성’이란 뒷말을 낳았다. 막걸리가 다시 화제다. 이날 만찬을 계기로 각종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등에 오르면서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자신의 트위터에 ‘행정안전부 직원들과 한잔’이라는 글과 함께 게시한 사진.
정치와 막걸리의 인연은 깊다. 서민 이미지와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대표적인게 대통령의 ‘농주(農酒)’. 메시지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사진과 영상 한 컷이 주는 울림이다. 모내기·추수철 등 농번기 때면 농로에 앉아 양은주전자에 담긴 막걸리를 반주로 시원하게 들이켜는 대통령의 모습. 대나무로 엮은 정갈한 소반에 보리밥과 먹음직한 김치와 나물, 국수 등 새참과 함께다.

막걸리 하면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빼 놓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은 논설위원·출입기자단 등과 막걸리 파티를 자주 했다. 청와대 밖에서 돌아다니는 민심을 듣기 위해서였다(남재희 『언론·정치 풍속사 - 나의 문주(文酒) 40년』’. 밀로 빚은 막걸리가 등장한 것도 이 때다. 식량난을 이유로 막걸리 제조 원료를 쌀에서 밀가루 등으로 바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막걸리 사랑도 각별했다. 2005년 5월 중순께, 녹색농촌 체험마을 사업을 시작한 충북 단양군 가곡면 한드미 마을을 찾았을 당시 일화 한 토막. 마을에서 내놓은 막걸리를 “참 맛있다”며 여섯 잔 연거푸 들이켰다고 한다. 이날 맺어진 인연 덕분에 청와대 만찬과 행사 테이블에 이 막걸리가 오르기도 했다. 퇴임 후에도 여전했다. 봉하마을에서 454일간의 기록을 담은 영화 <시민 노무현>엔 찾아와준 사람들에게 막걸리를 건네는 소박한 그의 일상이 담겼다.

현대 정치사의 아픔과 궤를 같이했다. 희노애락을 서민들과 함께해서다. 유신독재는 막걸리에 취한 김에 대통령 욕을 했다고 붙잡혀 가던 엄혹한 시대였다. 술집에서 취중 발언 탓에 수사를 받는 경우가 생기다 보니, ‘막걸리 반공법’이란 웃지 못할 조어까지 생겼다. 혼탁선거의 대명사로 꼽히기도 했다. 고무신과 함께 부정·관권 선거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5당 대표의 만찬회담에 오른 송명섭막걸리.
국제적인 관심도 받고 있다. 막걸리 사랑이 유별난 이낙연 국무총리 덕분이다. 그는 역대 최장수 총리다. 한일 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지난달 24일 아베 총리와 만나 문 대통령 친서와 함께 막걸리를 선물했다. 여기엔 잘 알려지지 않은 스토리도 있다. 일본에서 ‘사케 神’으로 떠받들어 지는 ‘수수보리’는 서기 300년께 막걸리를 일본에 전래한 백제사람 ‘인번’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종호는 저서 『막걸리를 탐하다- 한국 막걸리의 맛과 멋을 찾아서』를 통해 주요 미덕중 하나로 ‘소통’을 꼽았다. 그는 막걸리의 5대 미덕으로 ▲허기 다스리기 ▲추위 덜어주기 ▲기분 북돋아 주기 ▲심하지 않은 취기 ▲원활한 의사소통을 꼽았다. 역대 최악의 평가를 받는 한일관계를 비롯해 조국 파동으로 분열된 국론 통합과 남북 및 북미관계 개선에 ‘막걸리 소통’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스산한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되는 서민들의 퇴근길, 따순 순댓국에 막걸리 한 사발이 그립다.

유지호기자 hwaone@sr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