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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아버지’를 대신한 ‘예순다섯의 아들’
입력 : 2020년 01월 14일(화) 14:46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33명 2차 집단소송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14일 오전 광주 동구 광주지방변호사회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제 강제노역 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에 대해 2차 손해배상 소송을 벌인다”고 밝히고 있다. 시민모임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는 이날 오전 광주지방법원에 전범기업 6곳에 피해자 33명의 손해배상 2차 소송을 제기했다. 2020.01.14. wisdom21@newsis.com
“열여섯이면, 까마득 한 애에요 애. 군 징병인 줄 알고 따라 나섰던 길이 강제 노동이었던 걸 알았을 때 얼마나 두려웠을까. 영암에서 대전으로, 또 부산으로 사흘을 굶고 끌려다니다 말 한마디 안 통하는 낯선 땅에 다다랐을 때 얼마나 무서웠을까, 아들인 저는 도저히 가늠이 안 됩니다. 그래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고되게 일 만했는데 결국 무일푼으로 한국 땅으로 돌아왔을 때, 그리고 아흔이 다 되어 눈 감는 그날까지 밀린 임금은 커녕 사죄 한마디 듣지 못하고 떠난 아버지를 생각하면 정말 원통합니다. 다른 욕심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한 마디면 됩니다.”

1943년, 열여섯의 나이에 일본 후쿠오카현 미쓰비시광업으로 강제동원돼 2년을 꼬박 일하고도 무일푼으로 돌아온 이상업(2017년 작고) 선생.

해방 75년이 지난 2020년, 작고한 아버지를 대신해 임금 반환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예순다섯 아들의 얼굴에도 깊은 주름이 패였다.

이선희씨는 “정말로 밀린 임금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는 사실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평생의 한을 풀지 못하고 눈 감은 아버지를 위해 아들 된 도리를 하려고 하는 것”이라며 “내 생전에 전범기업 관계자 얼굴 한 번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말끝을 흐렸다.

이씨는 그러면서 “비단 이번 소송은 개인과 일본 전범기업 간의 문제가 아니”라며 “일본 정부, 일본 전범기업, 한국 정부는 105만 일제 강제동원 국외 동원 피해자들의 한, 울분 해소를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광주와 전남지역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전범기업을 상대로 2차로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9개 기업을 상대로 54명이 제기한 1차 소송에 이어 10개월여 만이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과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대리를 맡고 있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광주전남지부는 14일 오전 광주지방변호사회관에서 ‘광주전남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전범기업 대상 2차 집단소송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이번 소송에는 모두 33명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가 참여했다. 이 중 생존자는 단 2명, 나머지는 유가족이다. 소송은 민변 소속 14명의 변호사가 대리한다.

대상 기업은 미쓰비시광업, 미쓰이광업, 훗카이도탄광기선, 니시마쓰건설, 가와사키중공업 등 6곳이다.

소송대리인단 대표격인 이소아 변호사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 실상을 널리 알리는 것이 이번 소송의 목표”라면서 “이를 통해 일본 당국과 대상 기업들의 진정한 사과를 이끌어 내 피해 당사자와 가족들의 명예를 회복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근 양국 소송대리인들이 한일공동협의체 창설을 제안한 만큼,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들의 책임있는 자세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국언 시민모임 상임대표는 “무려 75년이라는 세월 동안 일본 정부와 해당 전범기업 등은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피해자 상당수가 고인이 된데다 소송에 참여한 유가족마저도 생전에 판결을 받아 볼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광주·전남 지역 노무동원 피해자 2만6540명의 한이 이제라도 풀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부터 시작된 1차 소송은 9개 피고 기업에 소장이 송달되지 못하면서 제대로 된 재판 한 번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소송대리인단은 피고 기업들이 선고 직전 대리인 선임 등의 방법으로 재판을 지연할 가능성 있는 만큼 관련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주현정기자 doit85@sr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