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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 14. 조지아의 스위스 마을 메스티아
입력 : 2020년 02월 13일(목) 16:03


호수에 잠긴 하늘은 창공의 하늘빛보다 더 푸르고
대지의 악사
조지아 북서부의 스바네티는 코카서스에서 오랫동안 외부와 고립된 마을이다. 개방이 늦은 연유로 마을의 전통이나 풍습, 전통 가옥 등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메스타아는 우쉬바(Ushba 4710m), 텟눌디(Tetnuldi 4858m)등 4000m이상의 고봉으로 둘러싸여 있어 산악지역의 웅장함과 평화로운 아름다움을 지닌 조지아의 스위스 마을로 불린다.

메스티아의 작은 호텔에 몸을 푼 우리는 숙소 근처의 공연장을 갖춘 마을 회관에서 메스티아의 전통 공연을 관람했다. 전문적인 배우들이 아닌 마을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연은 우리의 한과 유사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끊어질 듯 이어지며 고음과 저음으로 휘감은 노래들은 강원도 정선에서 뗏목을 타고 부르던 사공들의 느린 아리랑을 닮은 듯 했다. 오랫동안 산에 고립되고 수많은 전쟁을 겪으면서 가슴 속을 흐르는 삶의 애환과 자기만의 강. 그 강이 노래 속에서 만나고 헤어지고 굽이치는 것 같아 음악을 듣는 내내 가슴에 사무쳤다.

관람객은 여러 나라에서 모인 여행자들이었다. 서로의 전통과 문화는 상이하지만 관람하는 이들의 가슴 속에 담아둔 애환을 투영한 노래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산을 넘고 넘어 수천 년 동안 내려온 신화의 노래를 듣는 우리가 신화의 주인공으로 변신하고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언덕에 있는 마을회관에서 바라본 불빛들도 우리와 함께 노래를 듣고 있었다.

다음날 일찍 코울리 호수로 트레킹을 떠났다. 메스티아가 해발 1400m에 위치해 있는 반면 코울리 호수는 해발 2700m 우쉬바 산 아래에 있다. 호수까지는 총 8~9시간이 소요된다. 체력과 시간이 소모되는 트레킹이라 우리는 차량을 이용하여 호수 근처까지 가기로 했다. 해발 2700m까지 오르는 트레킹은 아름다운 마을과 산자락을 구경하며 걷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높은 산과 평평한 언덕 위에 움푹 파인 작은 호수에 푸른 하늘과 구름이 잠겨 있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앉아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호수에 잠겨있는 하늘과 구름을 바라보았다. 호수에 잠긴 하늘은 창공의 하늘빛보다 더 푸르렀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도 점점 호수가 되었다. 몸속으로 하늘과 구름이 들어와 앉았다. 이곳에 오면 누구나 호수가 되고 푸른 하늘과 구름이 된다.
메스티아


높은 산에 숨은 듯 자리 잡은 호수는 비밀스런 이야기를 한가득 담고 있다. 코울리 호수 너머에는 4000m가 넘는 산맥들이 호수를 둘러싸고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다. 밤이 되면 별들이 호수로 내려와 몸을 씻고 영혼의 안식을 누릴 것만 같다. 작은 풀꽃들도 움직임 없이 호수를 지키고 있다. 바람이 부니 호수에 물결이 일고 하늘도 구름도 물결을 따라 일정한 형태로 움직인다. 호수가 보여주는 파동은 군인들이 행진을 하듯 바람의 구령에 따라 일렬횡대로 서서 끝없이 움직인다. 오랫동안 이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여행자도 행진대열에 끼어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곳에도 인생이 있다. 거센 바람이 부는 날 이 높은 호수에 다시 오고 싶다. 언제나 다시 올 수 있으려나. 우리는 서둘러 지프차를 타고 마을 중앙에 있는 세티광장으로 향했다.세티광장 주변에는 인포메이션 센터를 비롯하여 버스정류장, 식당, 카페들이 모여 있어 여행자들이 정보를 나눈다. 세티광장에는 타마르 여왕의 동상과 맛집으로 유명한 Laila 식당이 있다.
채리꽃 피는 날


메스티아 마을에는 1936년에 개관한 스바네티 박물관이 있는데 2013년에 현대적인 모습으로 재건축 했다. 이 박물관에는 기원전 3세기부터 출토된 유물과 13세기 조지아의 황금기를 이끈 타마르 여왕의 장신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우리는 세티광장에 내려와 주그디디로 가는 마르슈카에 몸을 실었다. 주그디디까지 가는 길은 고봉을 옆에 두고 가는 아름답고 험준한 길이다. 세 시간 정도를 달리면 주그디디 기차역에 도착한다. 우리는 기차역 낡은 식당에 들러 힌칼리(조지아만두)를 먹은 후 기차에 몸을 실었다. 스바네티를 흐르는 영혼의 강이 트빌리시로 가는 열차와 함께 흐르고 있었다. 열차는 밤기차와 달리 조지아 사람들이 이용하는 것 같았다. 이국의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꿈같은 기차여행이었다. 처음 보는 조지아의 들녘과 마을들이 스치듯 지나간다. 트빌리시가 벌써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