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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의 시각] 천려일실 (千慮一失)

@한경국 입력 2020.01.09. 17:54

한경국 문화체육부 차장대우

“한기자, 세상에 고독사는 없는 거야.”

북부경찰서를 출입하던 7년 전 수습기자 시절에 들었던 말이다.

내가 던진 질문에 대답하던 한 형사는 홀로 살던 노인의 죽음을 고독사라고 표현한 것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고독사는 일반적으로 독거노인들의 죽음을 가리킨다. 최근에는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발생한 젊은 청년들의 자살에도 쓰이고 있다. 이처럼 고독사라는 표현은 어렵지 않게 사용된다.

그럼에도 형사는 꿋꿋이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고독하게 혼자 살다가 죽어서 고독사라고 불리고는 있지만 사실 고독사는 사인이 아니라고.

혼자 살다 떠난 이들의 죽음도 다른 사망 사례와 같이 다뤄야 한다는 의미다. 쇼크사, 실족사, 화재사, 감전사처럼 병사나 사고사, 타살 등에 초점을 두고 사인을 결정해야 한다.

참 당연한 주장이다. 외로워서 죽었다는 것은 납득해서는 안 된다. 홀로 살다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수사를 더 하지 않거나 사망 원인을 결정하면 직무유기에 가깝다.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잘못 내린 판단에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일을 놓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만일 고독사로 위장한 타살이라면, 알려지지 않은 전염병이라면 피해는 더 커질 것이 뻔하다. 그래서 ‘고독하게 살았으니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접근은 처음부터 잘못됐다. 때문에 고독사라는 표현은 조심히 쓰는 것이 맞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취해서 사람을 때렸다’ ‘취해서 음주운전을 했다’ ‘심신미약 상태라서 목숨을 해쳤다’는 등도 마땅한 이유로 보기 어렵다. 술로 인한 폭행은 핑계에 불과하다. ‘다툼이 일어나서’ ‘빚을 갚지 않아서’ ‘복수심에’ 등이 진짜 이유다. 취해서 운전대를 잡았다는 음주운전자의 말도 ‘경찰에 걸리지 않을 자신이 생겨서’ ‘무사히 귀가할 자신이 있어서’ ‘이 정도는 괜찮을 거라 생각을 해서’ 등이 진심일 것이다.

이와 함께 ‘술 먹고 죽었다’는 말도 다를 바가 없다. 술을 먹은 것은 앞서 일어난 행동이고, 직접적인 사망 이유로 단정 지으면 안 된다. 취한 상태지만 타인으로 인해, 사고로 인해, 질병으로 인해 죽을 수 있는 일이다. 즉, 사정과 사실은 다른 거다.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직접적인 이유로 봐서는 위험하다. 술 취한 것이 면죄부가 된다면 이를 악용하는 이들은 분명 늘어날 것이다.

이 때문에 공권력을 가진 자라면 신중해야 한다. 특히 사망사건 처리는 더욱 그렇다. 폭행사건과 달리 죽은 자에게 들을 수 있는 말이 없다. 적어도 세상을 떠난 이에게, 남겨진 이들에게 억울해 슬퍼하는 일이 생기게 해서는 안 된다.

이 글은 새해를 맞아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기 위해 썼다. 조사 하나에, 받침 하나에 문장의 의미와 표현이 달라질 수 있음을 회고하며 기록했다. 충분조건을 갖추지 않은 이유를 진짜 이유로 몰아가는 것에 대해 한번쯤 돌이켜보고 싶었다. 기자도 사람인지라 의도는 아니었지만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한 글을 남기는 실수도 있다.

내 주장에 예외가 있음을 알고 있다. 빵을 훔친 굶주린 어린 거지의 이야기처럼 극소수의 심신미약 질환을 가진 장애인 등에게는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 부당한 자들 탓에 피해를 본 정당한 자들을 위해 쓴 글이니 오해 없길 바란다.

내가 펜을 잡게 된 이유를 다시 기억하자. 섣부른 판단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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