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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원의 트빌리시편지

한희원의 트빌리시편지27. 스테판츠민다 룸스호텔

입력 2020.05.14. 17:49 수정 2020.05.14. 18:07 @조덕진 moleung@gmail.com
화려하지않은 기품은 그리움을 자아내고
트빌리시에서 그려본 광주의 오월

해지는 서편 하늘

들녘에 서서 해지는 서편 하늘을 바라보라

저물어 가는 모습이 이리 아름다울 수 있는가


세상의 모든 색들이

층층이 어울리고 덮혀서

이윽고 만나는 희미한 미소


들녘에 홀로 앉아

오랫동안 해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장 낮게 몸을 뉘인 풀잎이 되고

온화한 땅이 되고

가난한 수도사의 기도가 되고

긴 한숨의 얕은 바람이 되고

이윽고 대지를 덮는 노을이 된다


해지는 서편 하늘은

찾아오는 어둠을 탓하지 않는다

황홀한 웃음을 안으로 감추며

한 번의 미소로 그를 맞이한다


하루에 한 번쯤

해지는 서편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 뒷모습이 노을을 닮았다

아름답게 저무는 노을이다

(한희원)


11월의 스테판츠민다는 늦가을의 차가운 기류와 고요함 속으로 젖어들고 있었다. 룸스 호텔은 마을에서 가장 먼 언덕 뒤쪽에 자리 잡고 있다. 마을에서 20여분 정도를 걸어가면 된다. 무겁지 않은 짙은 검은색의 단순한 모습으로 건너편 카즈베기 산과 마주하고 있다. 룸스 호텔까지 오르는 언덕길에는 나뭇잎을 다 떨구어낸 후 거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들이 초췌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몇 명의 관광객들은 고봉으로 둘러싸인 조지아의 전형적인 집들 사이를 떨어진 낙엽처럼 바스락 거리며 걸었다.

길을 걷다 잠시 숨을 돌리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맑은 청빛의 노을이 드리워진 하늘을 향해 서 있는 카즈베기 산이 이방의 여행자들을 지그시 바라다보고 있었다. 카즈베기 산을 오르려면 차량을 이용하거나 마을 옆을 지나는 트레킹 코스로 가면 된다. 유럽에서 온 젊은이들은 세 시간정도 걸리는 트레킹에 무거운 배낭을 메고 무리지어 산을 오른다. 우리 일행도 내일이면 신화가 잠들어 있는 저 산을 오른다는 설렘에 치진 몸을 다독여 본다.

상처 위에 핀  꽃

룸스 호텔은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여느 호텔과는 달리 나무로 외관을 한 단순한 기하학적 모형인 호텔이다. 1층으로 들어가면 카즈베기 산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넓고 긴 나무로 만든 테라스가 있다. 테라스에는 잿빛에 가까운 나무로 엮은 안락한 소파들이 널려 있다. 여행자들이 쌀쌀한 날씨에 담요를 덮은 채 소파에 앉아 있다. 모두들 기도하는 모습으로 어둠에 잠기는 카즈베기 산을 보고 있다. 카즈베기 산 중간에 있는 게르게티 성당에서 지친 영혼을 위로하는 불빛이 사람들의 기도에 화답하는 양 하나둘 불을 밝힌다.

조지아 여행의 백미는 카즈베기 산을 바라볼 수 있는 룸스 호텔에서 숙박하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이 선호하는 곳이다. 스테판츠민다에 있는 호텔보다 숙박료가 2배 이상이니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라면 테라스에 앉아 차를 마시거나 가벼운 식사로 서운한 마음을 달랠 수 있다. 또 호텔 1층에는 도서관처럼 고서들이 즐비하게 채워져 있다. 게다가 유명한 포스터들이 벽에 진열되어 있어 호화롭지 않게 호텔의 기품을 유지하고 있다.

만년설에 쌓인 카즈베기 산과 게르게티 성당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곳. 테라스나 베란다에 앉아 별들이 몰려오는 카즈베기 산을 보면서 와인을 마시면 켜켜이 쌓인 피로가 순식간에 씻겨 나가면서 안락함과 함께 가벼운 흥분이 느껴진다. 2층 객실 베란다에서 손에 잡힐 것만 같은 산과 불 켜진 스테판츠민다 마을을 바라보면 그토록 갈망하던 신화의 땅임을 실감하게 된다. 이런 황홀함에 러시아 대문호인 푸시킨과 톨스토이가 높은 산을 넘어 와 조지아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나 보다.

 별 아래서 이야기하다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차가운 베란다에 앉아 무수한 별들과 동무하며 카즈베기 산을 바라보며 와인을 마셨다. 밤이 깊어갈수록 바람이 거세지니 산 아래 무리지어 서 있는 늙은 나무들이 일제히 흔들리며 소리를 지른다. 만년설에서 흘러나오는 강물이 마을 사이로 흐르며 거칠어지고 있다. 그러나 별들은 세상일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평화로운 눈빛으로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높은 산을 넘고 넘어 그리운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모든 것이 그리워지는 아득한 시간의 밤이다. 내일이면 카즈베기 산을 오르고 게르게티 트리니티 교회에 앉아 기도를 드릴 것이다. 잠자리에 들면서 프로메테우스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리라.


한희원

시인을 꿈꾸던 문청출신의 한희원은 조선대 미대를 나와 교사로 활동하다 1997년 '내 영혼의 빈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양림동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했다. 화업 45년 만에 화가의 길을 침잠하기 위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일년 동안 작업활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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