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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원의 트빌리시편지

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29>조지아의 옛 수도 므츠헤타와 즈바리 수도원

입력 2020.05.28. 11:29 수정 2020.06.11. 18:28
거센 세월 온몸으로 견디며 절벽 위에 고고하게 우뚝
별과 가난한 예술가

거친 바람에 몸을 가누며

세상을 내려다본다

영욕의 세월을 뒤로한 채

아름답기가 그지없는 풍경이다

붉은 석조로 지은 집들 사이로 서 있는

푸른 나무들. 마을 너머에는

겹겹이 둘러싸인 고산이 아스라하다

한참동안 풍경에 취해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오랜 시간을 견디어 온 수도원과

수백 년을 묵묵히 살아가는

큰 나무 아래에 가면 자신도 모르는

힘에 자석처럼 끌리게 된다

커피색의 빗물

낡은 회색이 걸어와 내 곁에 앉는다

그의 눈빛이 내 슬픔의 중심으로 다가온다

방과 방 사이에 켜있다 사라진 숱한 별빛들

나는 서성거리다 멈추고

서성거리다 멈춘다

진한 커피색의 빗물이 회색도시를 떠나지 않는다

몸이 낡은 회색빛으로 물들어 간다

몸으로 부터 점점 영혼까지

쓰디쓴 소주보다 독한 아침 커피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걷는 사람들

거리에는 가을이 아닌데도 낙엽이 뒹군다

기다리지 못하고 커져버린 등불들

스산한 기약하나 떠나지 못하고 등불아래 앉아있다

(한희원의 시 '커피색의 빗물' 전문)


봄의 번짐

오랜 세월동안 흐르는 강에는 역사가 깃들기 마련이다. 그 강의 규모가 크고 굽이굽이 돌아긴 강의 모습을 갖추면 주변에 형성된 문명도 방대해진다. 어머니 자궁 같은 높고 깊은 산에서 흘러나와 산자락을 휘몰아치듯 감아 도는 강과 대륙의 도시와 들녘을 마음껏 휘젓고 가로지르는 강이 만나는 곳에는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서려있다. 곳곳에서 흩어져 살고 있던 사람들이 영적인 기운이 감도는 강 주변으로 모여들면서 새로운 문명이 싹트고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다. 조지아의 옛 수도 므츠헤타와 즈바리 수도원은 이런 성스러운 영혼이 꿈꾸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터키에서 발원하여 카스피해까지 가는 므츠바리 강과 카즈베크 산에서 흘러나온 아라그비 강이 만나 두물머리를 이룬 곳이 므츠헤타이다. 트빌리시에서 북서쪽으로 20km 떨어진 카즈베기나 고리로 가는 길에 높지 않은 즈바리 산(656m)이 보인다. 산 주위가 사방이 확 트이고 깎아내린 듯한 절벽 위에 홀로 고고하게 서 있는 작은 수도원 즈바리. 거센 바람을 온몸으로 견디며 견고하게 서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모습이 마치 작은 거인의 풍모 같다. 멀리에서도 신성한 기운이 느껴지는 즈바리 수도원이다.

바람이 미는 대로 몸을 맡기며 산길을 따라 수도원으로 올라갔다. 1500년 전 짙은 암갈색 석조로 지은 작은 수도원. 예상했던 대로 바람이 거세어 몸을 가눌 길이 없다. 우리나라의 사찰은 깊은 산속에 자리를 잡는데 비해 조지아의 수도원은 바람막이조차 없는 산자락에 있어서 온갖 세파를 견디어 낸다. 세상의 모든 죄를 홀로 짊어진 채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처럼 처연한 모습이다. 1994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즈바리 수도원.

수도원을 오르는 돌계단에 서서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면 세 갈래의 강줄기 주변으로 형성된 므츠헤타가 보인다. 거친 바람에 몸을 가누며 세상을 내려다본다. 영욕의 세월을 뒤로한 채 아름답기가 그지없는 풍경이다. 붉은 석조로 지은 집들 사이로 서 있는 푸른 나무들. 마을 너머에는 겹겹이 둘러싸인 고산이 아스라하다. 마을 중앙에는 규모가 큰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이 보인다. 마을 주위로는 강이 돌아 흐르고 있다. 한참동안 그 풍경에 취해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오랜 시간을 견디어 온 수도원과 수백 년을 묵묵히 살아가는 큰 나무 아래에 가면 자신도 모르는 힘에 자석처럼 끌리게 된다.

저녁 창가에서

즈바리 수도원 안은 작은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빛만이 존재했다. 숨이 끊어질 것 같은 어둠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드린 기도 속 영혼들이 떠나지 못하고 내 주위를 돌며 춤을 춘다. 춤은 소리를 지르지 않고 움직임도 없는 침묵의 춤이다. 눈 먼 수도사의 기도이다. 아, 바람이 세차 두 눈을 멀게 하고 영혼의 눈을 뜨게 하는 고독의 즈바리 수도원.

즈바리 수도원은 원래 '즈바리의 위대한 교회' (Great church of jvari)로 불리었다. 처음에는 이교도의 기도처였는데 6세기(545년)에 에리스 므타바리 스테마노스 1세에 의해 지어졌다. 수도원 주위에는 석조로 된 성벽이 둘러져 있어 중세 말에 이곳이 요새였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성벽이 허물어져 일부만 남아 교회를 감싸고 있다.

조지아의 기독교 역사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이 성녀 니노(Saint Nino)이다. 성녀 니노는 카파도키아의 난민이었다. 노예 출신으로 수녀가 된 니노는 신의 계시를 받아 조지아로 들어와 므츠헤타의 유대인 지구에 머물며 기독교를 전파하였다. 니노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포도나무에 묶어서 십자가를 만들었다. 니노가 조지아왕을 개종시킨 후 바위산 꼭대기에 포도나무 십자가를 세웠고 이곳에 지은 교회가 즈바리 교회이다. 그래서 즈바리 교회의 중앙에는 성녀 니노를 상징하는 포도나무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조지아의 초기 기독교 전파 시절 성녀 니노의 포도나무 십자가가 영험을 얻어 기적을 행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순례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순례의 길은 쉼 없이 이어지고 천년이 훌쩍 지난 오늘도 순례자들은 이곳에 와 침묵의 기도를 드린다. 지금까지 수도원으로 불리는 이 건물이 유일하게 중세 초기 조지아 교회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한희원

시인을 꿈꾸던 문청출신의 한희원은 조선대 미대를 나와 교사로 활동하다 1997년 '내 영혼의 빈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양림동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했다. 화업 45년 만에 화가의 길을 침잠하기 위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일년 동안 작업활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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