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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원의 트빌리시편지

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 <30> 조지아 옛 수도 속으로

입력 2020.06.04. 16:16 수정 2020.06.04. 17:21 @조덕진 mdeung@srb.co.kr
지난한 역사 이겨온 뿌리 깊은 나무
'붉은 시간'

여름 오후

어느 여름 오후

바흐, 프렐류드의 깊은 저음을

두텁게 입은 햇살이 방 안 깊숙이 찾아옵니다

하루 내 달군 방 벽에 기대어 있으면 느슨한 긴장이 피부 속으로 파고듭니다

알 수 없는 벌레가지나간 얼룩들 그 길의 침묵이 길어집니다

벽에 기대어 햇살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참을 들여다봅니다

눈매가 아름다운지 슬픈지 알 수 없습니다

햇살도 나를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속내를 알 수 없는 눈매는

바라보는 이의 눈매가 슬프면 슬프고 기쁘면 기쁩니다

오후의 햇살이 슬그머니 떠나려 합니다

손을 쥐어 보아도 가벼운 인사도 없이 떠나갑니다

프렐류드가 끝나고도 묵직한 저음이 남아 있듯이

그가 떠난 자리에도 온기가 남아 있습니다

첼로의 음이 멈추고 오후의 햇살이 떠나간 자리위에

나는 아직도 벽에 기대어 앉아 있습니다

(한희원)

'스베티츠호벨리 성당'

즈바리 수도원을 뒤로 하고 므츠헤타를 향해 산길을 내려온다.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고개를 돌려서 거센 바람을 견디고 있는 즈바리 수도원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지난한 역사 속에서 자존과 자부심으로 신앙을 지켜왔던 조지아인들이 뿌리 깊은 나무처럼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작은 영토와 적은 인구, 경제적으로도 빈약하지만 그들이 지켜왔던 문화의 뿌리와 예술을 즐기고 사랑하는 마음은 어느 민족보다 깊음을 느꼈다. 이런 국민성 때문에 비록 국토의 일부분을 빼앗겼지만 거대한 강국인 러시아와의 전쟁도 불사했다.

마음속으로 손인사와 미소를 남기고 강을 건너 조지아 옛 수도 므츠헤타로 향했다. 드디어 산 위에서 보았던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마을 뒤로 높고 낮은 산들이 겹겹이 모여 마을을 감싸고 있다. 앞으로는 강과 강이 만나 평야를 이뤄 풍요로운 조지아의 천년고도 므츠헤타를 이루고 있다. 외곽 주차장을 지나 입구로 들어서면 마을 주민들이 거주하는 집들이 그림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이곳은 오래 전부터 관광객의 발길이 잦아 길옆으로 다양한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해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

'쿠라강변'

입구에서 조금만 더 걸어 들어가면 조지아에서 두 번째로 큰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이 보인다. 므츠헤타는 카즈베기나 고리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트빌리시에서 수시로 올 수 있다. 조지아에서 머물며 몇 번 방문한 터라 대성당 입구에 있는 가게 주인들과 눈인사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예술을 사랑하는 민족답게 조지아의 유명 관광지에는 작은 화랑이 있다. 보통 화랑에는 작가는 보이지 않고 가족들이 자리를 지키며 그림을 소개한다.

화랑 옆에는 포도주를 직접 만드는 므츠헤타 지방의 유명한 장인이 직접 생산한 포도주를 팔고 있었다. 첫인상이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 안소니 퀸을 닮아 조지아의 '조르바'로 불렀다. "헤이 조르바!"하면 크고 우람한 손바닥을 올리며 유쾌하게 웃으며 반긴다. 그가 만든 포도주의 맛이 어찌나 상큼한지 무겁게 닫힌 마음을 시원스레 뚫어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특히 석류와 포도를 섞어 만든 와인은 형언할 수 없는 맛이다. 사람들이 가게에 들어오면 직접 빚은 챠챠와 와인을 내놓는데 독한 챠챠와 와인을 몇 잔씩 번갈아 가며 마시면 얼굴이 달아오르면서 취기가 올라온다. 경건한 마음으로 성당을 들어가기 전부터 죄스러움을 느낀다. 와인 몇 병을 주문해 놓고 가게를 나서면 조르바는 어깨를 툭툭 치며 특유의 거친 미소로 고마움을 표한다.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 입구에는 그리스 신전을 연상케 하는 석조 건물이 들어서 있다. 대성당 앞에 신전이라니... 묘한 이중성이 사람들을 당황케 한다. 그 건물은 관광 안내소로 사용하고 있다.

이제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으로 들어가야 한다. 성당 전체가 벽돌로 된 성곽으로 둘러싸여있어 적들이 쉽게 침범하지 못하는 요새처럼 견고하게 지어졌다. 고딕 형식의 종탑은 망루 역할을 하는지 성당 입구에 당당한 모습을 드러낸다.

성당 이름은 조지아어로 둥근 기둥을 뜻하는 스베티(Sveti)와 '생명을 주는' 또는 '사람을 살리는'이라는 뜻의 '츠호벨리'를 합쳐져 만든 이름이다. 사람을 살리는 둥근 기둥의 성당. 나는 입구에 서서 하늘과 맞닿을 것 같은 대성당을 바라보았다. 이 성당에 예수님의 성의가 보관되었다고 하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경건한 마음으로 성호를 긋고 천천히 성당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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