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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원의 트빌리시편지

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 <38> 새로운 요새, 아할치헤

입력 2020.07.30. 20:23 수정 2020.07.31. 00:47 @조덕진 mdeung@srb.co.kr
지난한 역사 품은 성채의 위용과 예술

'이방인의 소묘'

바람이 오는 자리

혼자 지내면서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바람이 불어오는 자리

햇살이 찾아오는 자리에 앉아

낡은 건물들이 지상에 자리 잡고 살아가는 모습이며

감꽃이 하얗게 피고 떨어지고 열매 맺는 모습

석류나무에 붉은 이슬 꽃이 피는 모습을 본다

햇살은 누구에게나 고루 비춰준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들이며 풀잎들이 온 몸을 흔들며 춤추고 노래한다

새벽부터 우는 까마귀소리

멀어져가는 자동차 소리

골목길 사이로 들려오는 여행자들의 두런두런 이야기소리

바람이 불어오는 자리에 앉아

이방인은 바람이 들려주는 소리를 홀로 듣는다

아카시아 꽃잎 하나가

바람에 따라 들어왔다

달콤한 향기가 흩어지고

눈부신 하얀 꽃잎이 떨어진지 오래되었는데

누렇게 말라버린 마지막 꽃잎 그 몸을 낙하시켜 바람을 따라 이곳에 왔다

나는 바스락거리는 잎새를 안아본다

바람이 준 선물이다

금방 바스라 질 선물이지만 여기까지 찾아왔다

어떤 생이든지 의미가 있고

무심히 찾아오는 모든 것에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창틀에 오래 자리 잡은 먼지

쇠 창틀 사이로 보이는

조각난 풍경들

바람과 햇살은

찾아왔다 떠난다

거센 바람에 나무가 뿌리 채 뽑혀도 언젠가는 그 자리에 나무가 자란다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잎새

오래된 먼지 위에 내리는 햇살

그것이 가장 위대한 기도이다

먼데서 먹구름이 몰려온다

비가 오려는가

'바람이 오는 자리'

춤추는 꿈

오늘은 아할치헤(Akhaltsikhe)로 향한다. 바람을 따라 강을 따라가는 여행길은 끝이 없다. 므크트바리강은 길을 나선 이와 함께 머나먼 길을 동행한다. 높은 산과 광활한 들녘이 많은 조지아는 대지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강이 많아 피곤에 지친 길손들의 몸과 마음을 포근히 달래준다.

아할치헤도 바르지아도 강이 흐른다. 도시를 품은 채 흐르는 강은 평온한 안식의 소리를, 바위산과 들녘을 휘몰아치듯이 흐르는 강은 생명이 숨 쉬는 소리를 들려준다. 고국을 떠나 먼 곳에서 이리저리 떠도는 여행자의 손이 강물에 닿으면 그리운 고향에 도착할 것이라는 귀향을 꿈꾼다.

아할치헤는 조지아 남서부 삼츠헤자바헤티(Samtskhe-Javakheti)주의 중심 도시이다. 삼츠헤자바헤티 주는 아르메니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인구가 4만6천100여명으로 비교적 작은 도시이다.

아할치헤라는 이름은 '새로운 요새'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름에서 짐작되듯이 오스만 제국과 인접해 있어 강대국의 침략이 빈번했던 도시이다. 조지아의 운명처럼 아할치헤도 1576년에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1828년에는 러시아에 점령당하는 서글픈 역사의 주인공이었다. 식민지의 치욕을 견뎌온 도시답게 요새와 성곽, 모스크가 한껏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할치헤는 삼츠헤자바헤티의 중심 도시답다. 시내 중심에 위치한 언덕 위에는 다른 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화려한 성채가 자리 잡고 있다. 수도가 아닌데도 이런 큰 규모의 성채가 있는 것을 보면 이 지방의 귀족이 상당한 권세를 누렸을 거라 예측할 수 있다.

언덕 위에 있는 성채는 라바티성(Rabati Castle)이다. 9세기에 세워진 성으로 조지아어로 '사자'를 뜻하는 로미사와 롬시아로 불리었으나 12세기 말에 새로운 요새라는 이름의 아할치헤로 도시 이름이 바뀌었다. 현재는 요새화 된 곳을 의미하는 라바티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13세기에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사원으로 지어졌다가 17-18세기에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

모스크는 이슬람 건축 양식으로 둥근 돔형의 지붕에 금박이 입혀져 있다. 중앙에 있는 모스크 앞에는 사각형의 연못이 있어 색다른 운치를 더해 준다. 석조로 된 바닥이 잘 정돈되어 있어 정갈한 느낌을 준다. 이곳의 풍경은 자연스러움보다는 귀족이나 국가 자본의 힘을 빌려서인지 인위적이면서 단정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푸른 나무의 눈물

성채 안 건물로 들어가면 창문이 크지 않아 실낱같은 어둠이 감싼다. 2층으로 올라가면 옛 조지아 풍경을 그린 그림과 현대적인 서양화풍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이런 곳에 그림을 전시하는 조지아인들의 예술에 대한 순정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어느 곳을 가든 들을 수 있는 그들의 음악과,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역동적인 춤, 그리고 곳곳에 걸려있는 그림에서 그들의 거룩한 신앙과 함께 조지아다운 예술의 품격과 기운을 느낀다.

성채 옥상을 향한 계단을 밟고 올라가 성곽을 걸어본다. 작은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언덕 아래에는 어김없이 강이 흐르고, 붉은 지붕을 한 낮은 건물들이 나무 사이로 서 있다. 조지아에서는 트빌리시를 제외한 다른 도시에서 아파트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 나라의 도심은 산과 나무와 낮은 건물들이 서로를 헤치지 않으며 사이좋게 조화를 이룬다.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나라가 조지아이다.

귀족 도시 아할치헤의 라바티 성을 빠져나와 12세기 동굴의 도시 바르지아로 발걸음을 옮긴다. 조지아의 남쪽 끝머리에 위치한 바르지아. 침묵하는 동굴을 만나러 길을 재촉한다.

한희원

시인을 꿈꾸던 문청출신의 한희원은 조선대 미대를 나와 교사로 활동하다 1997년 '내 영혼의 빈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양림동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했다. 화업 45년 만에 화가의 길을 침잠하기 위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일년 동안 작업활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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