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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원의 트빌리시편지

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 <39> 동굴 도시 바르지아

입력 2020.08.06. 17:10 수정 2020.08.14. 00:28
'체리꽃 아래서'

바위산에 일궈낸 천년 꿈의 빛깔은

떠도는 바람

바람만 떠도는 것이 아니다

별만 뜨고 지는 것이 아니다

일초에 몇 번씩 우리 마음은 떠돌고

하루에도 수없이 뜨고 지고 한다

별처럼 바람처럼

외로움도 모른 채

홀로 떠돌면 좋으련만

너를 잊지 못하는 내 마음은

바람이 되어도

별이 되어도

홀로 있지 못하구나

바람아 말해다오 너의 먼 여행을

별아 말해다오 너의 자유로움을  -한희원

'트빌리시의 저녁'

동굴의 도시 바르지아로 향하면서 청마 유치환의 시 '바위'가 스치듯 떠올랐다. 거대한 바위산을 뚫고 깨어내 인간의 무리가 살아갈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은 고난의 연속이다. 안에 있는 속살을 파고들수록 탄탄했던 생명력도 삶의 의지도 망각하게 된다. 어두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오직 원뢰(遠雷) 뿐이다.

동굴 도시 사람들은 어떤 꿈을 꾸었을까? 500m에 달하는 거대한 바위산을 13층 높이로 깎아 도시를 형성한 천 년 전 그들의 꿈은 무슨 빛깔이었을까.

바르지아의 동굴 도시 내부에는 그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교회와 와인 저장고, 목욕탕 등 도시 기능이 잘 갖춰져 있어 관람객의 이해도를 높여준다.

멀리에서 바위산을 올려다보면 여러 가지 모양의 구멍들이 숭숭 뚫려있어 거대한 바위 덩어리를 오브제로 한 설치미술 작품으로 착각하게 된다.

여기는 얼마 전에 다녀왔던 평야에 비스듬히 누운 우플리스치헤의 동굴 도시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산 아래에서 주거지까지 접근이 쉽지 않다. 방과 방을 연결하는 동굴 속 길은 너무 좁아 숨이 막히고 걷기조차 힘들다. 몸을 숙이고 움츠리며 걷다가 절벽 끝에 자리 잡은 교회와 집들을 만났다. 그 자리에 서면 드넓은 평야와 굽이치며 도도히 흐르는 므트크바리강이 펼쳐진다. 장엄한 풍경에 빠져 있다가 불어오는 바람에 옷깃을 여미고 꿈꾸듯 기도를 드렸다.

'쿠라강의 밤'

바르지아는 12세기에 게오르기(Giorgi) 3세에 의해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방어를 목적으로 한 요새로 지어졌다. 이후 조지아의 가장 위대한 여왕이었던 타마르 여왕에 의해 동굴 도시로 변모했다. 1283년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뒤 복원되었다가 16세기 중반 오스만 제국의 침략으로 동굴 도시는 안타깝게도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미로와 같은 동굴의 길을 걷다 보면 타마르 여왕을 그린 동굴 벽화를 보게 된다. 바위에 새겨진 고색에서 지금은 사라진 과거의 영광과 마주한다. 타마르 여왕의 영혼은 지금도 이곳을 떠돌고 있을까.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없는 깊은 밤에 천 년 전 그들이 이곳에 모여 못 다 한 꿈을 이야기할까. 처량한 이들은 어느 별에서 떠돌고 있을까.

바위산을 오른 후 므트크바리강 주변에 있는 레스토랑에 앉아 진한 커피를 마셨다. 우플리스치헤에서 오랫동안 강을 지키는 자작나무와 포플러나무에 기대어 세차게 흐르는 강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바르지아의 강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강길을 따라 흐르고 있다.

동굴 도시로 오르는 산 언덕길에 외국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의 무리가 걷고 있다. 산 입구에서부터 동굴 도시까지 셔틀버스가 있지만 그들은 바람이 미는 대로 꿈을 꾸듯 묵묵히 걸었다.

한희원

시인을 꿈꾸던 문청출신의 한희원은 조선대 미대를 나와 교사로 활동하다 1997년 '내 영혼의 빈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양림동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했다. 화업 45년 만에 화가의 길을 침잠하기 위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일년 동안 작업활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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