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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원의 트빌리시편지

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 <40> 조지아의 트레킹

입력 2020.08.13. 19:52 수정 2020.08.14. 00:25
'화려한 상처'

풀잎과 야생화 사이를 바람과 함께 걸으며

부칠 수 없는 편지

부칠 수 없는 편지를 매일 쓰고 있다

하얀 편지지에도

그림엽서에도

비에 젖은 유리창에도

흐릿한 너의 마음에도

오래전 쓴 편지는 희미해지고

빛바랜 시간들은 어디로 떠나고 있나

우체국 앞을 서성이다

주소도 잊어버린 부칠 수 없는 편지를 주머니에 넣고 되돌아온다

먼 고원을 나는 새야

전할 수 없는 내 마음을 너에게 보낸다

부칠 수 없는 편지여

부칠 수 없는 너의 편지여

나의 슬픈 시간들이여  -한희원

'푸른 저녁마을을 걷다'

1997년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림에 전념하고 싶은 마음에 교사직을 던졌다. 퇴직금으로 작은 서점을 열고 옥상 가건물에 화실을 차렸다. 그렇지만 작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급격한 환경의 변화인 것 같다. 마음을 이리저리 휘몰아 달리는 바람처럼 이도저도 못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처음 벌인 서점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피곤에 지친 몸으로 화실에 들어서면 붓을 들 수 없는 상태였다. 마음은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교직에 있을 때도 매일 5시간 정도는 작업을 유지했다. 학교근무가 끝나 집으로 오면 다시 화실로 출근하여 작업하였다. 체력도 있었고 집중력도 있었다. 결심을 하고 사표를 쓰고 온통 그림 그리는 일에 매달릴 줄 알았는데 막상 현실은 그렇지 못하였다. 환경이 변한 탓인지 의지가 약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무력감이 찾아왔다. IMF가 오기 전이라 무언가 알 수 없는 어둠이 사회 저변에 깔려있었다.

그림이나 시는 마음의 중심. 자신도 알 수 없는 영혼에서 발원된다. 영혼의 중심이 충만하지 않으면 작업을 할 수 없고 억지로 그림을 그려도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 서점에서 빠져나와 길을 걷고 싶었다. 오랜 시간 길을 걷다 보면 마음의 잡념이 사라지고 영혼의 중심에 있는 '어떤 정신'을 만나지 않을까. 그해 여름 무더움과 함께 섬진강 도보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전북 진안의 데미샘에서 시작되어 광양 망덕까지 홀로 걷고 또 걸었다. 매일 하루 종일 걷다보면 마음도 없는 무아의 상태에서 걷는다. 잡념이 사라지고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작업에 대한 진정한 욕망이 생긴다. 걷는 일은 고통을 수반한다. 일군의 사람들은 고통을 알면서도 잃어버린 자아를 만나기 위해 걷는 일에 도전한다. 제주도나 지리산을 넘어 히말라야, 산티아고, 티벳의 고원길을 걷는다.

'별과 나무'

조지아의 트레킹 코스는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처음 조지아를 와서 차를 타고 달리다 시골마을을 감아도는 므뜨끄바리강을 보고 그 모습에 감탄했다. 풍부한 수량으로 굽이쳐 흐르는 물살이 고산을, 평야를, 마을주위를, 나무숲 사이를 흘렀다. 나는 속으로 조지아 여행에 므뜨끄바리강을 따라 걷는 트레킹코스를 개발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은 여행사차원이 아닌 조지아 국가차원에서 할 일이다. 트레킹 코스의 개발은 여행사에는 경제적인 이득이 되지 않는다. 걷는 일은 돈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외국인이 안전하게 강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시설이 마련되면 트레킹을 좋아하는 외국인이 몰려들 것이다. 외국인들은 단순히 트레킹만 하고 가는 것이 아니다. 조지아는 국토의 면적이 크지 않기 때문에 트레킹과 관광을 함께할 수 있다. 트빌리시에 있으면서 트레킹만 하기 위해서 오는 여행자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소수의 인원으로 여행을 하였다. 조지아의 트레킹은 고산을 오르는 경우보다는 산을 바라보거나 옆에 두고 산언덕을 걷는 경우가 많다. 풀잎과 야생화 사이를 바람과 함께 걷다가 마을을 만나면 몇 잔의 와인과 함께 휴식을 취한다. 조지아인들은 음악을 좋아해서 연주를 들을 수 있는 행운도 있다. 나는 지금도 우쉬굴리의 대평원을 걷는 일을 잊지 못한다. 내일은 카스벡 산이 있는 스테판츠민다 마을 지역의 추타 트레킹을 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벌써 마음속에 한줄기 구불한 시 같은 길들이 찾아온다.

한희원

시인을 꿈꾸던 문청출신의 한희원은 조선대 미대를 나와 교사로 활동하다 1997년 '내 영혼의 빈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양림동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했다. 화업 45년 만에 화가의 길을 침잠하기 위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일년 동안 작업활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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