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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원의 트빌리시편지

한희원의 트빌리시편지 <43> 다비드가레자(상)

입력 2020.09.03. 14:18 수정 2020.09.03. 14:44
척박한 돌산 깍아 쌓아올린 신을 향한 염원
한희원 작 '별을 찾는 사람들'

가을이 오면

가을이 오려니

어느 작은 학교 옆

나무숲이 생각납니다.

익을 대로 익은 세월에

파르라니 삭아가는 나뭇잎들

그 사이로 어찌할 바를 몰라 떠는 눈빛으로

나뭇잎 하나를 바라보던 눈길이 그립습니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그리움은 떠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을 사무치다고 하나요

아님 아님 그냥 아픈 것일까요

산그늘은 짙고 짙어

뒷걸음치는 그리움까지 감싸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떠는 가을 초입

일찍 떨어져 뒹구는 여리고 작은 낙엽하나

가만히 너의 손에 쥐어주고

길을 떠납니다

아, 가을이 옵니다 (한희원)


오늘은 조지아인들이 영적인 성지라 부르는 다비드가레자 동굴 수도원에 가는 날이다. 조지아인들이 일생에 꼭 한 번은 찾는다는 다비드가레자는 트빌리시에서 남동쪽으로 70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있다. 북쪽의 산악 지역과는 달리 광활한 황무지로 회교 국가인 아제르바이잔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조지아와 아제르바이잔은 다비드가레자 지역을 두고 지금도 국경 분쟁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비드가레자를 찾은 날에 그곳은 바람 한 줌 없이 뜨거운 햇볕만이 내리쬐고 있었다. 간간이 서있는 나무들은 미동도 없이 따가운 햇살 아래 고행자처럼 서 있었다. 산 너머로 아제르바이잔의 땅이 보인다. 아제르바이잔은 코카서스 3국 중에서 유일하게 회교 국가이다. 그리고 아르메니아는 노아의 자손으로 자부심이 강한 만큼 뿌리 깊은 신앙의 역사를 가진 나라이다.

옅은 붉은 빛의 황량한 비포장도로를 한 시간 반 정도 달렸다. 가는 길에 수많은 양떼 무리도 만났다. 양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다 천천히 양의 무리를 뚫고 지나가니 눈앞으로 뜨거운 햇살을 받고 있는 바위산이 보인다.

한희원 작 '꽃의 시간'

저기가 바로 다비드가레자 수도원이다. 6세기경부터 이런 척박한 돌산에다 특별한 장비도 없이 구멍을 파고 깨뜨려 수도원을 만들었다고 하니 그들의 신에 대한 경외심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수도원 가까이 갈수록 알 수 없는 기운이 압박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신을 향한 기도소리가 천 년을 넘어 이제는 침묵으로 전해오는지 이곳을 찾는 이들 또한 말을 삼킨다.

다비드가레자는 6세기경에 아시리아에서 조지아로 들어온 13명의 아시리아 선교사 중 한 명인 다비드 선교사가 이곳에다 동굴 수도원을 조성했다. 가레자는 '무덤'이라는 뜻으로 다비드 선교사의 무덤이 동굴 수도원 안 입구에 존재한다. 다비드가레자는 '자학'이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스스로에게 가한 가혹한 고통을 통해 신을 향한 믿음의 길을 걷고자 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초기 기독교는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삶이 생활 속으로 절절히 배어들던 시기였으리라.

다비드가레자 동굴 수도원은 처음에는 다비드 선교사에 의해 작은 수도원으로 만들어지다가 다비드의 신앙심에 감회 받은 수도사들이 모여들면서 100여개가 넘는 동굴예배 처소가 생겨났다. 그 후 10~13세기에 걸쳐 외부인의 침입을 방어하는 성벽과 망루가 건립되었다. 다비드가레자 아래로 내려가니 해발 800m에 있는 망루가 바람과 햇살에 씻겨 퇴락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결코 허술한 모양새가 아닌 견고한 모습으로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한희원 작 '가을을 걷다'

작은 나무문을 통과하여 수도원 마당에 들어섰다. 검은 옷에 덥수룩한 수염을 한 조지아 정교회 수도사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 수도원은 지금도 수도사들이 거주하며 기도를 올리는 기도처이다. 화석처럼 굳어진 신앙이 아닌 절대자인 신을 향해 자신의 욕망을 모두 버리고 기도하는 현장이다.

수도원 마당에는 천 년이 넘는 다비드의 돌 십자가도 있다. 작은 바위 위에 세워진 돌 십자가. 수많은 이교도의 침략을 견디며 훼손되지 않고 의연한 자세로 수도원을 지키고 있다. 다비드 선교사의 무덤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는 팻말이 어느 동굴 앞에 있다. 수도사들이 손으로 파서 조성한 동굴들도 보인다. 넋을 잃고 바위산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바람이 뜨겁게 달궈진 등을 슬며시 민다. 옛 수도사의 손길인가. 바람결에서 편안한 안식을 느낀다.

한희원

시인을 꿈꾸던 문청출신의 한희원은 조선대 미대를 나와 교사로 활동하다 1997년 '내 영혼의 빈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양림동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했다. 화업 45년 만에 화가의 길을 침잠하기 위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일년 동안 작업활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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