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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원의 트빌리시편지

이 가을 참혹한 서정을 어찌 견디며 지내시나요

입력 2020.11.12. 17:42 수정 2020.12.11. 10:34
화가의 안식년, 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51>
중세의 비경을 간직한 샤틸리 (상)
한희원 작 '귀향'

깊은 상처가 상처를 치유하고

슬픔이 슬픔을

연민이 연민을 위로하는 계절

낮은 언덕은 비스듬히 누워

시간의 그림자들이 지나가는

길을 내어준다

바람이 떠나간

언덕을 넘어

들녘을 지나

산과 강을 건너면

머나먼 곳에서 빛나는

꺼지지 않는 기다림

아, 너의 미동치 않는 촛불

너무나 눈부신

참혹한 서정의 시간이여!

한희원의 시 '참혹한 서정'


오래 전 티베트 서부의 성산 카일라스를 만나러 길을 떠났다. 세상의 모든 산 중에서 가장 성스러운 산. 인간에게 섣불리 정상을 허락하지 않는 산. 성산 아래 신의 눈물이 고여 있는 마나사로바 호수. 힌두교와 불교, 자이나교의 발상지 카일라스. 전 세계 순례자들이 찾아와 기도하는 곳 카일라스. 우리들 일행은 꿈같은 수수께끼에 이끌려 미지의 세상 샹그릴라를 찾아 장도에 올랐다.

카일라스로 가기 위해서는 북경에서 티베트의 수도 라싸를 거쳐 가는 길을 주로 많이 선택한다. 북경에서 출발하는 기차여행의 길고 고단한 설렘과 티베트 불교를 상징하는 라싸의 웅장한 사원의 성스러움을 보며 카일라스로 향하는 순례 길이 훨씬 풍요롭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 일행은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중국 국경을 넘어 카일라스로 가는 행로를 택했다. 티베트의 고원을 끝없이 달리며 가다가 들녘이 보이면 별과 함께 야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독의 끝을 보며 달리는 순례자의 길. 깊고 고요한 유목민의 눈빛. 고원과 고원 사이를 떠도는 별빛. 차갑게 따라오는 새벽의 눈썹 달.

네팔의 카트만두에 도착하면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떠돌이 여행자들이 카멜 시장의 호텔에다 여장을 푼다. 신들의 정원 히말라야를 걷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은 내일 있을 등정을 위해 긴장감이 감도는 모습으로 삼삼오오 시장을 누빈다. 밤이 되면 카멜 시장의 술집들은 팽팽한 긴장감과 자유로움이 섞인 세계 각국의 언어들이 난무하며 밤을 지새운다.

우리 일행은 복잡한 카멜 시장에다 여장을 풀지 않고 카트만두 시가지에서 멀리 떨어진 산 속의 고성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수선스러운 거리를 벗어나 숲 속에 있는 네팔의 오래된 성을 개조해서 만든 조용한 호텔. 이곳에서 밤을 보내는 것이 성산 카일라스로 가는 우리 일행의 무탈함을 기원하기 위함이리라.

한희원 작 '트빌리시 올드타운 풍경'

카트만두에서 사륜구동에 몸을 싣고 한참을 달린 후 숲길을 걸어 옛 성을 개조한 호텔에 당도했다. 암갈색 석조와 붉은 벽돌로 만든 성은 신화 내음을 담은 채 우리를 맞이했다. 카트만두 시가지를 넘어 히말라야의 고산 머리에 내려앉은 하얀 만년설 위에 붉은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테라스에 앉아 미동도 없이 거대한 존재로 서 있는 산맥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정지 된 생의 시간들. 언젠가 맞이하게 될 죽음이 느껴졌다. 신은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순례자들은 여행의 고단함에 쉽게 잠들지 못하고 목조로 지어진 호텔 발코니에 앉아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샹그릴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조지아에도 옛 모습 그대로의 비경을 간직한 고성이 있다. 중세의 신화를 그대로 간직한 채 지나온 세월의 잔 때가 묻어 있는 숨은 절경이 샤틸리이다. 이곳은 조지아인들도 쉽게 찾아오지 못하는 곳이다. 탐험가 기질이 있는 순례자들이 숨어 있는 비경을 찾아서 오는 곳이 샤틸리이다. 트빌리시의 가장 큰 매력은 몇 백 년의 세월을 머금은 도시의 건물들이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도시를 걷다보면 마치 과거여행을 하는 여행자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험한 산맥 사이에 숨은 샤틸리는 더 오래 된 시간 속으로 우리를 끌고 들어간다. 조지아인들도 쉽게 찾아오지 못하는 샤틸리. 그 비밀의 정원 속으로 떠나간다.

한희원

시인을 꿈꾸던 문청출신의 한희원은 조선대 미대를 나와 교사로 활동하다 1997년 '내 영혼의 빈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양림동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했다. 화업 45년 만에 화가의 길을 침잠하기 위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일년 동안 작업활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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