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18(일)
현재기온 10.4°c대기 보통풍속 2.1m/s습도 52%
한희원의 트빌리시편지

예술가가 거처를 옮기면 필연적으로 새 작품이 탄생한다

입력 2021.01.28. 16:26 수정 2021.01.28. 16:40
화가의 안식년, 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
<60>조지아를 찾은 러시아 작가 푸시킨, 톨스토이, 고리키 (3)
한희원 작 '므뜨끄바리강의 야경'

안개가 거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도 안개가 있다

안개는 서성거리기도 하고

나를 지배하기도 한다

안개가 너에게도 침범한다

안개가 자욱한 날에는

시야가 흐려 보이지 않는다

안개가 기도를 한다

스스로 걷히기를 기도한다

안개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가 걸어왔던 길은 어디서부터일까

그가 걸어왔던 길은 어떠했을까

안개의 마음을 휘저어본다

그의 중심에 들어가 목소리를 들어본다

어디에도 있을 것 같고

어디에도 없는 너의 실체

어느 순간 안개가 나의 마음속에 들어와

떠나지 않는다

(한희원의 시 -안개- 전문)


인간은 생의 시간을 걸으면서 두 종류의 병을 앓게 된다. 마음의 병과 몸의 병이다. 이 두 병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실제로 몸에 이상이 느껴지면 마음을 편하게 갖고 좋은 음식과 숙면을 취하면 자연스레 치유됨을 느낀다. 모든 병이 몸의 내부에서 자가 치유 되지 않고 큰 병으로 진행된다면 생을 견디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요즘은 의학이 발달해 불치병도 하나씩 정복해 가는 세상이다. 그런데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환경이 변하면서 알 수 없는 무서운 병을 경험하기도 한다.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이런 변화는 인류의 미래가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임을 미리 예고하는 건 아닌지.......

지금은 고인이 되신 법정스님께서는 살면서 인간관계가 가장 힘들다고 말씀하셔서 놀란 적이 있다. 깊은 산속 암자에서 기거하며 만나는 사람 대다수가 공경하는 분이었을 텐데 인간관계가 힘들다니 의외였다.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한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말해준다. 요즘처럼 인간관계가 다양하고 복잡하면 더 그렇다.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TV나 유튜브 같은 매체를 통한 간접적인 인간관계에서도 상처를 받는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관계를 끊고 산속으로 들어가 홀로 살 수는 없다. 간혹 자연의 품속을 파고 들어가 사는 사람도 있지만 그 삶 또한 녹록치 않을 것이다.

사설이 길어졌다. 예술가 중에는 정신적 고통이 심하고 몸이 병약해지면 이를 치유하기 위해 거처를 옮기는 경우가 많다. 예술가가 거처를 옮기면 필연적으로 새로운 작품의 탄생을 예고한다. 러시아의 국민 시인 푸시킨도 러시아 남부지방으로 추방당하고 조지아의 카프카스를 여행하며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가 쓴 시는 훗날 조지아를 찾은 톨스토이에게 영감을 주어 또 다른 작품을 태어나게 했다.

푸시킨은 1820년 6월초부터 8월초까지 카프카스를 방문하였다. 흑해 연안으로 추방당했다가 니콜라이 라예프스키 장군의 집을 방문하고 그 가족과 친분을 쌓게 된다. 푸시킨은 라예프스키 장군의 셋째 딸인 마리아 발콘스카야에게 연정을 느끼지만 마리아 발콘스카야는 푸시킨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지 못한다. 나중에 그녀는 데카브리스트였던 안드레이 발콘스키와 결혼해 유배지인 시베리아 이르쿠츠크에서 생활한다.

푸시킨은 추방지에 있는 강에서 수영을 했다가 심한 감기에 걸린다. 이를 지켜보던 니콜라이 라예프스키 장군의 권유로 카프카스를 여행한다. 그 당시는 러시아와 카프카스가 갈등 상태라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푸시킨은 군대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카프카스를 방문한다. 그는 카프카스의 광천수를 마시고 트빌리시에서 온천욕을 하며 몸을 회복한다. 트빌리시에 가면 푸른 타일에 이슬람 양식으로 지은 유황 온천장인 오르벨리아니(Orbeliani Baths)가 있다. 건물 외벽에는 '세상에 이곳보다 좋은 온천은 없다'라는 푸시킨의 찬사가 새겨져 있다. 푸시킨은 카프카스를 여행하며 러시아에서 볼 수 없는 풍광에 감동한다. 그의 시 '조지아 산 위에서', '카프카스의 포로'를 보면 그가 얼마나 카프카스에 매료되었는지 알 수 있다.

트빌리시 아바노트바니 온천지구의 Orbeliani

조지아 산 위에서

조지아 산 위에 밤안개 내려앉고

내 눈앞에 아라그바 강이 술렁인다

내 마음 울적하고도 가벼워

반짝이는 나의 슬픔은 온통 그대로 채워졌다

그대만으로, 오직 그대 하나만으로... 나의 우수는

그 무엇도 괴롭히거나 휘저을 수 없다

가슴은 또다시 불타며 사랑하는구나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으므로  -푸시킨


카프카스의 포로

슬픈 이별의 날들에

생각 깊은 나의 노랫소리는

카프카스를 생각나게 하는구나.

광야의 은둔자 같은 음울한 베쉬투봉

머리가 다섯 개 달린 벌판과 마을 지배자는

내게 새로운 파르나소스였다.

내 어찌 잊겠는가, 그 깎아지른 봉우리와

솟구치는 샘물과 황량한 평원을,

타는 듯한 광야를, 너와 내가 더불어

젊은 날의 인상을 서로 나누던 곳.

용감한 도적이 산을 타고 말을 달리고

야만적인 영감의 천재가

깊은 정적 속에 숨어있는 그곳을,

너는 어쩌면 여기서

가슴 따뜻한 시절과

모순 가득 찬 정열의 추억을 찾을 것이다.

친숙한 꿈과 익숙한 고난

그리고 내 영혼의 비밀스런 음성을.  -푸시킨

한희원

시인을 꿈꾸던 문청출신의 한희원은 조선대 미대를 나와 교사로 활동하다 1997년 '내 영혼의 빈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양림동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했다. 화업 45년 만에 화가의 길을 침잠하기 위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일년 동안 작업활동을 했다.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srb.co.kr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