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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원의 트빌리시편지

외로움 짙은 시간일수록 그리움 또한 배가 된다

입력 2021.02.25. 19:31 수정 2021.02.26. 18:54
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63·끝> 에필로그
그래픽=김양진 kyj8122@srb.co.kr


검은 길을 걷다
고요하다

나무가 쓰러졌다

새가 누워있는 것을 보았다

문득

소리 없이,

소리죽여 말하는 것들을

생각했다

생각 해낼 수 없다

사라져 가고 있다

영혼의 가는 끈이 팽팽해진다

아. 바람이, 별이, 나무가

우는소리

그것이다

고요의 언어!

(한희원의 시 '고요의 언어'- 전문)

'블루 카페'

긴 항해를 마친 기분이다. 2019년 11월부터 연재를 시작했다. 첫 연재 글은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썼다. 이른 봄 조지아에 도착해 여름과 가을을 보내고 겨울에 이르러 귀국했다. 아무도 모르는 이국땅에서 혼자 생활하니 조지아에 적응하기보다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고립되어 가는 심정이 더 강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아는 사람도 없이 지내다보니 나라는 사람은 어느 그룹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의 신세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외로운 시간도 느리지만 흘러가고 지나간다. 이러다가 생의 막바지 순간까지 도달할 것이다. 외로움이 짙었던 시간일수록 그리움 또한 배가 되는 것 같다.

이방인의 눈으로 처음 본 이국의 거리를 거닐고 그들의 생활을 바라보았다. 가난하지만 낭만적인 사람들. 따뜻한 빛의 가로등이 켜질 때면 곳곳에서 버스킹을 하는 생의 연주자들. 족히 80은 넘었을 것 같은 노인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에 영혼 깊은 곳에서 또 다른 생을 만날 수 있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걷고, 부딪치고, 울음을 삼켰던 거리와 눈빛들이 생각난다.

'비내리는 마르자니쉬빌리'

매일 그림을 그리다가 저녁 무렵에 뚜벅뚜벅 홀로 걸으며 므트크바리강 다리 위에 서서 저물어가는 노을을 바라보던 일상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돔' 레스토랑에 앉아 조지아 맥주 한 병을 시켜놓고 말없이 앉아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던 일. 유일하게 눈인사를 했던 수백 년은 됨직한 나무 옆에서 낡고 먼지 묻은 탁자 위에다 과일을 놓고 파는 노점상 부부. 숙소 앞에 있는 작은 상점의 무심한 아가씨. 벼룩시장 내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매력 넘치는 게오르기 아저씨도 그립다. 백번을 넘게 드나들었지만 눈인사조차 건네지 않던 무뚝뚝한 화방 여주인도 많이 보고 싶다.

고국으로 귀국해 코로나를 경험하고 있다. 조지아에서의 고립을 마쳤는데 또 다른 고립과 맞닿았다. 조지아에서도 코로나가 심각하다는 소식이 간간이 들려와 마음이 안타깝다. 높은 산과 들녘, 아름다운 강이 있어 공기가 좋은 나라이지만 의료수준이 빈약하고 자유로운 사람들의 의식 탓에 코로나가 더 심한 것 같다. 지금은 더더욱 갈 수가 없어 불쑥불쑥 올라오는 심한 향수로 인해 마음에 생채기가 난다.

 '트빌리시 풍경'

 지난 여름에는 트빌리시에서 작업했던 작품으로 전시회를 하고 생애 첫 시화집 '이방인의 소묘'를 출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무등일보에 63편의 글과 그림을 올렸다. 글을 쓰면서 그곳의 생활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간절히 그리워하면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트빌리시를 찾게 되면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홀가분한 여행자로 지내고 싶다. 와인에도 취해보고 고봉을 향한 거친 트레킹도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지면을 할애해준 무등일보와 편집인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서툰 글을 잘 봐주신 분과 독자들께도 지면을 통해 감사 인사를 드린다. 힘들게 연재를 이끈 나에게도 토닥토닥 격려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작지만 아름답고 용감한 조지아에 위로를 보내며 무탈하기를 소망한다.


한희원

시인을 꿈꾸던 문청출신의 한희원은 조선대 미대를 나와 교사로 활동하다 1997년 '내 영혼의 빈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양림동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했다. 화업 45년 만에 화가의 길을 침잠하기 위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일년 동안 작업활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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