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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기름 범벅 물건 버리고 다시 들여 장사"

입력 2020.09.19. 16:03 수정 2020.09.19. 22:19
[수해 후 다시 문을 연 구례읍 5일장]
시름 떨치고 40일 만에 회복한 활기
피해 컷지만 도움받아 다시 장사 가능
지난달 수해를 입은 후 40일 만인 지난 18일 다시 개장한 구례읍 5일장에 손님들이 몰려 북적이고 있다.

구례읍을 관통하는 섬진강 지류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는 가을이 왔음을 느끼게 하지만 그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누렇게 익어가는 벼들과 뼈대만 남은 비닐하우스는 지난 달에 심각한 수해를 입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줬다.

구례군민들 말대로 '6·25 이후 구례에 가장 큰 피해를 준' 수해 후 40일 만인 18일 다시 개장한 구례읍 5일장. 이곳이 집 1층 높이까지 물이 찼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여느 곳과 비슷한 평범한 시골장을 방문한 것으로 착각할 만큼 인파들이 북적였고 시끌벅적했다.

이날 오전 시장 곳곳에서 물건 흥정하는 듯한 말다툼, 곧이어 흥정이 깨진 듯 큰소리도 났고, 이웃 상인들끼리 농담한 듯 큰 웃음소리도 들렸다.

한 시장 상인은 "물이 집을 집어 삼킬 만큼 찬 것은 생전 처음이다. 상가가 물에 잠겼을 때는 바다를 본 것 같았다"며 상가 천장 높이까지 손을 높였다.

이 상인의 점포는 알록달록한 화려한 일바지를 매대 앞에 전시하며 판매하고 있었다. 곧 추워질 것이라는 것을 일러주는 듯 누빔 조끼와 바지가 그 옆에 걸려 있었다.

이 상인은 "물이 빠지고 가게에 나와보니 떠내려간 게 대부분이고, 흙탕물이 잔뜩 묻은 것이 조금 남았더라"며 "가게 벽은 기름도 묻어서 한참 동안 머리가 아팠다"고 회상했다.

수해가 나기 전에 들인 물건과 수해 복구 후 장사를 위해 빚을 내 들인 옷, 가게 내부 수리까지 수천만원이 깨졌다. 그는 "전남도랑 구례군에서 100만~200만원 지원해줘 고맙지만, 큰 도움도 안된다"며 "시장은 물론 집까지 다 잠겨 몸만 빠져나온 상인 들이 많아 매일 옷을 사가기도 한다"고 밝혔다.

5일장 인근의 목욕탕과 주유소, 카센터도 물에 잠기면서 이 곳에 있던 기름들이 흘러나와 시장은 물론 구례읍 전체를 악취로 괴롭혔다.

그릇 가게 주인은 "사기 그릇은 몽땅 깨지고 플라스틱 용기나 후라이팬, 냄비 등은 진흙에 기름기까지 묻어 씻는다고 팔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며 "수해로 잃거나 버린 물건, 다시 들인 물건까지 1억원은 빚진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순호 구례군수를 비롯한 구례군청 직원들은 18일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5일장을 찾았다.

아버지와 함께 철물점을 운영하는 젊은 상인은 "그래도 우리는 나은 편이다. 물로 씻고 기름칠을 다시 하면 팔 수 있는 데다 가게 다락에 올려 놓은 것은 피해를 비껴갔다"며 "물에 잠긴 물건들은 최대한 싸게 팔려고 구분해 놨다"고 밝혔다.

시장 중심가는 어느 정도 복구가 됐지만, 외곽의 오랜 한옥들은 지붕이나 벽이 무너지거나 집 자체가 휩쓸려 터만 남은 곳도 있었다. 이날도 상가 곳곳에서 뼈대만 남은 집과 상가를 허물고 있었다.

상인들은 저마다 "그래도 사람이 다치지 않고 죽지 않아 다행이다. 또 군인들부터 전남과 전국 곳곳에서 오셔서 봉사활동을 해주신 분들이 너무 고맙다"며 "그 분들 덕분에 기운 차리고 장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구례읍 5일장의 철물점에 진열된 물건 포장 비닐에 수해 흔적인 진흙이 묻어 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노란색 잠바를 입은 군청 직원 무리가 5일장을 찾았다. 공무원들은 이날 시장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고 시장 물건도 사주기 위한 이벤트를 위해 찾은 것이다.

시장의 한 백반집 주인 역시 "6대의 냉장고와 부엌 조리기구, 티브이, 테이블을 버리고 생 돈 들여 다시 들일 때는 눈물이 났다"면서도 "그래도 오랜만에 손님이 꽉차서 정신없이 움직이니 기분이 좋다"고 밝혔다. 기자도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을 들렸지만 두 군데나 자리가 없거나 밥이 다 떨어져 되돌아 나와야 했다.

이날 직원들과 함께 5일장을 찾은 김순호 구례군수는 5일장 복구율을 80%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

구례읍 5일장 한 상가는 수해 40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복구가 진행 중이다.

김 군수는 "구례를 덮친 수해는 섬진강댐과 주암댐의 저수율이 95%가 된 후에야 방류해 발생한 인재다"며 "이 때문에 상인들 평균 피해액만 수천만 원이고 물건을 들이는데 또 그만큼 들었다. 시골 분들이 1억~2억의 빚을 지면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고 밝혔다.

김 군수는 "아직 복구 비용도 받지 못해 피해 주민들에게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 수자원공사는 인재인 것을 인정하고 배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선정태기자 wordflow@srb.co.kr·구례=오인석기자 gunguck@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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