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2020.08.15(토)
현재기온 26.5°c대기 좋음풍속 1.4m/s습도 90%

김세경의 월드뮤직-'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입력 2019.12.12. 20:03
다시 만날 날 희망하며 그날의 기쁨을 노래하다
‘올드 랭 사인’의 가사가 된 시를 창작한 스코틀랜드 시인 로버트 번스.

대학원 입학 후 함께 조교를 맡게 되면서 시작된 그녀와의 인연만큼 기분 좋은 우정도 드물었다. 대학원을 마치기도 전에 결혼해 광주로 내려온 나와는 달리 그녀는 대기업 중역 비서로 시작해 대학원을 마치자 마자 국제회의 전문가로 최고의 광고 기획자로 활동했고 그리고 지금은 스포츠 마케팅 회사의 중역으로 정말 멋진 삶을 살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일부러 일 핑계 대고 이쪽에 올 일을 만들어 연락해준 그녀의 마음이 고마웠다.

그녀는 살면서 내내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엄하고 보수적이셨던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너무 특출난 것도, 일만 하는 것도 항상 불만이셨다. 여자는 때가 되면 결혼하고 애도 낳고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언제나 그녀를 옥죄셨다. 그랬던 그녀의 아버지께서 내가 외국유학 가 있던 사이 두 번의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고개를 겨우 까닥하시거나 손가락을 움직이실 수 있는 정도라고 했다. 사실 그녀에게 전화 올 때마다 혹시나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라도 했을까 봐 가슴이 멈칫거렸다. 정말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녀는 의외로 무척 밝았다.

아버지의 뇌출혈 앞에서 그녀는 비로소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아버지는 자신을 정말 사랑했지만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모르고 평생 그녀에게 화만 내고 계셨다는 것을 말이다. 그녀는 지난 몇 년간 주말마다 아버지를 찾아 뵈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자신도 그 긴 세월 아버지로 인한 고통과 슬픔에서 비로소 회복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버지께서 얼마나 더 자신과 함께 하실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후회는 없다고 말이다. 누가 그랬다. 희망이 꿈을 대신하기 시작하면 늙어가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녀 얼굴에서는 빛이 났다. 그녀를 보내고 오는 길에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이 생각났다.

‘이별의 곡’ ‘석별의 정’으로 불리기도 하는 ‘올드 랭 사인’…. 헤어짐을 노래한 곡이었지만 다시 만날 날을 희망하고 그날의 기쁨을 노래하는 곡이다.

오래된 인연을 어찌 잊어 먹고

머릿속에 떠올리지 않으리?

오래된 인연들과 지난지 오래된 날들

어찌 잊으랴?

오랜 옛날부터, 내 사랑아

오랜 옛날부터

다정함 한잔 축배를 드세

오래된 옛날을 위해

너낸 네 잔 한 잔 사고

나는 내 잔 한 잔 꼭 살 테니

다정함 한잔 축배를 드세

오래된 옛날을 위해

우리 둘은 쉴세 없이 언덕을 누비고

아름다운 민들레 꺾곤 하였으되

이제 발이 지칠 만큼 돌아 다녔노라

오래된 옛날 이후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 없이

우리 둘은 노를 젓곤 하였지만

우릴 가르려는 바다는 넓어 지려고만 하네

오래된 옛날을 이후

내 사랑하는 친구야, 그 손이 저기 있으니

손을 뻗어 내 손을 잡게

유쾌한 한잔을 같이 마시니

오래된 옛날을 위해

-‘올드 랭 사인’ 중

이 ‘올드 랭 사인’은 스코틀랜드의 가곡이자 작가가 확실한 신 민요이다. 스코틀랜드의 시인인 로버트 번스가 1788년에 어떤 노인이 흥얼거리던 노래를 기록해 지은 시를 가사로 하고 윌리엄 쉴드가 작곡한 곡으로, 그의 오페라 ‘로지나의 서곡’에 이 곡의 멜로디를 가져다 쓴 것이 최초의 레코딩으로 그렇게 탄생한 노래이다.

오늘날 영국에서는 윌리엄 쉴드의 생일인 1월 25일을 국경일로 정하고 기리고 있다니 영미 문화권에서 그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 잘 알 수 있다.

원래 첫 ‘올드 랭 사인’은 템포가 빠른 댄스음악에 가까운 노래였다고 한다. 로버트 번스가 이 노래의 복사본을 스콧 음악 박물관에 다음과 같은 노트와 함께 보냈다. “이 노래, ‘올드 랭 사인’은 내가 어떤 노인으로부터 받아 적기 전까지 단 한번도 인쇄되거나, 원고로 정리되거나 발표된 적이 없는 음악입니다.” 물론 몇몇의 노래나 시가 비슷한 구절을 갖고 있는 것들이 있으나 이 노래가 새롭게 작사 작곡 된 것이라기 보다는 사람들에 의해 불려지던 것들을 모아 각색했기 때문에 이 같은 성격이 강하다는 주장을 하는 학자들도 있어왔다. 그 역사나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 분분 하지만 영미권에서는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면서 다 함께 부르는 축가로 쓰이고 있다.

‘올드 랭 사인’은 스코틀랜드말로 ‘아주 아주 옛날부터’라는 뜻인데 이 노래는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은 곡이다. 외국 열강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던 1907년 즈음, 조국애와 충성심 그리고 자주의식을 북돋우기 위해 대한민국 애국가의 노랫말이 완성되었고 그 직후 ‘올드 랭 사인’의 곡조를 붙여 민중들에게 널리 불렸다. 1919년 3월 1일, 3·1운동 때의 한반도 민중들도 ‘올드 랭 사인’의 멜로디를 라디오로 들으며 애국가를 따라 불렀다. 안익태가 후에 애국가를 외국의 이별노래 곡조에 부르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1935년 현재의 애국가를 작곡했고, 1948년 대통령령에 따라 안익태가 작곡한 ‘한국환상곡’이 애국가의 멜로디로 정해지기 전까지는 ‘올드 랭 사인’이 애국가의 멜로디로 사용됐다. 1953년에, 영화 ‘애수’가 상영되면서 이 노래가 다시 소개됐고, 시인 강소천이 한국어 번역가사를 붙였다. 이후 졸업식에서 환송곡으로 많이 불리곤 했다. 뿐만 아니라 2000년대에 들어선 가수 김장훈이 ‘올드 랭 사인’ 곡조에 애국가 가사를 붙인 속칭 ‘독립군 애국가’를 2012년 하계 올림픽 응원가로 리메이크해 발표하기도 했다.

이 ‘올드 랭 사인’은 장례식, 졸업식 등에서도 사용되는데 주로 이별이나 어떤 상황이 종료되는 때 많이 불려졌다. 스코틀랜드에서는 그 해의 마지막 날을 호그마나이라고 부른다. 이 때에는 모두가 손에 손을 잡고 함께 원을 만들며 함께 전통적인 춤을 추는데 이 행사의 마지막을 항상 이 ‘올드 랭 사인’이 장식을 했다.

뿐만 아니라 영국과 스코틀랜드에서 크고 작은 행사, 어떤 곳에서는 웨딩곡으로까지 이 곡이 연주됐다. 오죽하면 국가(國歌)로 지정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는데 민족혼을 고취시키는 내용이 약해 매번 거절당했다는 여담이 있을 정도이다. ‘올드 랭 사인’은 각 나라마다 그들의 언어로 번역돼 각종 행사에 사용되고 있어 어쩌면 누구나 다 한번씩은 들어 봤음직한 노래가 아닐까 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졸업식마다 이 노래가 연주됐는데 절대로 눈물이 나올 것 같지 않은 졸업식에서도 이 노래만 나오면 희한하게 눈물이 났던 기억이 난다. 누구나 한번씩은 들어 봤음직한 이 ‘올드 랭 사인’, ‘석별의 정’을 들어야 비로소 ‘아 연말이구나!’하는 연말 분위기가 난다. 매해 이맘 때면 항상 챙겨 듣는 곡인데 어쩌면 들을 때마다 느낌이 그렇게 다를 수 있는지 모르겠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는 가장 간단하고 당연한 인간사의 이치에 가장 어울리는 곡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날은 점점 더 추워진다. 오늘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화 한 통, 메시지 한 통 남겨보자.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으니 때를 놓치면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을 못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srb.co.kr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