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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길 명예교수 "모두의 가슴 속에 살아나는 열린 민주주의로 가야"

입력 2020.06.29. 20:30 수정 2020.06.29. 22:29
교육지표선언 참여 이홍길 전남대 명예교수
학살에 가까운 해직과 제적
유신체제 대중저항의 시발점
80년 5·18 핵심 동력으로
오늘 오후 4시 출판기념회도
이홍길 전남대 명예교수가 전남대 교수진을 중심으로 진행됐던 1978년 우리의 교육지표 선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임정옥기자

"교육지표 선언은 '최고지성이라는 대학이 어두운 시절 어떻게 대처하는가'라는 관점에서 4·19 막바지 교수단의 시위참여에 비견되는 역사적인 사안입니다."

1978년 박정희정권을 발칵 뒤집은 교육지표선언 11인으로 참여했던 이홍길 전남대 명예교수는 "1800년대 헌법을 무력화하려는 국왕에 대항한 독일 대학교수들('괴팅겐 7교수 사건')이나 2차대전 군국주의자들의 고사포 설치에 항의한 일본 동경대 교수 등 세계지성들의 연장선에서 생각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박정희(국민교육헌장·새마을 운동)나 대만 장재석(신생활운동) 같은 전제적 독재자들은 체제 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를 만드는데 박정희는 이를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위장했다"며 "박정희 이데올로기는 일본 괴뢰국 만주국이나 화북지역 괴뢰정부의 왕도정치에 기반한다"고 혹독히 비판했다.

박정희는 '새마을 운동이니 국적있는 교육'이니 등 그럴싸하게 포장해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걸 산출해낸, '교활한 능력'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박종홍이라는 당시 서울대 철학과 교수가 만들어낸 '국민교육헌장'은 박정희 이데올로기가 총체적으로 드러난 것"이라며 "위험한 것은 지상의 모든 그럴싸한 가치를 다 담지만 단 하나 '정의'는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1978년, 6월27일 이 국민교육헌장을 정면으로 비판한, 전남대 교수 11명의 서명이 담긴 '교육지표 선언'이 일본 아사히 신문에 실리자 박정희 정권은 발칵 뒤집혔다.

70년대 학원정비라는 이름으로 정권에 이롭지 못한 교수들을 대량 해고하던 시절로 백낙청, 이영희 등 내로라 하는 교수들이 해직당했던 시절이었다. 살벌한 분위기에 당초 참여키로 했던 서울지역 교수들이 모두 빠지면서 교육지표선언 자체가 무산될 위기였다. 송기숙 교수를 중심으로한 전남대교수 11명이 서명을 하고 아사히 신문 기고라는 방식으로 기습적으로 세계에 발표한 것이다.

이후 교수와 학생들에게 학살에 가까운 조처들이 처해진다. 당시 참여했던 11명 교수진은 한 달 안에 모두 해직되고 전남대 송기숙 교수와 연세대 성내운 교수는 구속된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의 핵심 인물들인 윤상원 열사, 고 윤한봉 선생, 김상윤 윤한봉기념사업회 고문 등도 모두 제적된다.

이 명예교수는 "당시만 해도 유신체제가 너무 엄혹했고 앞날이 암울한 상태여서 뿌리 째 뽑혀 점점 말라 비틀어져 가는 나무 신세 같다는 심정이었다"며 "'신생활 운동'이라는, 장재석의 독재와 박정희의 독재를 세상에 알리는 논문을 쓰는 일이 유일한 저항의 행태였다"고 말했다.

이들 교수들은 당시 광주에서 활동하던 소설가 황석영을 비롯한 대중운동 진영과 교류하며 시민들을 대상으로 민주대학을 운영하는 등 앞날을 대비한 사회활동을 병행해갔다. 허나 세월은 무상타. 참여자 중 7분이 세상을 떠나고 송기숙 교수와 국사학과 김두진·홍승기 교수 등 생존자는 단 4명이다.

42주년을 맞는 교육지표선언의 의미를 묻자 이 명예교수는 "인간만이 갖는 의식이 중요한데 잘못된 실용주의로 인간에 대한 자부심이 없어지고 있어 경계하고 걱정해야 한다"며 "민주주의가 모두의 가슴 속에 살아나는 열린 민주주의로 가야지 집단의 움직임으로 가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열린 민주주의, 다함께 민주주의가 통일의 동력도 되고 남이 아닌 우리로 돌아오는 길을 만들어 줄 것이란 기대다.

이 명예교수는 30일 오후 4시 5·18 기록관에서 오랜 친구 김병욱 충남대 명예교수와 함께 펴낸 '오뇌와 우정의 60년, 민주화에 담다' 출판기념회를 갖는다.

이 명예교수는 광주고 재학시절인 1960년 광주지역 4·19 운동을 주도하는 등격변의 근현대사를 온 몸으로 살아낸 역사의 산 증인이다.


교육지표선언은

1978년 6월 27일 김두진·김정수·김현곤·명노근·배영남·송기숙·안진오·이석연·이방기·이홍길·홍승기 등 11명의 교수가 유신정권의 교육 이데올로기였던 국민교육헌장을 비판한 선언문 '우리의 교육지표'를 말한다. 선언문 발표 이틀 뒤인 29일 전남대 학생들이 '민주학생선언'을 발표하며 지지시위를 벌이는 등 유신체제에 대한 대중적 저항과 민주화운동의 시발점이 됐다.

조덕진기자 mdeung@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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