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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탐구자와 걷는 도시건축 산책

[공간탐구자와 걷는 도시건축 산책 ②양림동] 역사가 깃든 버드나무 숲 골목에 새싹이 돋아난다

입력 2021.02.18. 16:26 수정 2021.02.18. 17:16
무등일보·대한건축학회 공동 기획

양림 공예특화거리 골목

어릴 적 뛰어 놀았던 골목길이 기억난다. 아침부터 해질녘까지 뛰어 놀았던 골목에서의 기억. 40여년을 훌쩍 넘긴 기억이지만 그날의 추억들을 잊지 못한다.

하루 종일 뛰어 놀다보면 밥 짓는 냄새가 골목 전체를 감싸 안았다. 엄마의 밥 먹으라는 소리가 골목길 구석구석 울려 퍼질 때쯤에야 우리의 하루도 저물었다. 미소를 머금게 하는 추억이다.

우리의 도심에도 그런 공간이 많았던 것 같은데 이제는 학동8거리와 백화마을처럼 개발이라는 논리 아래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골목길도 도심의 성장 속도와 같이 하루하루가 다르게 바뀌어갔다.

도심의 중심은 충장로와 금남로에서 신도심, 택지개발지구로 사람들과 같이 이동했다. 그로 인해 구도심은 슬럼화 되어가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재개발사업으로 고층아파트들이 들어와 다시 활력을 되찾고 있지만 옛 추억까지 함께 가져오지는 못한 듯싶다.

이런 변화 속에도 옛 터와 길, 골목, 1960~1970년대의 개량한옥들을 간직한 곳이 있다.

'버드나무 숲으로 덮여있는 마을' 이라는 뜻의 양림(楊林) 이 그곳이다. 120년 전 광주 근대화의 시작과 함께 유입된 선교사들의 기록과 흔적이 있는 '역사문화마을'과 '펭귄마을'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양림동의 골목

양림동 시간여행은 여유있게 반나절 정도를 오롯이 걸어봐야 비로소 그 가치를 읽을 수 있다. 2m 남짓되는 골목길을 걷노라면 붉은 색, 회색 벽돌로 만들거나 뿜칠, 페인트로 칠한 다양한 모습의 벽을 지닌 골목길을 접할 수 있다. 이름 또한 서서평길, 양촌길이다. 왜 이런 이름으로 불리웠을까 알아보는 것도 재미난 이야기 거리가 될 것이다. 최승효 고택 담장 넘어 활짝 핀 능소화가 반기는 길을 지나 담장 아래 화강석 받침석을 두고 너머의 가옥 내부를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이장우 가옥…. 아마도 이 골목길은 100여년전부터 지금의 모습을 간직한 채 이곳에서 많은 풍경을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양림동은 골목 곳곳에 지역작가의 공방과 갤러리들이 있는 문화예술촌이다. 이런 지역의 특색을 살린 것이 양림오거리에 위치한 펭귄마을 입구의 공예특화거리이다.

이곳 또한 소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지역주민들이 텃밭과 정원, 좁디좁은 골목의 담벼락에 못 쓰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내걸던 것이 지금 골목의 시작이다. 이곳을 보전하기 위해 행정이 뒷받침했고 그 결과 지금의 문화공원으로 자리 잡게 됐다. 24개동의 건축물을 리모델링하면서 우선적으로 구조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독립된 주거가 갖는 담장을 허물어 소통과 통로의 공간을 만들었다.

양림동 공예특화거리

골목의 빈 담벼락은 지금도 하나 둘 정크아트로 채워지며 변화돼가고 있다. 담벼락이 허물어진 곳에는 작은 소통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어디 하나 막힌 곳 없이 통(通)하게 돼 있고 어느 곳에 앉아서 쉬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서로가 불편할 수도 있지만 불편함 속에서 소통하고 이해하는 것이 가족공동체가, 마을이, 도시가 살아가는 목표가 아닐까.

같은 맥락에서, 아파트 복도에서 만나는 이웃들과의 마주침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네 아파트 복도가 그런 소통의 공간으로 역할하지 못한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런 이유로 아파트의 층간 소음, 프라이버시 등의 문제가 이슈화되는 것이 당연하듯 느껴지기도 한다.

도시재생이 화두가 되고 있는 시점에 양림동의 펭귄마을이 광주를 대표하는 문화공간,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공간, 그래서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텃밭을 빠져나온다.

양림동 텃밭을 지나고 나면 숭일학교 옛 터가 있다. 지금은 고층아파트가 들어선 이 자리에는 광주천이 직강화되기 전, 천변의 강자갈로 축대를 쌓아 만든 학교 담장만이 남아 안내판으로 그때를 기록하고 있다. 110년전에 개교한 학교라니 절로 담장에 고개가 숙여진다. 이렇게 남아줘서 고맙다고, 앞으로도 쭈욱 남아주시라고 인사를 전한다.

120여년의 역사와 함께 공존하는 양림동

그 길을 따라 조금 이동하면 기독간호대학교 인근 양림교회 옆으로 정사각형의 건축물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건축물은 형태부터 예사롭지 않다. 일반인들도 '유럽의 어느 도시에 있을 법한 건축물이 왜 이곳에 있을까' 궁금증을 가질 정도다. 건축물이 신축될 당시가 1914년이라고 하니 더 의아할 수 밖에 없는 듯하다. 이 건축물이 18세기 팔라디오 양식의 건축물과 유사함은 당시 서양인 선교사들의 설계와 감독으로 지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이 건축물은 개화기문화의 발상지가 됐고 그 자리에서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문화행사를 베풀었다.

오웬기념각의 입구 측에서 양림산으로 이어지는 제중길은 기독병원의 시초였던 제중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1905년부터 선교사들의 진료를 시작으로 전개된 의료사역은 1911년 현대식 병원으로 이어졌다. 110여년간 제중병원이 지역민을 돌봤음을 알고 제중길을 걷노라면 다시 한번 고개가 숙여지는 대목이다.

양림산 중턱 나지막한 산자락에는 선교사 사택들이 즐비하다. 현재는 게스트하우스, 명상관, 창작소로 사용되고 있는 시설이지만 100여년 전 이곳은 봉선동을 내려다보는 나지막한 산이었을 것이다. 이곳에서 풍토병을 이겨내며 지역민을 돌봤던 푸른눈의 선교사들이 새삼 감사해지는 하루다.

입춘이 지났다. 아직은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곧 새싹이 돋아날 것이다. 나른한 오후 양림동을 거닐며 광주의 산토리니 같은 이곳에서 광주의 역사와 문화를 느껴보면 어떨런지 싶다. 박종호 유민건축사사무소 대표

박종호는

제2의 인간이 되어 제1의 인간이 창작한 건축물을 진전시키기 위해 고민하는 건축가다. 필라델피아 도시계획위원회의 위원장을 지냈던 에드먼드 베이컨의 건축철학을 추구한다.

건축물이 얹혀지는 대지에 시간의 흔적을 기록하는 디자인에 매진하고 있다.

조선대 건축학 석사출신으로 유민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며 건축문화사랑편집인, 양림동건축테마투어해설사 등 사회적 활동과 전남대학건축학부 강사로 후학 양성에 힘 쓰고 있다.

양림동 공예특화거리, 장흥 및 화정1동성당, 광주광역시 광역치매센터, 곡성치매안심센터등을 설계했다. 양림동 공예 특화거리 지구 전체 건축물 설계로 광주시 건축상 금상을 수상했다. 특화거리 건축은 소통을 통한 보존과 재생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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