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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있는 남도의 다락집

그림이 있는 남도의 다락집- 순천 선암사 강선루

입력 2020.05.28. 10:52 수정 2020.06.11. 17:41 @이석희 mdmoon@naver.com
그 문 넘으면 부처인데 넘고 보니 문이 없네

외국인들에게 보여줄 가장 한국다운 곳을 딱 한 곳만 꼽으라면 어디일까요? 이런 질문에 유홍준 선생은 망설임도 없이 선암사라고 했다. 그는 언젠가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나와 선암사는 고향 같은 곳이라고 했다. 언제 가도 꽃이 지지 않고, 80여종의 푸른 나무들, 팔손이·동백·호랑가시·종가시나무가 있어 '자연이 빚은 수목원'이라고 한다. 1996년 광주 비엔날레 당시 프랑스, 폴란드, 영국, 미국의 외교관들에게 선암사를 구경시켜 주었더니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아름다움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하더라는 일화도 소개했다. 그 한 곳이 불국사가 아닌 선암사인 것이 나는 놀랍다. 그의 문화유산 답사기 1번지는 경주가 아닌 강진이다. 내 고향 해남에서 멀지 않은 강진 무위사. 우리는 수학여행을 경주로 다니곤 하여 고귀한 유적들은 다 그런 곳에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무위사, 다산초당, 백련사라. 가까이 있어 하찮은 것으로 여겼던, 순종하지 않는 자들의 유배지였던 남도의 저 골짜기가 천년고도 경주보다 더 그윽한 곳이라 한다. 그 뒤로 나는 고향에 갈 때마다 무위사에 들른다. 극락전 맞배지붕을 측면에서 바라보다가, 아무 생각도 없이 한참을 바라보다가 온다. 그러면 그 단순한 벽면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고, 마음속에 잔잔한 물결도 이는 것이다.

선암사는 옛 모습이 살아있어서 그럴 것이다. 옛날은 가고 새날이 오는 것이 세상사인데 선암사에는 옛 모습 그대로의 과거가 살아있다. 그것은 역설이다. 선암사의 과거가 잘 간직되어 있는 내면에는 근·현대 우리 불교의 아픈 역사가 있다. 한국불교의 전통은 독신 비구인데 반해 일본불교는 '대처식육(帶妻食肉)'을 한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승려들을 강압적으로 결혼시켰다. 이후 대처승들이 대거 출현하면서 한국불교의 주류로 등장한다. 해방 이후 비구승들은 독신전통을 복원하려는 노력을 해오다가 1954년 이승만이 전통사원에서 '대처승은 물러가라'는 요지의 유시를 내린 것이 발단이 되어 대대적인 '불교정화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절을 되찾으려는 비구 측과 절을 안 뺏기려는 대처 측은 심각한 대결양상으로 치닫는다. 정부의 묵인 아래 무력을 앞세운 비구 측이 절을 하나 둘씩 접수해 나갔다. 이때 내로라하는 한국의 주먹들이 머리를 깎고 대거 비구승 대열에 합류했다. 그들의 일부는 눌러앉고, 일부는 하산했다. 뒷날 조계종 총무원장 선출을 둘러싸고 폭력사태가 벌어져 조계사 난간 공중에서 사람이 회전하며 떨어지는 한 장의 사진이 해외토픽이 되었고, 잊을 만하면 승려 간에 주먹다짐이 벌어지는 것이 다 여기서 연원하는 것이다. 그것은 정화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자비'와는 거리가 먼 일들이었다. 1955년 전국승려대회를 계기로 종권과 사찰 주도권이 비구승에게 넘어왔고 정부도 이를 공인한다. 1962년 통합종단이 성립되면서 긴 반목은 봉합되었다. 이후 비구승은 조계종으로, 대처승은 태고종으로 나뉜다. 우리나라 전통사찰 대부분은 25개의 교구본사를 지닌 조계종 관할이다. 딱 하나 본사 규모로 남아 있는 것이 선암사다. 선암사는 태고종 승려들의 총본산이다. 2010년 이전까지 소유는 조계종, 점유는 태고종, 관리는 순천시 이렇게 삼등분 되었다. 이후 순천시는 빠지고 양 종단이 협의 결정하는 구조이며 소유권 분쟁은 고법에 계류 중이다. 그러니까 선암사는 지난 반세기 주지나 종단의 일방적 결정으로부터 자유로웠던 것이다. 불사는 필요에 따라 전각과 요사채 같은 새 건축물을 짓는 일이지만, 그것이 치부의 수단으로 전락하거나 혹은 무분별한 신축으로 자연과 산사의 조화를 해치는 경우도 많았다. 선암사는 그동안 개축이나 했지 신축불사는 못했다. 천년고찰 선암사의 고색창연함은 그런 전화위복의 역설 위에 있다.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흙길을 따라 올라가다 한 모퉁이 돌면, 작은 무지개다리를 만난다. 거기서 큰 무지개다리와 이어진 미음자(ㅁ) 길을 한 바퀴 돌고, 계곡 아래로 내려간다. 승선교의 지상 반원은 물에 비친 반원과 만나 원(圓)이 된다. 그 원을 통해 보이는 강선루(降仙樓)가 무우전 고매(古梅)와 쌍벽을 이루는 선암사의 백미다. 강선루는 승속을 가르는 관문이다. 절의 문은 문이 있으면서 문이 없다. 이 문 없는 문을 지나면 중생은 부처가 된다. 들어가면서 보이는 편액은 성당 김돈희의 글씨이고, 나가면서 보이는 편액은 석촌 윤용구의 필체이다. 김돈희의 '강선루'는 추수가 끝나 창고에 쌀을 쟁이고 있는 것처럼 통통하다. 윤용구의 '강선루'에 대해 80년 5월 녹두서점의 주인 김상윤 선생은 "광야에 홀로 서서 흰 수염과 두루마기를 휘날리며 세찬 눈보라를 견디고 있는 선비의 모습이 연상되는 글씨"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순천 선암사 강선루 

친분이 있는 스님과 차를 한잔 나누면서 "선암사는 봄이 제일 아름답지요?"했더니, "사시사철 언제나 그렇지요"한다. 초봄에 매화 필 때쯤 가끔 찾아가는 사람은, 책을 딱 한 권만 읽은 사람처럼 그때가 제일 좋은 줄 알지만, 늘 거기 사는 사람에게는 때가 없다. 꽃 피면 피는 대로, 낙엽 지면 지는 대로, 아름다움도 없고 추함도 없다.

성속(聖俗)은 어떤 것을 금(禁)하는 것으로 다르게 나타난다. 일반인이 성직자에게 예를 표하는 첫 이유는 금욕이다. 목사는 혼인하되 술은 불허한다. 신부는 금혼하되 술은 허락된다. 승려는 금혼에 금주에 금육(禁肉)이다. 우리 불교는 금하는 것이 너무 많다. 다 금해 놓으니 막걸리 한 잔에도 손가락질 받는다. 나는 수도승과 포교승으로 나눠 수도승은 엄히 수계토록 하되, 포교승에게는 터줘야 한다고 본다. 태고종 스님에게 성직자에게 요구되는 단 하나의 금욕을 묻는 것은 좀 그렇지만, 나는 그 하나가 혼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론이 궁금했다. 처자식이 생기면 부양해야 하고, 돈이 필요하고, 욕심이 생기고, 결국 수행에 방해가 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방해가 안 된다고 할 수 없지요. 자랑할 것은 아니라고 인정합니다. 비구대처가 공존했고, 이판사판(理判事判)이 공생했던 근대 불교사의 한 과정으로 이해하면 좋겠어요.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정직성입니다" 승려로서 금해야 할 진짜 하나는 '자기를 속이는 것'이라고 했다. 나를 속이면, 남을 속이고, 결국은 다 속이는 것이다. "승려도 때에 따라 술 마시고 고기 먹을 수 있다고 봐요. 김치찌개 먹으면서 고기를 골라낼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몰래 먹는 것은 안 됩니다. 금주라는 계율 뒤에 숨어서 몰래 마시는 것은 용납할 수 없어요. 대처승의 대처(帶妻)와 비구승의 '은처(隱妻 숨겨놓은 처)'는 차원이 다른 거예요"

금욕은 계율이 아니라 마음 속에 있다는 말이다. 태고종 승려이지만 동진 출가한 비구답게 칼칼하다. 선암사는 태고 보우국사를 종조로 한 태고종의 본산이다. 선암사를 1총림으로, 봉원사, 백련사, 법륜사, 청년사 등 4본사를 두고 있다. 승려 8천여 명의 한국불교 2대 종단이다. 종법에 따로 규정을 두지 않음으로써 승려 혼인의 길을 터놓고 있다. 종단 내 대처·비구는 7대3의 비율 정도라고 한다.글=이광이 시민전문기자·그림=김집중


글 : 이광이

언론계와 공직에서 일했다. 인(仁)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애인(愛人)이라고 답한 논어 구절을 좋아한다. 사진 찍고, 글 쓰는 일이 주업이다. 탈모로 호가 반승(半僧)이다. 음악에 관한 동화책과 인문서 '스님과 철학자'를 썼다.




그림 : 김집중

호는 정암(正巖)이다. 광주광역시 정책기획관 등 공직에서 30여년 일했다. 지금은 고봉 기대승선생 숭덕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틈틈이 강의도 한다. 고교시절부터 한국화를 시작하여 끊임없이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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