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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가두방송 차명숙씨 기자회견 "5·18 고문수사 진실 밝히고 사죄해야"

입력 2018.05.01. 00:00
5·18민주화운동 당시 가두방송을 했던 차명숙씨가 30일 오전 광주 서구 광주시의회 3층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980년 5·18 당시 보안대와 상무대, 광주교도소에 수감되면서 끔찍한 고문을 받았다"며 만행을 폭로하고 있다. 뉴시스

5·18민주화운동 당시 가두방송을 했던 차명숙씨가 계엄군의 고문을 폭로하며 사죄와 철저한 진상 조사를 촉구했다.

차씨는 30일 광주 서구 광주시의회 3층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18 당시 보안대와 상무대 영창, 광주교도소에 수감되면서 끔찍한 고문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차씨는 "1980년 5월 19일 계엄군의 무자비한 만행을 광주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가두방송을 시작했다"며 "21일 전남도청 앞 계엄군의 집단 발포 이후 병원에서 부상자를 돌보다가 기관원들에게 붙잡혀 505보안대 지하로 끌려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보안대 지하로 내려가는 수많은 계단만이 희미하게 생각난다.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끔찍한 고문을 받았다"며 "고문은 너무나 가혹하고 잔인했으며 여성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성들은 끌려 온 하나의 불과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문으로 인해 하얀 속옷이 까만 잉크색으로 변하도록 살이 터져 피가 흘러 나와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없었다"고 증언했다.

차씨는 광주교도소 이감 후에도 인권유린과 고문이 이어졌다고 말문을 이었다.

그는 "1980년 9월 16일 광주교도소로 이감돼 지내던 중 9월 30일 오후 5시께 교도관 3명이 들어와 등 뒤로 수갑을 채우고 곤봉을 끼어 양쪽에서 들고 나갔다"며 "수사관들은 사형까지 받을 수 있다며 협박했고 자살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10월 2일부터 31일까지는 혁시갑을 한 채 징벌방에서 지냈다"고 밝혔다.

차씨는 "38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의 기억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1980년 5월에 자행된 고문수사와 잔혹행위에 대해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고 관련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광주교도소는 지금이라도 고문수사와 가혹행위에 대해 사죄하고 5·18민주화운동을 연구하는 단체 등은 진실을 정확히 기록하라"고 촉구했다. 유대용기자 ydy213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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