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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이윤주 입력 2020.08.12. 18:38 수정 2020.08.12. 19:16

1991년 8월14일. 광복절을 하루 앞둔 그 날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중 최초의 증언이 터져나왔다. 바로 고 김학순(1924~1997)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나선 것이다. 할머니는 위안부 제도에 관한 책임을 부정하는 일본 정부의 주장에 반박하며 일본군의 만행과 참혹한 경험을 만천하에 낱낱이 고발했다.

제3자의 입이나 글을 빌리지 않은 생생한 자신의 이야기였기에 그 누구도 감히 부정하지 못했다. 한일 양국에도 큰 파장을 가져왔다. 침묵과 외면으로 일관하던 일본 정부는 겉으로나마 사죄와 반성하는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뒤늦게 우리 정부도 '정신대 문제 실무대책반'을 설치하고 이듬해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생활안정지원법'을 제정했다.

또 1992년 1월8일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일본 총리 방한을 계기로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는 '수요집회'가 시작됐으며,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는 그 해 국제연대 네트워크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아시아연대회의)를 발족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나섰다. 그로부터 20년후인 지난 2012년 12월 대만에서 열린 '제11차 아시아연대회의'에서 8월14일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제정했다.

돌아보면 지난한 시간들이다. 김학순 할머니가 기자회견에 나서기까지 반세기 남짓한 시간이, 그로부터 다시 30여년이 지났다.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시금석이 됐던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는 정의기억연대로 명칭이 바뀌었고, 수요집회는 여러 갈등으로 장소를 옮겨야만 했다.

위안부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일본은 오히려 보복으로 맞섰다. 참으로 후안무치한 일이다.

광복을 맞이한지 벌써 일흔 다섯해가 지났건만 청산해야 할 과거는 날로 쌓여가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의 잔재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제가 자랑스러울 것 하나 없는 과거사를 들추고 나선 게 돈 몇 푼 더 받기 위해서였겠습니까?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 민간단체의 위로금을 받지 말고 일본 정부의 공식사과 및 배상을 받아내야 합니다." 김학순 할머니의 유언이다. 1965년 한일협정, 2015년 한일 위안부 협상이 더더욱 부끄러워지는 오늘이다. 청산의 발목을 잡는 이들이 우리여서는 안될 일이다. 이윤주 지역사회부 부장대우 lyj2001@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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