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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터) 역병과 명절

@윤승한 입력 2020.09.24. 18:26 수정 2020.09.24. 18:57

"역병이 번지기 시작해 차례를 행하지 못하니 몹시 미안했다." 경북 예천에 살던 초간 권문해는 1582년 그의 '초간일기' 2월15일자에 "나라 전체에 전염병이 유행하는 탓에 차례를 지내지 못해 조상님들께 송구스럽다"고 적었다.

한국국학진흥원이 최근 추석 연휴를 앞두고 감염병과 명절 관련 내용이 담긴 조선시대 일기 자료들을 공개했다. 수백년 전 그 시대에도 감염병은 유행했고, 백성들의 일상은 크게 제약을 받았다.

이 자료를 보면 1798년 추석을 앞두고 나라에 천연두가 돌았음을 알 수 있다. 안동 하회마을에 사는 류의목은 그해 8월 14일자 '하와일록'에 "마마가 극성을 부려 마을에서 의논해 추석에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정했다"고 기록했다. 50여년 후인 1851년에도 그랬다. 안동 풍산의 김두흠은 그 해 3월 5일자 '일록'에서 "나라에 천연두가 창궐해 차례를 행하지 못했다"고 당시 상황을 남겼다.

조선시대 선비들 조차 감염병이 돌자 차례를 생략했다. 전염을 우려한 탓이다.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일도 중요했지만 가족과 친지들의 안전보다 우선할 순 없었다.

올 추석 연휴를 목전에 두고 곳곳에서 고향방문 자제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방역당국과 지자체들이 나섰고 농어촌지역 고령의 부모들까지 동참했다. 코로나19 때문이다. '오지 않는 게 효도'란 말까지 나온다.

전국적으로 하루 신규 확진자가 두자릿수로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소규모 집단감염이 이어지고 있고 감염원을 알 수 없는 깜깜이 전파도 늘고 있다. 무증상 감염도 큰 걱정거리다.

누가 언제 어디서 바이러스에 감염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와중에 대규모 귀성행렬이 현실화될 경우 고향의 부모와 가족·친지의 안전은 크게 위협받을 수 있다. 오래 전 당시의 부모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 우리 부모들이 자식들의 귀성길을 만류하고 나선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지난 17~19일 실시된 전국지표조사에서 국민 5명 중 4명 가량이 정부의 비대면 추석 권고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 건 주목할 만하다. 이번 추석 연휴를 잘 넘겨야 우려했던 가을 대유행을 막을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방역의 진리는 사람간 거리를 두는 것이다. 윤승한 논설위원 shyoon@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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