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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현의 새로 쓰는 전라도 마한사

마한은 삼한의 뿌리이자 한국 고대사의 뿌리였다

입력 2020.08.19. 14:38 수정 2021.02.16. 11:02
새로 쓰는 전라도 마한사Ⅱ<3> 문헌에 보이는 마한
정촌고분 출토 귀걸이

우리가 마한사를 이야기할 때 고고학적 자료 말고는 마한 관련 자료, 특히 문헌 자료가 많지 않다고 말을 한다. 하지만 실제 살펴보면 마한의 실체를 밝힐 문헌 자료가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 문헌 자료조차도 당시 시대와 관련하여 구조적으로 분석하거나, 고고학적 유적·유물과 연결 지어 유기적으로 분석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하였다. 그러다 보니 이루어진 마한 연구 대부분이 고고학적 발굴 및 보고서 작성으로 그치고 있다.

마한에 관한 첫 문헌 기록은 아마도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실려 있는 다음의 기록이라 하겠다. 삼국지는 290년경 진수(陳壽)가 편찬하였는데,이 책에 있는 '동이전'은 이보다 약 150년 늦게 편찬된 후한서 동이전과 함께 한국사의 초기 역사를 살피는데 중요하다.

"(韓)有三種,一曰馬韓, 二曰辰韓, 三曰弁韓"(한(韓)에는 마한·진한·변한이 있다)

태간리 자라봉고분

이 사료는 "마한이 진한 변한과 한을 구성하였는데, '韓'이 셋이 있다 하여 '삼한'이라 하였다"는 내용이다. 이를 가지고 일부에서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어원이 시작되었다고 하나,이는 호사가의 추측일 따름이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또 다른 기록에는 "辰韓在馬韓之東,其耆老傳世,自言古之亡人避秦役來適韓國,㉠馬韓割其東界地與之(중략) ㉡其十二國屬辰王 辰王常用馬韓人作之 世世相繼"(진한은 마한의 동쪽에 있다. 늙은 노인이 대대로 전하여 말하길 옛날 진(秦)의 사역을 피하여 온 망명인이 한국에 왔다. ㉠마한이 그 동쪽 땅을 나누어 주었다.(중략) ㉡그 열두 나라는 진왕에 속하는데 진왕은 항상 마한 사람이 하였는데 대대로 잇는다.) 라는 내용이 있다. 여기에는 ㉠마한이 동쪽 땅을 진한에게 떼어 주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오늘날 경상도도 원래는 마한 땅이었음을 말해 준다. 다음으로는 ㉡삼한 이전에 한반도 남쪽에는 진(辰)국이 있었는데, 진국의 왕 진왕은 항상 마한 사람이 하였다는 내용이다. 이는 마한이 삼한을 대표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근거이다. 이렇게 위의 두 사료를 통해 마한이 삼한의 뿌리이고, 진왕을 마한인이 세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한 관련 문헌은 위지 동이전을 제외한 또 다른 문헌에도 보인다. 5세기 중엽 기록인 '후한서 동이열전'에는 다음의 내용이 들어 있다.

"東西以海爲限 皆古之辰國也 馬韓最大 共立其種爲辰王 都目支國 盡王三韓之地 其諸國王先皆是馬韓種人焉"(동쪽과 서쪽은 바다를 경계로 하니 모두 옛 진국이다. 마한이 가장 강대하여 그 종족들이 함께 왕을 세워 진왕으로 삼아 목지국에 도읍하여 전체 삼한지역의 왕으로 군림하는데, 삼한 국왕의 선대는 모두 마한 종족의 사람이다.) 여기에는 마한이 삼한 중 가장 강대하므로 마한 왕이 진왕이 되어 목지국에 도읍을 하였고, 삼한의 왕들은 모두 마한 출신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6세기 초 기록인 '주서 열전 백제전'에는 "百濟者 其先蓋馬韓之屬國 夫餘之別種"(백제는 선조들이 마한에 속국으로 있었다. 부여의 별종이다.)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즉, 백제가 마한의 속국이었으며 부여의 별종이라는 주서의 내용이다. 주서는 638년 완성된 중국의 정사(正史)인데, 여기에는 백제가 종족계통으로는 부여계통이며, 백제는 앞서 마한의 속국이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곧 백제는 부여계로 마한과는 종족이 다른 계통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백제는 마한의 속국이었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이렇게 살필 때 마한이 삼한 가운데 가장 크고 마한 왕이 삼한을 대표하는 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백제는부여의 별종으로서 마한과는 다른 종족계통으로, 마한에 속해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곧 삼한의 뿌리는 마한이고 마한이 가장 강대하였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한국 고대사의 뿌리가 마한임을 입증하고 있다. 그런데 백제를 부여의 별종이라 한 것에 주목해 보면 백제는 마한과 혈통이 다름을 분명히 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백제와 마한은 근본적으로 문화 구성이 달랐다.

다음의 기록을 보도록 하자. 이 기록에는 마한의 성립 시기를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 들어 있다. 역시 '삼국지 위서 동이전' 내용인데, "(滿)遂還攻準. 準與滿戰 不敵也 將其左右宮人走入海, 居韓地 自號韓王"(고조선 준왕이 위만에 쫓겨 바다를 통해 한으로 망명하여 왕을 칭했다.)이라고 되어 있다. 즉, 고조선 준왕이 기원전 194년에 위만에 쫓겨 남쪽 한으로 피신하는 내용이다. 이로 보아 기원전 194년에 당시 (馬)韓이 이미 성립되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즉, 마한은 적어도 '기원전 2세기' 이전에 성립되어 있었다고 보는 중요한 문헌 기록이라 하겠다. 이렇게 문헌으로 역사적 나와 있어도 학계에서는 이를 믿을 수 없다고 하여 마한의 성립 시기를 '기원후'로 보려는 경향이 남아 있다.박해현(문학박사·초당대 교양교직학부 초빙교수)시민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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