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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농사는 이미 포기···논보다 살 집 걱정"

입력 2020.08.10. 17:08 수정 2020.08.11. 09:12
[르포] 문평천 제방 붕괴 최악 수해 나주 다시면 현장
지붕까지 물 차올라 초토화
이틀째 물속에 잠긴 벼 썩어
죽산보가 피해 키워 주장도
강 시장 "죽산보 해체 추진"
기록적인 폭우로 나주 문평천 제방이 붕괴되면서 죽산보 인근 농경지와 마을들이 침수피해를 입었다. 사진은 다시면 죽산리 죽지마을 앞 논들이 물에 잠겨 있는 모습.임정옥기자 joi5605@srb.co.kr

"이미 썩어버린 벼가 문젠가요. 당장 살 집을 먼저 손보는 것이 먼저입니다."

나주 문평천 제방 붕괴로 지난 1989년 이후 31년 만에 최악의 물난리를 겪은 다시면 죽산보 인근 주민들은 기록적인 폭우가 그친 10일 침수된 집에서 가재도구를 빼내고 정리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마을 앞의 논엔 흙탕물이 가득 차 한창 푸르를 벼들이 모습조차 보이지 않고 있지만, 논에 관심을 두는 주민은 찾아볼 수 없었다.

10일 나주 다시면 죽산리 죽지마을을 찾은 자원봉사자들이 수해를 입은 주택에서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있다.임정옥기자 joi5605@srb.co.kr

죽산보 인근 죽지마을과 동산마을 등 수해를 입은 마을을 찾은 자원봉사자들도 수해를 입은 주택 정리에만 분주할 뿐이었다.

주민들은 "이미 썩어버린 벼에 관심을 두면 뭐 하냐"며 "봐봐야 속만 상한다. 그 시간에 집을 정리하는 게 먼저"라고 물에 잠긴 논을 애써 외면했다.

침수된 농경지와 도로 하나를 사이를 두고 있는 동산마을은 지대가 높은 곳에 있는 집들은 침수피해를 피했지만, 마을 초입에 있는 집들은 밀려든 물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리고 말았다.

한창 분주하게 가재도구를 정리하던 김동철(52)씨도 마을 초입에 집이 있었던 탓에 물난리를 피하지 못했다.

김씨는 "한창 벼 안에 씨알이 생기는 시기라서 하루면 몰라도 이틀째 물에 잠겼다면 이미 썩은 거나 다름없다"며 "배수펌프가 고장 난 데다 수문도 열리지 않고 있어 이미 올해 벼농사는 포기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곳이 물에 잠긴 게 1989년 이후 처음이다. 영산강 제방보다 문평천 제방이 더 낮은 데다 둑이 무너지면서 물이 밀려들어 우리 도로 건너편에 있는 우리 집도 지붕 근처까지 물이 밀려들었다"라며 "재해보험에 가입해 놨지만 100%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고 피해가 막심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죽지마을 역시 피해복구가 한창인 가운데 축사에서 떠내려간 원형 볏짚과 물탱크가 논 가운데 둥둥 떠다니는 등 처참한 모습이었다. 동산마을보다 피해가 컸던 탓에 논과 마주 보고 있던 마을회관을 비롯한 모든 주택과 축사가 불어난 물에 휩쓸리고 말았다.

일부 주민들은 "죽산보가 피해를 키웠다"며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지만 의견은 엇갈렸다.

이건창(65)씨는 "4대강 사업 당시 큰 하천만 투자하고 작은 강을 소홀히 하면서 큰 강에서 물이 역류해 이 난리가 났다"며 "그때도 지천, 지류도 같이 보강해달라고 했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면서 이번 물난리는 '인재'라고 주장했다.

마을이장인 이제대(73)씨도 "본류 뚝방만 제대로 하고 지류는 대강대강 넘어가서 이번 일이 발생했다"며 "강이 범람해서 전기시설하고 배수시설이 고장 나서 가동도 안 돼 자연 배수로 언제 물이 다 빠질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한 주민은 "죽산보로 인해 피해가 커졌다고 보기보단 그동안 내린 폭우로 상류부터 감당할 수 없는 물들이 흘러내려 온 게 원인이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수해현장서 만난 강인규 나주시장은 이번 물난리에 대해 '죽산보가 사태를 키운 측면이 있다'며 죽산보 해체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강 시장은 "영산강 상류에서 내려온 물들이 규모가 작은 죽산보에서 계속 역류하다가 가장 약한 부위가 터져 버린 데다 만조시간까지 겹치면서 피해가 더욱 커졌다"며 "2025년까지 낙동강 보 해체를 하기로 한 만큼 시 차원에서 죽산보를 뜨는 방향으로 영산강 종합계획을 별도로 수립해서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물난리로 침수피해를 입은 농경지는 7천243㏊로 이 중 나주시가 논 1천344㏊ 등 1천486㏊로 전체 피해 면적의 20.5%를 차지하고 있다.

도철원기자 repo333@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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