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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진의 어떤스케치- 전남방직 문화유산화는 시대의 책무

@조덕진 입력 2020.08.03. 19:40 수정 2020.08.03. 21:34

85년. 전남방직(전방)·일신방직이 우리와 함께 해온 시간이다.

그 속에는 지난시절 화려했던 지역 경제, 화려해서 슬픈 남도의 면면이 어려있다.

일인들은 1926년 지금의 양동에 2만평 규모의 전남도시제사공장을 설립했다. 종업원 700명 규모의 이 공장은 당시 '조선에서 몇째 안가는 대규모 공장'으로 꼽혔다. 그리고 불과 10년안에 15만평에 달하는, 당시 일본에도 한 두곳에 불과하다는 초대형 공장 종연방적(鐘淵紡績 일본어 가네보방적) 전남공장이 임동에 들어선다.

이 공장은 당시 전남도의 제안으로 들어섰다. 26년 들어선 제사공장이 소화할 수 있는 누에고치 양은 2만석에 불과한데 당시 전남 누에고치 생산량은 4만석에 달했다. 대부분이 원재료로 일본에 헐값에 처분됐다. 이에 전남도가 1935년 당시 한국에 면제품을 판매하던 종연에 좋은 조건으로 공장유치를 한 것이다.

1930년대 이들 방적공장이 지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었다. 취업인구의 26%, 공업부문종사자의 95%에 달했다. 일제강점기 광주는 섬유산업단지였던 셈이다.

일인들이 한국의 하고많은 땅을 두고 굳이 전남에 섬유관련 공장을 건설한데는 전남의 풍부한 물산과 서글픈 현실이 한 몫 했다. 당시 전남은 우리나라 최대 면 생산지였다. 게다가 농도 전남은 갖은 수탈로 절반 이상이 소작농 신세이고 빈농이 많아 값싼 노동력 확보가 쉬웠던 것이다.

이같은 환경에서 광주 공장의 효율은 전국 최고였다. 가네보가 내부자료에서 '서울은 보여주기 식이고 광주는 돈벌어주는 공장'이라고 밝힐 정도였다. 수익성 때문이었던지 이듬해 종연은 수영장, 공설운동장 등을 약속한다. 대규모 유원지는 중일전쟁으로 중단됐지만 당시에 수영장 등 일부는 이행됐다. (광주역사민속박물관 '남도의 길·목화의 길'에서)

전남방직의 이같은 호황은 70년대까지 이어졌다. 해방직후 50년대 전남방직은 대규모 기업집단에 들어갈 정도로 급성장했고 70년대 들어서는 다른지역으로 확장할 정도로 번성했다.

그러나 조선 최고의 수익을 낸 종연의 성공에는 이 지역 10대 여성노동자의 피눈물이 어려있다. 헐값에, 혹독한 노동환경 속에 강제노동에 가까운 처우를 받았다. 하루 12시간 2교대라고는 하지만 하루 15시간에 달하는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해방후라고 달라졌을까. 70-80년대 우리나라 노동환경을 생각하면 짐작 가능한 일이다.

일본 패망 후 이곳은 노동자들이 운영했다. 이를 미군정이 접수해 운영하다가 1951년 통역관 출신 김형남과 사업가 김용주(김무성 전 새누리당의원 부친)에게 불하되며 '전남방직'이란 이름으로 해방 후 역사가 시작됐다. 이후 김형남의 일신방직과 김용주의 전남방직(이후 전방)으로 분리됐다.

이처럼 전남방직에는 100년에 가까운 지역민들의 애환이 서려있다. 10대 여성노동자들의 고통과 꿈만이 아니라 이곳에는 해방직후 노동자 자주관리제로 운영하던 당시 노동자들이 해방 1주년을 자축해 세운 기념물, 철골 '국기 게양대'가 지금도 남아있다.

그런데 그 역사의 굽이굽이가, 지난 100년의 삶이 자칫 흔적도 없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전방이 지난달 개발업자와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이용섭 시장이 '공공성 있는 개발'을 가이드 라인으로 제시해 그나마 숨구멍이 트였다.

그렇다고 이 절박한 시기에 오롯이 행정에만 기댈일은 아니다. 시민들이, 시민사회가 전남방직을 유무형의 문화적 자산으로 기리는 노력을 이제부터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알려져 있다시피 전방은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이 해방직후 미군정에게 불하받았고 그의 형 김창성씨가 물려받았다. 김창성씨는 현재 전방 명예회장이다. 2006년 김무성 전 의원은 호남향우회를 찾아 자신을 '광주의 전남방직집 아들'이라며 호남과의 연고를 강조했다. 지난 총선에서는 험지출마론으로 광주출마가 논의되기도 했다. 이래저래 '전방'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인연이 다른 방식으로는 단 한 번도 표출되지 못했다는 것을 단순히 아쉬움으로 남겨야할까.

아마존을 공동창업한 세계 두번째 여성 부호 매킨지 스콧이 최근 2조원을 기부하며 더한 기부의 변은 새겨볼만하다.

"한 개인의 부는 집단적인 노력의 산물이며,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되지만 수많은 다른 이들에겐 장애물이 될 수 있는 사회적 구조에 따른 것이라는 데 한 치의 의심도 없다." 아트플러스 편집장 및 문화체육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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