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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신년특집] 삶이 지칠 때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하여라, 지리산이여!

입력 2020.12.30. 19:21 수정 2021.01.06. 10:49
[2021신년특집 권역별로 찾아간 지리산 100리 길]
지리산 노고단 일출

지리산을 그냥 갈 수는 없다. 짧은 바쇼 하이쿠 한 소절이라도 들고 가야지.

'너무 울어

텅 비어버렸는가

매미 허물은'

얼마나 울었기에 속이 텅 비어버렸을까? 여름을 그렇게 울던 매미는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준비물로 그 정도면 족하다. 겨울 산행은 비우러 가는 길이거니, 가다가 매미의 소식이나 얻어 듣는다면 거기에 더할 것은 없다.

걷기 전에 날아보자. 우리는 새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른다. 겨울하늘은 높고 춥고, 한바탕 눈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흐리다. 덩어리진 구름들이 세찬 바람결에 흩어지고 있다.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다니다가 문득 발아래 사람 사는 세상이 내려다보인다. 아! 거기에 거대한 소 한 마리가 주저앉아 낮잠을 자고 있는 것 아닌가! 표피는 잿빛초록이고, 머리는 해 뜨는 곳에, 꼬리는 해 지는 쪽에, 동서로 길게 누워있다. 육신은 사방팔방 비탈을 이루며 겹겹의 주름 폭을 이루고 있다. 등뼈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며 길고 좁은 길이 나 있다. 지리산! 그 등뼈의 능선길이 우리가 지칠 때 찾아가 끝없이 걸었던 종주 100리 길이다. 소의 육신, 산과 골과 곡을 감싸 안은 저 너른 품이 800리에 이르는 둘레길이다. 우리의 비행이 사실은 위성의 눈으로 보았던 것의 데자뷔인 셈이지만 그 덕분에, 영겁의 세월을 누워 있는 산의 속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이다.

지리산 노고단 일출

지리산은 남쪽을 '겉 지리', 북쪽을 '속 지리'라고 부른다. 양지바른 겉 지리에 절이 많고, 해가 짧은 속 지리엔 당(巫堂)이 많았다고 한다. 겉 지리는 '대중살이'의 맛이 있고, 속 지리는 '독살이'의 멋이 있다고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남쪽은 큰 절이 많고, 북쪽은 암자 토굴이 산재한다. 지리산은 크게 4개의 본사 권역으로 나뉜다. 북서쪽이 전북 남원으로 백장암 실상사가 있는 금산사 권역이다. 북동쪽은 경남 산청 함양으로 벽송사 대원사가 말사인 해인사 권역이다. 남동은 경남 하동 칠불사가 있는 쌍계사 권역이고, 남서쪽이 전남 구례 천은사 연곡사를 거느린 화엄사 권역이다.

크게 그은 지리산의 두 길. 높게 직선으로 가는 길과 낮게 곡선으로 도는 길. 전자는 주능선을 가로지르는 종주길이다. 전에는 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 '화대종주'가 불문율이었다. 요새는 차가 닿는 성삼재에서 중산리까지(27km) 절반을 잘라먹고 다닌다. 그리고 산자락을 둥그렇게 도는 둘레길. 지리산 산역(山域)은 서울시의 2/3에 달한다. 이 길은 3개 도, 5개 시군에 16개 읍면, 90여개 마을을 시계처럼 도는 것이다. 전체가 295km, 통상 800리로 본다. 길을 남북으로 펴면 지리산에서 서울까지 가는 거리다. 한 구간을 대략 10~20km 씩 나눠 전체가 20개 구간이다. 하루에 한 구간을 조금 더 가고, 중간에 하루 이틀 쉬면 보름쯤 걸린다. 지리산의 옛길, 고갯길, 숲길, 강변길, 논둑길, 마을길, 그런 길들이 하나로 연결된 우리나라 대표적 순례길이다. 2007년 사단법인 '숲길'이 창립되면서 길을 내기 시작하여 6년만인 2012년 동그라미가 완성되었다. 그 시작이 실상사 권역이다.

실상사의 아침

[실상사 권역]

민중의 가슴에 담은 성불의 꿈

실상사 권역은 둘레길 ①구간 주천-운봉(14.7㎞), ②구간 운봉-인월(9.9㎞), ③구간 인월-금계(20.5㎞)을 포함한다. 지리산 서북능선을 조망하며 걷는 길이다. ②구간에 황산대첩비, 국악의 성지, 송흥록 생가 등 둘러보면 좋을 곳들이 많다. ③구간 중간쯤에 백장암, 더 가면 금대암이 있다. 넓게 펼쳐진 다랑논과 산촌 마을을 지나 엄천강으로 이어진다. 둘레 길은 정보가 풍부하니 줄일 것은 줄이고, 무늬만 밟는다. 해찰하듯 샛길로 빠져 산으로 차오르는 것이 제 맛이다.

대한불교 조계종의 종조(宗祖)는 도의선사다. 간화선의 선종이다. 부처님이 영산회에서 말없이 꽃을 들어 보였을 때 오직 한 사람, 마하가섭만이 그 뜻을 알고 미소 지었다는 염화시중의 미소. 불교사에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이심전심(以心轉心)'이다. 선종의 기원은 거기서 찾는다. 선종은 달마로, 여섯 조사로 내려온다. 784년 당에 유학 갔던 신라의 두 승려가 법을 받아 귀국한다. 도의선사는 장흥 가지산에 보림사를 열었고, 또 한 사람 홍척대사는 지리산에 실상사를 창건했다. 통일신라 후기 '왕즉불(王卽佛)'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깨고 노비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민즉불(民卽佛)'의 혁명적 깃발을 펄럭이며 이 땅에 구산선문이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실상사 앞마당에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 옛 석탑과 석등, 극락전 옆 수철화상(홍척의 제자)의 탑과 탑비, 국보인 백장암의 삼층석탑 등 당시의 유적이 산재한 것, 백성들이 다니기 좋은 평지에 위치하며 절 앞에 논밭이 펼쳐진 것들이 다 부처를 민중의 높이로 끌어내린 그런데서 연유한다.

실상사는 7암자 순례 길의 시작이다. 윤달 삼사(三寺) 순례만 해도 무병장수에 극락왕생이라는데, 하루 7암자는 그만 못할 까닭이 없다. 실상사→약수암→삼불사→문수암→상무주암→영원사→도솔암. 지리산 북부 삼정능선을 오르는 약 16㎞의 숲길이다.

이른 아침부터 빠듯하게 걸어야 다 돌 수 있다. 약수암은 실상사 산내암자로 비로소 산사에 들었다는 느낌을 준다. 불교박물관장을 지낸 흥선스님이 혼자 산다. 워낙 까칠한 분이라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야 물이라도 한잔 얻어 마실 수 있다. 삼불사는 단아한 암자다. 근처에 '견성골'이라 불리는 골짜기가 있다. '까마귀도 경(經)을 외며 난다'는 구전이 내려오는 곳이다. 500m 쯤 오르면 초록색 지붕의 문수암이 나온다. 풍광이 북으로 탁 트여 있다. 토굴이란 이런 곳이구나 하는 맛이 제대로 난다. 돌층계를 오르면 천인굴이 나오고 바위에 흐르는 물소리가 동굴을 울린다. 곧 얼어 봄까지 고드름이 달려 있을 것이다. 문수암에서 상무주암을 거쳐 영원사로 가는 길이 이 코스의 백미다. 길은 약간 가파르지만 아늑하다. 길목마다 말라죽은 고사목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 군락, 바위를 덮은 검푸른 이끼들, 고사리나 부처손 같은 양치식물들이 어떤 시원(始原)의 느낌을 준다. 상무주암(1,162m)은 반야봉에서 천왕봉까지 주능선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명당 중의 명당이다. 800년 전 보조 지눌이 깨달음을 얻은 뒤 보림(保任)하면서 돈오점수와 정혜결사의 기초를 닦은 곳이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因地而倒者 因地而起)' 정혜결사문의 첫 문장이 여기서 쓰여졌다. 현기스님이 30년 넘게 독살이 하고 있다. 그 긴 세월을 어찌 홀로 사셨느냐고 물었더니 "한 사나흘 지난 것 같아"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고개를 넘어 내려가면 영원사. 수많은 고승들이 머물다 간 천년가람이다. 절에 내려오는 '조실안록'에는 부용 영관, 청허 휴정, 사명 유정, 청매 인오 등 조사 109명의 법호와 행장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산기슭을 건너 서산대사의 제자 청매스님이 창건한 도솔암이 있다. 7암자 길은 거기서 끝난다. 많이들 도솔암에서 실상사로 내려가기도 한다.

대원사

[대원사 권역]

아는 사람처럼 지나가는 무념무상

남원에서 함양으로 간다. 둘레길 ④구간 금계-동강. 벽송사를 경유하면 12.7㎞다. ⑤구간 동강-수철(12.1㎞). 4개의 마을을 지나 산청에 이르는 길이다. 우리 현대사 좌우투쟁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추모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⑥구간 수철-성심원(12㎞). 대원사 동쪽, 산청읍을 휘도는 경호강을 따라 걷는 순한 길이다. ⑦구간 성심원-어천운리(13.4㎞). 먼 길은 가기만 해서는 갈 수 없다. 가다가 멈춰야 끝까지 갈 수 있다. '숲길을 걷다가 다람쥐가 풀숲에 도토리 감추는 모습을 지켜볼 틈도 없다면 그것이 무슨 인생인가? 햇빛 눈부신 한낮,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 그것이 무슨 인생인가?'라고 했던 영국시인 헨리 데이비스. 그의 물음에 화들짝 놀라 이곳 단속사지(斷俗寺址)에서 멈춘다.

사지에는 두 개의 삼층석탑이 서 있다. 경주 감은사지와 꼭 닮은 꼴이다. 사지는 절의 무덤이다. 스님과 절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은허맥수(殷墟麥穗)라 하더니 찬란했던 옛 영화는 어디로 가고 빈 터만 남았을까? 겨울바람 부는 사지에 앉아 하염없이 석탑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무상(無常)이며 무념(無念)이라는 말들이 아는 사람처럼 지나가는 것이다.

⑧구간 운리-덕산(13.9㎞). 남명 조식이 머물렀던 산천재, 그곳에서 바라보는 덕천강과 천왕봉의 모습이 일품이다. ⑨구간 덕산-위태(9.7㎞), 여기까지가 산청, 대원사 권역이다.

지리산의 동쪽 끝 대원사는 비구니 도량이다. 절이 깨끗하고 단정하다 싶으면 대개 비구니 스님이 산다. 신라의 고찰이다. 지리산 절들은 여순항쟁 때 국군에 의해 많이 불탔다. 대원사도 사지였던 것을 1955년 '지리산 호랑이'라 불렸던 당대의 여걸 법일스님이 들어오면서 비구니 수행도량으로 일구었다. 양산 석남사, 예산 견성암과 더불어 대표적 비구니 도량으로 꼽힌다. 높이 7m의 화강암으로 진신사리가 봉안된 다층석탑이 보물이다. 대원사 보다 더 유명한 것이 2㎞에 이르는 대원사계곡이다. 귀한 고산식물들, 너럭바위와 기암괴석들, 그리고 천왕봉에 오르는 길목에 거연정, 군장정 등의 누정이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길이다.

쌍계사 

[쌍계사 권역]

선(禪), 다(茶), 음(音)의 성지

지리산 남쪽 양지바른 겉 지리로 넘어왔다. 지리산은 북으로 흐르는 물이 낙동강이 되고 남으로 흐르는 물이 섬진강이 된다. 여기서부터 섬진강 수계 하동이다. ⑩구간 위태-하동호(11.5㎞). 지리산 자락의 큰 댐인 하동호가 있는 곳이다. ⑪구간 하동호-삼화실(9.4㎞). ⑫구간 삼화실-대축(16.7㎞). 오른쪽으로 지리산 형제봉 능선, 왼쪽으로 멀리 광양의 백운산 능선, 그 사이로 강이 흐른다. 강으로 뻗은 산자락에는 가르마 같은 길이 나 있고 그 끝에 마을이 있다. 갓처럼 생겼다 하여 이름 붙은 갓논이 비탈을 이루고 있는 풍경들, 추수 무렵의 가을빛이 가히 으뜸이다. ⑬구간 대축-원추분(8.5㎞). '토지'에 나오는 악양의 평사리 들판이 있는 곳이다. ⑭구간 원추분-가탄(11.4㎞). 가탄마을 앞에 흐르는 샛강이 화개천이다. 좌로 가면 화개장터이고 우로 가면 쌍계사다. 봄이면 10리, 벚꽃터널을 이루는 아름다운 길.

쌍계사는 조계종 제13본사로 신라의 고색창연한 대가람이다. 진감국사 대공탑비가 국보이고 대웅전 등 9점의 보물이 있다. 흥덕왕 3년(828년) 김대렴이 당나라에서 차나무 씨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에 심은 것을 우리나라 녹차의 시원으로 본다.(삼국사기) 경내에 차시배지 기념비가 있다. 남종선의 전법도량이고 차의 발상지이며 해동범패의 연원으로 보아 쌍계사는 선(禪), 다(茶), 음(音)의 성지로 일컬어진다.

이 길에 들어섰으면 내친 김에 아자방으로 유명한 칠불사에도 들를 일이다. '버금 아(亞)'자 모양의 이 선원은 한번 불을 때면 온기가 100일이나 지속되는 것으로 알려진 곳이다. 갈 때마다 구들만 들여다보고 있던 주지 도응스님, 최근에 천년을 내려오는 구들의 비밀을 파헤쳤다고 하니 그 방에 한번 앉아보고 싶다. 또 한 곳, 서산대사 출가 암자가 있다. 화개 의신마을 입구에서 우측으로 30여분 오르면 원통암이 나온다. 칠불사 선원장 진현스님이 혼자 산다. 여름 겨울 안거는 칠불사에서 정좌하고, 해제되는 봄 가을에 암자로 돌아오니 때를 살펴 가야한다. 선승 특유의 웃음이 맑은 스님이다. 방대한 불경을 뒤져 조선시대 '제월당 대사집'에서 '의숭인장로낙발우원통암(依崇印長老落髮于圓通庵)', 한 문장을 찾아냄으로써 이곳이 서산대사의 출가지임을 고증했다. 하동군수가 산에 찻길을 내어준다는 것을 암자는 걸어 다녀야한다고 거절한 노장님이다. 좋은 차가 있으니 꼭 들러 한 잔 마시고 가기를 권한다.

구충암

[화엄사 권역]

이념투쟁 속에서 살아남은 각황전

경남 지나 전남, 하동 지나 구례다. ⑮구간 가탄-송정(10.6㎞), 섬진강과 나란한 길, 피아골 연곡사를 지난다. 구간 송정-오미(10.4㎞). 오미마을은 남한의 3대 길지로 꼽히는 운조루로 유명하다. 그곳에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글이 새겨진 큰 쌀독이 있다. '누구든 쌀독을 열 수 있다'는 뜻이다. 흉년에 이 독을 열어 가난을 구제했다는 얘기가 전해오는 곳이다. 구간 오미-방광-난동(18.9㎞). 여기가 두 갈래 겹 길이다. 구간 방광-산동(13㎞). 어느덧 지리산의 서쪽 끝 천은사까지 왔다. 마지막 한 구간 남았다. 구간 산동-주천(15.9㎞). 노고단을 바라보며 걷는 길이다. 봄날, 현천마을에서 계척마을까지 산수유군락이 장관을 이룬다. '할머니 산수유나무'와 정겨운 돌담길을 만날 수 있다. 편백나무 숲을 지나면 밤재로 이어진다.

화엄사는 지리산 산세에 걸맞은 당당한 대가람이다. 백제 성왕 22년(544) 인도승려 연기조사가 창건했다. 금강문 천왕문 보제루를 직선으로 지나 공간이 확 넓어지는 구조다. 거기서 비로소 만나게 되는 각황전. 경복궁의 근정전 다음이고, 불전으로는 우리나라 최대의 목조건축물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장육전 자리에 숙종 28년(1702년) 새로 지었으니 300년이 넘었다. 각황전이 좌우 이념투쟁의 한복판에서 어떻게 소실되지 않고 온전히 살아남았을까를 생각해보면 절로 숙연한 마음이 든다. 그와 짝을 이루는 석등 역시 크기와 맵시 면에서 우리나라 으뜸인 국보다. 네 마리 사자가 떠받치고 있는 효대의 사사자삼층석탑, 봄날 각황전 옆에서 마당으로 내려다보이는 진분홍의 매화 한그루, 지장암 경내의 늙은 올벚나무도 화엄사의 빛나는 유산이다.

화엄사 뒤편으로 조금 걸어가면 구층암이 있다. 늙은 모과나무 기둥이 받치고 있는 작은 집. 덕제스님이 살고 있다. 큰 절과 암자 주변에는 약 2만5천평 정도의 야생 차밭이 있다. 이 드넓은 차밭의 총 관리인이자, 차 생산자가 덕제스님이다. 차는 1년에 100g들이 1천500봉지 정도가 나온다. 절반 이상을 화엄사에서 가져간다. 나머지는 나눠 마시고, 돈이 필요해서 팔기도 한다. 식구가 스님하고 중학생 둘, 고등학생 하나, 공양주 노보살 그렇게 다섯이다. 인연이 닿은 아이들을 아주 어려서부터 키워 학교 보내주고 같이 사는, 스님이 아빠다. 화엄사에 머물면 며칠이고 찾아가 차담을 나누어도 마다하지 않을, 차보다 더 따뜻한 사람이다.

"인생은 다리이거니, 지나는 가되 그 위에 집짓지는 말라"

지리산 절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찻길로 가는 절과 산길로 가는 절. 후자는 걸어가야 한다. 30여분 걸으면 되는 암자도 있고, 노고단 밑의 우번대나 반야봉 아래 묘향대처럼 몇 시간 걸어야 닿는 토굴도 있다. 그런 곳에는 가난한 스님들이 산다. 가난하다기 보다는 무욕(無慾)의 삶이라 해야 더 맞을 것이다. 찻길이 끊긴 깊은 산중에서 외로움과 가난을 벗하며, 삶 자체가 수행인 저 스님들 덕분에 우리 불교가 지탱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괜히 찾아가 홀로 맑혀놓은 우물을 흐려 놓지나 않을지 저어되지만, 아무리 도를 닦아도 사람은 그리운 법.

"마당에서 포행을 하고 있는데 저 밑에서 누가 찾아오잖아요? 수행하는 곳이니 되돌아가시라고 해요. 그래서 그냥 가잖아요? 그러면 수좌들이 혼자 속으로 뭐라 하는지 아세요?"

"아! 번뇌여! 그러십니까?"

"가란다고 진짜 가냐? 차나 한잔 마시고 가지. 그러지요 하하"

전에 문수골 관음암에서 독살이 하는 진명스님이 들려준 얘기다. 큰 절에 가거든 마음을 내어 암자 토굴에도 들러볼 일이다. 빈손으로 가지 말고, 그런 곳은 장보기가 어려우니 떡이나 마른 소채류, 찬거리, 국거리, 달달한 과자 같은 것을 조금 들고 가면, 스님 입이 벌어지면서 좋아한다. 불전에 시주도 조금 놓고. 그것은 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내 몫의 적선(積善)인 것이다.

먼 길, 거대한 초록 소의 둘레를 우리는 한 바퀴 돌았다. 끝에 도착하니 끝은 다시 시작이라는 것을 안다. 한 바퀴를 돌고, 또 한 바퀴를 돌고, 윤회(輪廻)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매미는 지난 여름을 왜 그렇게 울었는지, 어디로 떠났는지, 여전히 알 수 없다. 7년을 기다려 여름 한 철의 짧은 생을 마치고 떠났다는 것, 떠난 자리가 텅 비어 있더라는 것, 내년 여름에 다시 찾아오리라는 것, 우리가 아는 것은 그뿐이다.

'인생은 다리이니, 지나는 가되 그 위에 집짓지는 말라'는 말, 약수암 흥선스님이 어느 랍비의 잠언이라면서 들려준 말이다. 산다는 것은 다리 위를 걷는 것이로구나, 아래를 내려다보니 다리 밑은 매미의 허물처럼 텅 비어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저무는 겨울 산길을 걷는다. 한 모퉁이를 돌았을 때 저 아랫마을에서 저녁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른다면, 그 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을까 싶다. 글=이광이·사진=하지권

자료 제공=한국불교문화사업단 계간지 '템플스테이'


이광이는

언론계와 공직에서 일했다. 인(仁)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애인(愛人)이라고 답한 논어 구절을 좋아한다. 사진도 찍고 글 쓰는 일이 주업이다. 탈모로 호가 반승(半僧)이다. 음악에 관한 동화책과 인문서 '스님과 철학자'를 썼다. 불광에 '절집 방랑기'와 '지리산 암자'를 연재했다.

하지권은

불교계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불교 전문 사진작가이다. 월간 '불광'에서 사진을 전담했으며 현재는 계간 '템플스테이' 사진을 담당하고 있다. 예술성이 뛰어나고 특히 불교의 선 사진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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