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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종 박사의 고고학 산책

조현종박사의 고고학 산책 11. 영국의 스톤헨지

입력 2020.02.19. 17:22 수정 2020.04.02. 16:55 @조덕진 moleung@gmail.com
현대 한계 넘어서는 신비한 과학의 영역
선사시대 최고의 거석기념물

고고학이나 역사학자들이 기술과 현대성에 사로잡힌 세계에서 대중의 관심과 지지를 얻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개발이 우선시되는 토목사회의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어느 곳에서나 그렇지는 않다. 예를 들어 영국의 고고학자들은 대중들의 긍정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고고학이 현대사회에서도 유용하다는데 동의한 대부분 영국인들은 고대유적이 지역의 이미지를 향상시킬 뿐 아니라 관광을 통한 경제적인 이익을 가져온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198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영국의 스톤헨지는 탁월한 유적으로서 존재가치가 있다. 오늘날 스톤헨지만큼 세계인들로부터 주목받는 유적은 없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오래된 기원전 3100년경에, 도구라고는 원시적인 돌망치밖에 아무것도 없었던 사람들에 의해 세워진 스톤헨지! 그러나 지난 수년간 전문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것이 만들어진 목적은 알 길이 없으며, 어떠한 형태의 해석도 그것의 비밀을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스톤헨지는 런던에서 서남쪽으로 120km의 떨어진 솔즈베리(salisbury) 평원에 위치한다. 런던의 워털루역에서 기차를 타면 그랜드슬램대회가 열리는 윔블던을 지나게 되며 솔즈베리역에서 내려야 한다. 이곳에 스톤헨지로 가는 셔틀버스가 있다. 역 앞 광장으로 나서면 곧 버스 승강장이 나오는데, 시간이 허락한다면 가까운 솔즈베리 대성당에 가볼 일이다. 성당은 영국 최고의 첨탑과 화려한 건축미가 압도적이지만, 아름다움만으로는 사철 파란 잔디가 깔린 정원도 만만치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1215년 존왕을 굴복시킨 마그나 카르타가 이 성당에 보관되어 있다.

솔즈베리역에서 스톤헨지까지는 약 16km. 버스는 좁은 2차선의 도로를 따라 세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언덕, 솔즈베리의 아름다운 평원을 가로지른다. 언덕은 거의 전체가 밀밭이어서 때론 파랗고, 때론 노랗고 때론 허허롭게 황량하여 계절을 비추는 거울을 닮았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저 멀리 옹기종기 모여있는 회백색의 돌들이 조그맣게 보이기 시작하더니 점차 이 돌들이 무럭무럭 자라나 순간 거대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스톤헨지다. 이제 솔즈베리 평원에서 사람의 눈이 미치는 지평선 끝까지 시야를 가리는 것은 오직 스톤헨지뿐이다. 텅 빈 평원의 끝없는 황량함을 배경으로 4~8m 높이의 거대한 돌들이 펼쳐져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더 신비로운 것은 이 유적이 5천 년 전 선사 인류가 만든 거석기념물이라는 사실이다.

거석기념물(megalithic monument)은 돌 자체에 초자연적인 힘이 내재한다는 관념과 조상의 영혼이나 신령 등 영적인 존재가 깃들어 있다는 믿음의 결과물이다. 예컨대 인류는 원시적인 주술과 애니미즘적인 신앙에 기초하여 세계각지에서 이른바 큰 돌로 구조물을 세운 것이다.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에 걸쳐 만들어지는데, 프랑스 브르타뉴지방의 입석이나 우리나라의 고인돌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석기념물이다. 그 가운데 가장 거대하고 기술적으로 탁월한 구조물이 스톤헨지다.

스톤헨지는 안쪽에 직경 30m의 환상열석과 내부에 말발굽 형태의 돌기둥이 겹으로 세워지고 외곽에 직경 110m의 도랑과 작은 토루(土壘)가 돌려져 있는 동심원상의 원형구조물이다. 영국의 고고학자들은 이 유적이 적어도 4단계 이상의 변천을 거쳐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말한다. 처음엔 직경 30m의 나무기둥으로 된 단순 구조물이었으며, 기원전 2500년경에는 돌기둥으로 개조됨과 아울러 환상열석과 내부 말발굽형 기둥이 고정되었고, 기원전 2000년경을 전후하여 100개의 열석과 보가 보완되어 거대한 규모의 환상열석과 토루가 배치된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대체로 돌기둥의 무게는 25~30t에 달하며 청색과 초록을 띠는 몇몇 석재들은 웨일즈 남쪽에서 최대 200km를 이동하여 왔다. 지금은 돌기둥 위의 보가 거의 탈락하였지만, 돌망치만으로 수평보를 둥근 원의 일부로 가공한 것이나 목조건축의 요철구조를 상기하는 돌쩌귀를 만들고 결합하여 어긋남을 방지한 것도 상상을 불허한다.

나는 2004년과 2018년 2차례 스톤헨지를 방문하였다. 이전과 달리 유적의 바로 옆을 가로지르던 도로는 폐쇄되었고 관광객의 출입은 더욱 강력하게 제한되었다. 유적에서 멀리 떨어진 언덕 밑에 새로이 방문자센터가 세워지고 유적으로 가는 길은 걷거나 전기 셔틀만이 허락되었다. 예전의 주차장과 출입구는 고대의 언덕으로 복원되었다. 유적의 보존과 생태경관을 살리기 위한 이러한 감동적인 작업들은(물론 충돌도 있지만), 고고학자들과 유적보존을 위한 시민연대, 그리고 정부가 협력한 결과이다.

이밖에 새로운 것은 스톤헨지에서 하짓날 태양이 일직선으로 뜨는 방향과 순간을 설명한 안내판이다. 스톤헨지가 화장묘로 출발하였으며 중요한 날의 일출이나 일몰 또는 별들의 움직임을 관측한 천문대라거나 제사 등 의식을 치르던 곳이라는 1894년 이래 주장을 2012년에 일부 수용한 것이다. 모든 면이 충분히 매혹적이지만 스톤헨지를 단일 용도로 규정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주변에서 새로이 확인되는 선사시대 유적과 유물들을 포함하여 스톤헨지는 더 탐구되어야 한다. 실로 세상의 모든 일에 절대적 강자는 없다.

조현종은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장과 학예연구실장, 국립광주박물관장을 역임하고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했다. 1992년부터 사적 375호 광주신창동유적의 조사와 연구를 수행했고, 국제저습지학회 편집위원, 고고문물연구소 이사장으로 동아시아 문물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한국 초기도작문화연구’ ‘저습지고고학’ ‘2,000년전의 타임캡슐’ ‘탐매’ ‘풍죽’ 등 연구와 저작, 전시기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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