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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종 박사의 고고학 산책

조현종박사의 고고학 산책 13. 인류사와 질병

입력 2020.04.22. 10:33 수정 2020.04.23. 16:39 @조덕진 moleung@gmail.com
문명화와 인간의 탐욕이 가져온 유행병
고대도시의 질병(1652~1654년,미카엘 스웨르츠)

도시의 발달과 영토확장 전쟁은

지역간 교류 뿐 아니라 질병 확산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둔황 쉬안취안지의 2쳔년 전

뒤처리막대에 붙은 천에서

간디스토마 알이 발견됐다

사막 지대의 이 기생충 알은

중국 동남부에서 1500km를

이동한 사람의 배설물임이 분명했다

실크로드가 고대의 전염병 확산의

통로였음을 보여주며,

페스트 등이 이 길을 따라 전파됐을

가능성을 그럴싸하게 만든다


1996년 독일 네안데르탈에 세계적인 유적박물관이 들어섰다.

네안데르탈은 독일 서부에서 가장 생기가 가득한 뒤셀도르프와 모노레일 슈베베반(Schwebebahn)으로 유명한 부퍼탈 사이에 위치한다.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s)은 1856년 이곳에서 작업 중에 발견된 어깨뼈가 고인류의 뼈임이 밝혀져그 지명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박물관은 네안데르탈인이 출토된 지 140년 만에 네안데르탈(계곡)의 입구에 세워졌다. 타원형의 노출 콘크리트가 인상적인 박물관은 인간의 진화를 주제로 한 네안데르탈인의 문화를 전시하고 있다. 원래 인골과 석기가 발견된 장소에는 구석기시대의 작업장과 인간의 흔적이란 산책길이 있는 고고학 공원을 조성했다. 네안데르탈인의 유명세와 달리 작게 느껴지는 박물관의 규모나 인위적인 공간을 극소화한 유적의 디자인은 실용주의 독일의 문화적 지향점인지도 모른다.


페스트를 치료하는 의사의 모습(중세시대)


네안데르탈인, 인류의 조상인 그들은 유럽을 중심으로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북아프리카에 걸처 분포했다. 과학적인 연대측정결과 가장 오래된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은 약 43만년 전의 것이 확인되었고 약 4만 2천년 전에는 멸종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고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들이 지구의 북반구에서 번성하고 있을 때인 약 15~20만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탄생한 현생인류(Homo sapiens)가 약 10만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나와 중동의 회랑지역인 레반트 지역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현생인류는 이미 오래전부터 터전을 잡고 있었던 네안데르탈인과 10만년 전부터 4만 5천년 전까지 공존하다가 네안데르탈인만 멸종하였다는 것이다.

네안데르탈인들은 왜 멸종되었는가? 여기에는 지능과 도구사용 능력이 앞선 현생인류와의 경쟁에서 도태되었다거나, 기후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거나 이종교배로 인구수가 감소하였다는 등의 여러 견해가 있다. 하지만 아직 어느 것도 정확한 해답은 아니다. 최근 케임브리지대학의 홀드크로프트(Houldcroft) 박사는 질병의 확산을 중요한 단서로 제시한다. 고대인의 뼈에서 채취한 DNA의 최신증거와 병원체 게놈연구를 통해 유럽 전역의 네안데르탈인이 아프리카에서 이주한 현생인류에 의해 질병에 걸렸을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말하자면 현생인류가 가진 질병들이 네안데르탈인들에게 치명적이었을 뿐 아니라 이종교배로 인한 면역유전자의 보호가 취약해졌다. 그 결과 종간 균형이 무너지고 네안데르탈인이 멸종에 이르렀다고 보는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의 생활상상도(Google Image)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염병이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 사이에 전염되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하지만, 인류사에서 전염병은 약 8천년 전의 신석기혁명, 즉 농업과 목축이 시작되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관점은 아직도 유효하다. 그러니까 생산성이 월등한 농업으로 인해 생겨난 잉여생산물은 필연적으로 인구의 증가와 집중현상, 즉 도시화를 수반하게 된다. 정착생활과 인구의 조밀화, 게다가 가축과의 공존은 역설적으로 질병이 폭발하기 좋은 조건이었다. 따라서 농업이 시작되고 질병이 마을이나 농업 전체를 황폐화하는 사례는 고고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도시의 발달과 영토확장을 위한 전쟁은 역설적으로 지역간 교류를 촉진하였을 뿐 아니라 질병의 확산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 서안에서 로마를 잇는 실크로드는 지난 2천여 년간 사람들의 용광로였다. 최근 영국과 중국 연구자들은 고고학학술지에 실크로드 주변의 전염병 유기체가 확산하는 가장 빠른 증거를 보고하였다. 그것은 둔황의 쉬안취안지에서 발견된 2쳔년 전의 뒤처리막대에 붙은 천에서 찾아낸 간디스토마 알이었다. 건조한 사막 지역에서 발견된 이 기생충 알은 중국의 동부나 남부에서 1500km를 이동해 온 사람의 배설물에서 나온 것임이 분명하였다. 이러한 발견은 실크로드가 고대의 전염병 확산의 통로였음을 보여주며, 페스트와 탄저병, 한센병 등이 이 길을 따라 전파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제안들을 더욱 그럴싸하게 만든다.


네안데르탈 유적전경(현장사진)


사실, 14세기 유럽을 경악하게 만든 페스트도 실크로드를 따라 이동되었다. 페스트는 중앙아시아의 건조한 평원지대에서 시작되어 1343년경 크림반도로 확산되었다. 1346년 몽골제국이 크림반도의 카파성을 공격할 때 흑사병으로 죽은 시체를 투석기에 실려 성안으로 보내면서 퍼지게 된다. 그리고 이곳에서 탈출한 이탈리아 상인들이 서부 이탈리아의 여러 항구에 도착하면서 중세의 성곽으로 둘러싸인 피사와 피렌체, 베네치아 등 여러 도시에 흑사병이 번진 것이다. 신이 세상의 중심이던 시대에 흑사병은 종교적 믿음의 문제였을 뿐, 당대의 의사들까지도 전염 원은 물론 감염경로조차도 알 길이 없었다. 흑사병이 창궐한 14세기 동안 거의 1억명이 목숨을 잃었다. 페스트 퇴치에 실패한 교회의 권위는 흔들리게 되었으며 중세는 몰락하고 새로운 세상, 르네상스가 도래하였다.

지금 세계는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가 가져온 팬데믹 상황에 있다. 현재 250만에 가까운 확진자들과 17만이 넘는 사망자들이 속출한다. 첨단의 의료체계를 고려하면 치명적인 흑사병이 유행한 중세와 별로 다르지 않다. 날마다 확진자 수의 드라마에 집중하고 있을 뿐 아직도 정확하게 질병의 기원이나 대유행을 설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역사는 그것들이 문명화의 집중, 즉 인간의 탐욕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제적 경계가 없는 질병의 위기는 언제나 존재한다. 고대의 성곽시대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이다. 이제 인간은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속가능한 생존을 모색할 것인가 아니면 멸망의 길을 갈 것인가?

조현종은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장과 학예연구실장, 국립광주박물관장을 역임하고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했다. 1992년부터 사적 375호 광주신창동유적의 조사와 연구를 수행했고, 국제저습지학회 편집위원, 고고문물연구소 이사장으로 동아시아 문물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한국 초기도작문화연구' '저습지고고학' '2,000년전의 타임캡슐' '탐매' '풍죽' 등 연구와 저작, 전시기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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