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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종 박사의 고고학 산책

소는 인간이 만든 모든 문명에서 만능 동물로 길들여졌다

입력 2021.02.02. 20:15 수정 2021.02.03. 15:43
조현종박사의 고고학 산책<21> 소의 고고학
상처 입은 들소, 라스코 동굴(15000년경, 프랑스, 칸 아카데미 사진)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오래된 미술작품들은 구석기시대의 마지막 단계에 출현하는 동굴미술이다. 하지만 그것은 초보적인 단계의 원시미술이 아니라 상상을 초월한 신념과 탁월한 세련미가 전체를 지배한다. 세기의 발견이라고 말하는 스페인 북부의 알타미라 동굴이나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에서 발견된 구석기시대의 그림에 감동하는 이유이다. 이들 동굴 속 그림의 중심에는 야생의 말, 들소와 오록스가 있으며, 특히 라스코 동굴의 이른바 '상처 입은 들소'는 동굴 그림의 장면들을 압도한다. 창에 찔려 내장이 쏟아져 내리고 기진맥진한 절명의 순간, 그가 고개를 돌려 응시하는 모습과 해맑은 눈망울! 동굴 속의 포착능력은 경탄스럽다. 피카소가 극찬했다는 기원전 1만 5천년경의 동굴의 그림들은 당시 집단의 안전과 사냥에 대한 주술적인 기원을 담아 신비스러운 장소에서 행한 제의(祭儀)의 결과물이다.

신석기시대의 인간에게 야생 소는 토템숭배나 사냥감으로서의 대상만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소는 덩치보다 온순하였으며 고기뿐 아니라 우유와 털가죽을 제공하는 포유류였다. 소가 염소와 양과 함께 가축으로 순화되고 사육된 곳은 기원전 8천년경 메소포타미아 평원의 초원지대이다. 이른바 비옥한 초생달 지역은 보리나 밀의 재배가 이루어질 정도로 야생의 곡물들이 무성하였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풀을 찾아 이동한 소 떼를 길들이고 가축으로 번식시켰다. 이 지역에서 출토된 기원전 7천년경의 토기에 남아 있던 지질 잔류물 분석결과는 당시에 이미 우유나 치즈와 같은 유제품이 이용되었음을 보여준다. 마침내 인간이 완성한 각종 문명에서 소는 농경이나 운반, 식육, 유제품 생산, 제사와 공헌을 위한 만능의 동물로 길들어졌다.

토우, 경주 황남동 출토(5세기 후반, 국립중앙박물관 사진)

대부분 연구자는 소의 기원에 대한 고고학적인 단서, 즉 이란 출토 고대 소뼈의 DNA는 중동에서 가축화된 소가 유라시아 전역에 분포했던 야생들소이며 오록스의 후손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오늘날 소는 동아시아의 혹과 긴 뿔이 특징인 제부(Zebu)와 유라시아에 분포한 혹 없는 일반 소, 두 종류로 분류된다. 이 둘은 각각 독립적인 순화의 길을 걸었으며 야생의 오록스는 17세기 초반에 멸종했다. 인간의 지나친 사냥과 농경지의 확대가 그들의 서식지를 감소시키고 나아가 종의 균형과 생태계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한편, 동아시아에서 소에 관한 자료는 중국이 앞선다. 기원전 6천년 전 신석기시대 무덤에서 소의 턱뼈가 출토되고 기원전 4천500년경 절강성 하모도(河姆渡) 유적을 비롯한 장강 하류의 지역에서는 소뼈로 괭이를 만들었다. 기원전 2천년 중원지역에서는 소, 말, 개 등의 동물순장이 시작됐고, 기원전 1천300년경의 은허(殷墟)에서 발견된 각골(刻骨)은 이미 소를 포함한 십이지 동물이 완성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춘추전국시대가 되면 철제농구의 보급과 소를 이용한 경작, 우경(牛耕)이 시작돼 농업생산이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토우, 광주 연산동 출토(5세기 후반, 동북아지석묘연구소 사진)

우리나라에서는 신생대 플라이스토세 중기에 들소와 물소 등이 사슴과 사자, 호랑이, 그리고 표범 등 따뜻한 기후대의 동물들과 함께 확인되나 이후 추운 기후가 되면서 사멸됐다. 신석기시대가 되면 남해안의 김해 수가리와 통영 연대도패총에서 소뼈가, 그리고 평남 궁산유적에서는 물소뼈가 보고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소나 물소의 사육 가능성은 매우 낮으며 야생 소라면 더욱 믿기 어렵다. 청동기시대가 되면 벼농사가 보급되고 농업이 중심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축으로서 소의 정보는 아직 미지수이다. 함경북도 무산 범의구석유적에서 청동기시대로 알려진 소뼈가 있지만, 동물고고학자인 김건수교수는 아직 연구체계가 확립되기 이전으로 개체판별의 오류가 있고 또 교란으로 후대의 것이 섞여 들어갔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소뼈 매납 상태, 나주 복암리 2호분(5세기 후반, 전남대학교박물관 사진)

그러나 철기가 등장하고 국가가 탄생하는 시기가 되면 신뢰할만한 소 관련 자료가 전국의 여러 유적에서 확인된다. 광주 신창동유적, 서울 풍납토성, 해남 군곡리패총, 제주 곽지패총 등에서 다량의 소뼈가 출토됐다. 말하자면 소가 가축으로 등장했음을 의미한다. 특히 신창동유적에서 출토된 소뼈는 전체 포유동물 뼈의 30%가량으로 그 수량이 엄청나다. 이 시기의 소는 제사를 위해서 길러졌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삼국지' 위서 동이전과 '진서' 마한조 등에 나오는 동물 제사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소를 죽여 제사 지내고 발굽의 형태를 보아 길흉을 점친다(부여)"거나, "소나 말을 모두 제사에 사용한다(마한)"가 그것이다. 실제, 토우(土偶)를 포함해 소와 관련된 동물 제사는 5세기 후반 이후의 호남지역 고분에서 두드러진다. 나주 복암리 2호분에서는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완벽한 소 1개체가 말, 개 등의 동물뼈와 함께 발견됐다. 네 다리를 묶고 머리를 크게 꺾어 동쪽을 보도록 했다. 길이 200㎝ 높이 130㎝ 정도의 커다란 소를 바치며 그들은 무엇을 기원했을까? 중국에서 대형 동물을 바치는 제사는 상위계층이 위세를 과시하거나 권력 강화가 목적이었다. 소를 죽여 제사를 지냄으로써 맹약(盟約)과 법 집행의 엄정함을 천명한 신라 냉수리비나 울진 봉평비의 살우제사(殺牛祭祀)도 같은 맥락이다. 6세기를 넘어가면 소를 비롯한 동물 제사가 줄어들게 되는데, 그것은 삼국이 살생을 금하는 불법에 귀의한 까닭이다. 올해는 소해이다.


조현종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장과 학예연구실장, 국립광주박물관장을 역임하고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했다. 1992년부터 사적 375호 광주신창동유적의 조사와 연구를 수행했고, 국제저습지학회 편집위원, 고고문물연구소 이사장으로 동아시아 문물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한국 초기도작문화연구' '저습지고고학' '2,000년전의 타임캡슐' '탐매' '풍죽' 등 연구와 저작, 전시기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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