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대 초원, 아름다운 풍경의 속살은 냉혹한 삶의 현장
비정한 자연 벗삼아 뜨거운 열망으로 이룬 제국의 후예들
소비사회 초라함 강요하지만 면면히 흐르는 제국의 DNA 꿈틀
입력시간 : 2016. 11.23. 00:00


감탄을 자아내는 대 초원은 그러나 거주민들에게는 생명을 건 생존의 무대다. 끝없는 지평선을 내달려 사방천지를 둘러봐도 농작물 한 톨 거둘 땅이라곤 없는 척박한 초원을 견딜 수 있는 양과 말 염소 등 동물들과 살아남아야 한다. 게르(몽골식 이동텐트)는 이 광야에서 살아남아야하는 몽골인들의 독특한 거주형태다.
"나는 흘러가버린 과거에 매달리지 않고 아직 결정되지 않은 미래를 개척해나갔다. 알고보니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 자신을 극복하자 나는 칭기즈 칸이 되었다.”

(김종래 ‘밀레니엄 맨 칭기즈 칸’ 중에서)

몇 시간을 달려도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대 초원, 구릉만이 간간이 이곳이 대지임을 알리고 간간이 암석이 산의 형상을 이룬다. 이 광활함을 떠받치는 드높은 하늘에 이르러서는 대 자연이라는 거대한 숨결 외에 달리 다른 감상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방문자의 눈에 하나의 풍경으로 비치는, 감탄을 자아내는 대 초원은 그러나 이곳 거주민들에게는 생명을 건 생존의 무대다. 끝없는 지평선을 내달려 사방천지를 둘러봐도 농작물 한 톨 거둘 땅이라곤 없는 척박한 대 광야. 초원을 견딜 수 있는 양과 말 염소 등 동물들과 살아남아야 한다. 봄 여름 가을은 잠깐이고 겨울은 이르고 혹독하다. 사막에서 살아남도록 진화된 지구 최강의 동물 낙타도, 이들 중 등에 봉을 두 개나 단 쌍봉낙타까지도 한 줌 바람같이 쓰러져 나가는 냉혹한 광야다.

이 척박하고 황량한, 사람에게 더 없이 몰인정한 이 땅이 어떻게 세계 최고의 강국을 이뤘을까.

몽골을 만나는 일은 칭기즈칸의 그림자를 그의 숨결을 호흡하는 일이다.

아세안 기자협회에서 2016년 가을 문화탐방으로 마련한 몽골여정도 칭기즈칸과의 만남이었다.

척박하고 비정한 환경 이겨내고 세계와 소통

10월 초순인데도 날씨는 냉정했다. 게르(몽골식 텐트)에서 하룻밤을 보냈으나 일행 중 일부가 고통을 호소해 호텔로 숙소를 변경해야 했다. 비교적 견딜만하다는 시월 초순의 날씨에도 도시인들은 하룻밤도 견뎌내지 못했다.

사람은 물론이고 환경에 적응된 동물도 살아남기에 턱없이 살벌한 이 땅을 터전으로 세계 역사상 최고 최강의 제국을 건설한 몽골은 현대인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이집트나 다른 나라처럼 세계 최고의 문명을 구가한 것도, 비옥한 땅이나 천혜의 자연환경을 보유한 것도 아닌 이 척박하고 황량한 땅에서 무엇이 이들을 세계 최강으로 이끌었을까. 칭기즈칸이란 세기의 인물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황량한 자연환경에서 부족의 보호 없이는 생존자체가 불가능하던 시절, 9세에 아버지를 잃고 부족에게 버림받아 야생쥐와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겨우 연명한, 이 불행한 환경의 청년이 어떻게 원대한 꿈을 꾸고 자신을 키워갔을까.

사람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엄혹한 자연, 냉혹하고 비정한 부족들 속에서 살아남기위한 목숨을 건 생존경쟁. 이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칭기즈칸은 투지를 불태우고 꿈을 꾸었으며 최소 인력으로 대제국을 건설했다. 단 10만의 기병으로 아시아와 유럽 이슬람을 재패했다. 이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사진 시계방향 ▲징키즈칸이 잠시 공부를 한것으로 알려진 지역에 세워진 작은 몽골역사관. ▲사당의 내부 모습. ▲13세기 인근에 있는 몽골 샤먼의 제의가 열리는 사당들 ▲징키즈칸이 세계를 누비며 잠시 머물렀던 몽골의 한 지역은 오늘 '13세기'란 이름으로 몽골인들에게 영원히 남아있다. ▲관광객을 위한 초원의 게르 모습. ▲샤먼이 의식을 집전하는 공식장소 인근에서 필자(사진 왼쪽에서 세번째)


칭기즈칸의 발길이 머문 곳, 13세기

울란바토르에서 2-3시간 거리에 있는 ‘13세기’. 21세기 몽골인들은 칭기즈칸의 시대를 칭기즈칸의 영광을 기리며 지명을 ‘13세기’라 부르고 있다. 13세기는 칭기즈칸이 대 몽골제국을 건설한, 몽골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강대했던 시절이다. 칭기즈칸을 직접적으로 호명하지 않고 그가 누비고 누렸던 시대를 호칭한 몽골인들의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13세기라는 이름이 아니면, 칭기즈칸이 머물렀던 곳이라는 설명이 없으면 몽골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평원의 한 장면에 다름 아니다. 800여 년 전의 일이거니와 유목생활의 특성상 역사적 흔적이 남기 어려운 탓인 듯하다.

13세기에는 일반 게르외에 칭기즈칸이 사용했던 규모의 게르가 있다. 당시 복식과 실내가구 등으로 13세기 향취를 음미할 수 있도록 했다. 당시 칸이 머무른 게르의 실제와 비슷한 구조와 모습이라고 하나 대제국의 위용이나 위상을 느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이 대형 게르가 대초원을 가르며 멀리 유럽 러시아까지 수없이 이동했을 것을 생각하면, 칭기즈칸과 동료들의 원대한 꿈과 뜨거운 마음을 함께 했을 것을 상상해보면 쏟아질 듯 한 몽골 밤하늘의 별처럼 뚜렷해기도 한다. 광활한 몽골 초원, 지평선을 끼고 유렵으로 유럽으로 내달렸을 13세기 칭기즈칸의 꿈이. 칭기즈칸은 역사상 가장 방대한 규모의 제국을 이룩했다.

칭기즈칸이 이룩한 땅(777만 평방킬로미터)은 서양 최고의 왕으로 꼽히는 알렉산더대왕(348만 〃)과 나폴레옹(115만〃) 히틀러(219만〃) 등 세 정복자를 합보다 훨씬 넓다. 그의 손자 쿠빌라이가 중국에 세운 원나라까지 합하면 면적만도 두 배에 달한다. 중국, 이슬람, 유럽 문명에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그 거대한 제국을 150년간이나 통치했다. 영토의 규모에서가 아니라 영토의 가치를 바꿨다는 점에서, 최악의 환경에서, 소수의 군사로 가장 강력한 국가를 이뤄냈다는 측면에서 21세기 들어 그를 재조명하는 연구서들이 잇따르고 있다.

제국의 DNA 면면히 흐르고

울란바토르라는 도시와 대초원, ‘13세기’는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몽골의 역사, 칭기즈칸의 숨결을 뒤적이지 않을 수 없다. 한 위대한 영혼이 가족을 거두고 부족과 백성을 챙기고 동료(신하)들과 나눴을 뜨거운 마음 언저리를 맴돌며 그 광휘의 자락에 젖어들었다.

그는 지구촌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도 수백 년 전에 이미 지구촌을 경험했으며 만들어냈다.

정복지의 종교를 허용했으며 교역하면 평화를 보장했다. 전쟁 중 개인적 약탈을 철저히 금했고 전리품은 상하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하게 분배했다. 무엇보다 그는 출신성분을 따지지 않았다. 그와 최전선에 섰던 핵심 참모 4준마 4맹견에는 노예출신도 적의 포로도 있었다. 심지어 그는 제 자식을 제치고 노예출신에게 장군자리를 부여했다. 다만 규율을 어기거나 교역을 거부하는 국가나 집단에는 무자비하고 잔혹하게 응징했다. 잔혹함은 적들을 떨게 했고 건너편의 관용은 전쟁 없는 항복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유럽과 러시아 중국까지 재패한 몽골은 150년을 통치했지만 결국 비대한 몸을 가누지 못하고 공룡처럼 쓰러졌다. 근대에 들어 어렵사리 독립국가를 이뤘고 그나마도 절반은 중국에 내줬다. 나라 절반을 내몽골이란 이름으로 중국에 앗기고 자신들의 땅은 외몽골이라는 서글픈 별칭을 갖고 살아간다.

자본주의 대열에 뒤늦게 합류한 탓에 가난과 저개발이란 어려움에 시달리며 찬란했던 과거에 마음을 두고 오늘,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현지에서 만난 몽골인들은 자신들의 역사와 영광에 대한 자긍심이 가득했다. 그가 지나간, 잠시 머문 자리마다 그의 그림자를 혼불삼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화폐에 칭기즈칸의 얼굴이 새겨져있는 것은 물론이고 한 컬렉터의 사설 갤러리에서 만난 수많은 그림들도 칸의 영광를 기리는 작품들이었다.

허나 영광은 한 낱 과거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현지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꿈이 뭐냐’는 질문에 “대학(우리로 치면 서울대에 해당하는 울란바토르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다)을 마치고 미국이나 한국으로 가는게 꿈”이라고 답했다.

슬픈 현실인가 비정한 현실인가. 자본주의 소비사회에 내몰린 우리와 다를 바 없다. 대 몽골족의 후예마저 천박한 자본주의에 휘둘리는 거 같아 미안하지만 서글픔이 앞섰다.

다만 칭기즈칸이라는 광대한 영혼의 DNA가 면면히 흐르는 한 장대하고 뚝심있는 걸음이 이어질 것이라 기대를 담아본다. 인간에 대한 기대이자 미래에 대한 희망이다.


몽골=조덕진기자 zmd@chol.com         몽골=조덕진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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