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죄와 벌
입력시간 : 2019. 04.16. 00:00


러시아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대표작 ‘죄와 벌’은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파렴치한 전당포 노파 일리나를 도끼로 살해하고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 라스콜리니코프가 살인을 자행한 이유는 노파를 죽여 갖게 된 돈으로 그저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신념 때문이었다.

이론적으로 아무런 결함도 없는 ‘결단’이었지만 라스콜리니코프는 스스로 예기치 못한 오류에 빠진다. 애써 외면하려했던 살인의 무게를 견뎌낼 수 없었던 것이다. 자신이 추구했던 정의도, 자유도 얻지 못한 채 단절과 괴로움, 고독 속에서 마치 벌을 받듯 살아야만 했다.

죄를 짓는 것보다 지은 죄를 감추고 살아가는 형벌을 처절하게 받게 된 것이다. 지은 죄를 고통속에 무덤까지 담고 갈 것인지, 모든 것을 털어내고 밝은 세상을 살아갈 것인지를 놓고 갈등하는 주인공의 깊은 고뇌를 들여다보게 된다.

‘죄’는 우리말로 ‘옥죄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죄를 범하는 순간 육체와 정신을 조이는 고통이 시작된다는 의미다. 결국 죄를 짓는 순간 ‘벌’이 시작되는 셈이다. ‘죄의식’과 ‘반성’이야말로 사법부가 정하는 ‘죗값’보다 중한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죄의식’이 사라지고 있다. 죄는 인정하나 벌이 과하다는 불만은 과거에도 종종 있었다. 거기에 더해 이제는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았다는 발뺌마저 당당하다.

영화계 ‘미투’ 가해자로 지목된 김기덕 감독은 해당 여성과 이를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허위사실’이라며 10억원대 손해배상을 소송을 냈다. 여기에 더해 최근 모스크바영화제 심사위원장으로 위촉되는 등 버젓이 활동 중이다. 고 장자연 사건의 경우, 사투에 가까운 윤지오 씨와 달리 연루자들은 당당하기만 하다. 김학의 전 차관 성접대 의혹도 영상까지 공개됐지만 김 전 차관측은 외려 ‘명예훼손과 법적조치’를 취하고 나섰다.

지난해 지역 교육계를 흔들었던 ‘스쿨미투’ 또한 교육당국의 강도 높은 징계 요구에 해당 교사들이 반발하며 아우성치는 모양이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마지막 순간 자신의 죄를 스스로 고하며 마음의 자유를 얻는다. 사법부의 단죄 보다 자기 반성이 중요한 이유다.

이윤주 경제부 부장대우 lyj2001@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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