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신문고와 국민청원
입력시간 : 2019. 05.01. 00:00


신문고는 조선시대 백성이 왕에게 북을 쳐 억울함을 호소하는 소통 창구였다.

지난 1401년 조선 태종이 백성들의 억울한 일을 해결할 목적으로 대궐 밖에 설치했다.

설치 당시 효과는 확실했다. 태종 11년 조정이 군량미 확보를 위해 식량 배급을 줄이자 군졸 300명이 “배가 고프다”며 신문고를 쳤고 태종은 이들에게 토지를 내려 도왔다는 일화가 전해 온다.

신문고는 본래 중국 송나라의 태조가 북을 달아 백성들의 사연을 들었다는 고사에서 착안해 만들었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등문고’라고 불리기도 했다.

물론 신문고가 만능해결사는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신문고를 올려 상소하더라도 그의 상관이나 주인을 고발한다거나, 품관·향리·백성 등이 관찰사나 수령을 고발하는 경우 등은 제외됐다.

이런 여러 가지 폐단 때문에 신문고는 연산군 시대에 없어졌다가 영조가 탕평책의 일환으로 민심을 얻기 위해 다시 부활되기도 했지만 순조 이후 결국 사라졌다. 하지만 임금이 직접 백성들의 억울한 사연을 듣고 해결해 주는 고발기구 역할을 했다는 측면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신문고는 오늘날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취지로 마련된 ‘국민청원’과 비슷하다. 그래서 국민청원은 ‘현대판 신문고’라고도 불린다.

현재 국민청원은 음주운전자의 처벌을 강화하는 일명 ‘윤창호법’과 심신미약 감경 의무를 없앤 ‘김성수법’을 제정케 하는 등 나름의 성과를 냈다.

최근에는 자유한국당 정당해산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120만명 넘게 동참하는 등 열기가 뜨겁다. 역대 최다 기록이다. 해당 청원은 최근 선거제·개혁법안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둘러싸고 사사건건 발목잡고 있는 자유한국당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응집돼 나타난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정당해산 결정은 국민들이 내놓은 청원과 의견에 의해 단순히 결정되지 않는다. 정당해산 절차가 시작되려면 먼저 정부가 청구인이 돼야 한다. 또 헌법재판소가 ‘정당해산심판’ 청구 절차를 거쳐야 하는 첩첩산중의 법률적 과정이 남아 있다.

문제야 어찌됐건 중요한 건 국민들의 목소리가 크다는 것이다. ‘촛불 혁명’을 이뤄낸 국민이다. 김옥경 문화체육부 부장 okkim@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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