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언품’이 있듯 글에도 ‘문격’이 있다”
입력시간 : 2019. 05.31. 00:00


글의 품격

이기주 지음/황소북스/1만4천500원

‘언어의 온도’, ‘말의 품격’, ‘한때 소중했던 것들’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기주의 신작 인문 에세이 ‘글의 품격’이 나왔다.

고전과 현대를 오가는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마음, 처음, 도장, 관찰, 절문, 오문, 여백 등 21개의 키워드를 통해 글과 인생과 품격에 대한 생각들을 풀어냈다.

저자는 오늘날 분노를 머금고 우리 손끝에서 태어나 인터넷 공간을 정처 없이 표류하는 문장들이 악취를 풍기는 이유는 세상사에 너무 즉각적으로 반응하면서 글을 휘갈기다 보니 문장에 묻어 있는 더러움과 사나움을 미처 털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며 글쓰기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전한다.

돌이켜보면 저자는 자신을 둘러싼 주변의 풍경과 사람과 사연이 오감을 거쳐 가슴으로 흘러 들어오던 순간,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고, 그때마다 현미경 들여다보듯 ‘나’를 탐구했다고 고백한다.

내면에 싹튼 뜨끈한 생각과 감정이 식어버리기 전에 지면과 화면에 바지런히 적었는데, 이처럼 글을 쓰는 일은 마음의 상태를 살피고 기록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하며 삶이 곧 하나의 문장임을 일깨워준다.

작가는 책에서 “말에 언품(言品)이 있듯 글에는 문격(文格)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전을 찾아보면 ‘격(格)’은 ‘주위 환경이나 형편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분수나 품위’다. 세상 모든 것에는 나름의 격이 있다. 격은 혼자서 인위적으로 쌓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삶의 흐름과 관계 속에서 자연스레 다듬어지는 것이다. 문장도 매한가지다. 품격 있는 문장은 제 깊이와 크기를 함부로 뽐내지 않는다. 그저 흐르는 세월에 실려 글을 읽는 사람의 삶 속으로 퍼져 나가거나 돌고 돌아 글을 쓴 사람의 삶으로 다시 배어들면서 스스로 깊어지고 또 넓어진다”고 말한다.

그는 특히 “깊이 있는 문장은 그윽한 문향(文香)을 풍긴다고 전한다. 특히 그 향기는 쉬이 흩어지지 않는다. 책을 덮는 순간 눈앞의 활자는 사라지지만, 은은한 문장의 향기는 독자의 머리와 가슴으로 스며들어 그곳에서 나름의 생을 이어간다. 지친 어깨를 토닥이고 상처를 어루만지는 꽃으로 피어난다”고 설명한다.

말수가 적음을 뜻하는 한자‘눌(訥)’은 말하는 사람의 ‘안內’에서 ‘말言’이 머뭇거리는 것을 가리키는데, 이는 신중하게 말하는 자세를 뜻하기도 한다.

글쓰기에서도 때론 머뭇거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쓰고 싶은 욕망을 억눌러 문장에 제동을 걸 줄도 알아야 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달필(達筆)의 능력이 아니라 눌필(訥筆)의 품격이 아닌지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풀어낸다.

김옥경기자 okkim@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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