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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진의 세계여행 (2)러시아
입력 : 2016년 06월 21일(화) 00:00


생각의 자유마저 결박당한 유랑민족의 뼈아픈 고통
이주민 기차 탄 리나 가족들 낯선 땅에 내려
소련 붕괴 고려인 또 다시 이방인으로 전락
리나 할머니집 마당에서 본 일출
리나, 누군가에게 쫒긴 것처럼 숨 몰아쉬어

"나도 기차에서 언니를 잃었다오” 중앙아시아로 흩어졌던 고려인들 러시아로 돌아와



함께 이불을 덮고 앉아서 리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밖에는 동이 터오고 있었다. “나는 태어나기 전이었지만 어머니가 가끔 넋두리처럼 하던 말이 기억 나” 이주민 기차에 탄 리나 가족은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 오빠 언니 이렇게 다섯이었단다.

"기차는 고통 자체였다오. 창문도 없고 화물칸에 사람을 얼마나 빽빽이 실었는지 냄새가 지독했어. 여름엔 땀으로 겨울에는 추위로. 사람이 아니라 짐승 취급을 받은 거지. 우리 어머니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생각하곤 했대. 기차는 며칠을 달리다가 또 며칠을 서 있기도 했는데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는지 얼마만큼 가다가 완전히 멈출지 아무도 알지 못했어. 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할까 불안해하곤 했어.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봐서 날짜를 어림했지. 서너 달 정도 흘렀을 것이라고 생각했대. 아이들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많이 죽었는데, 그 때 두 살이었던 우리 언니도 감기를 앓다가 죽었어. 어머니는 죽은 딸을 안고 있다가 기차가 섰을 때 땅에 묻었대. 어떤 사람은 아내를 잃었고 어떤 사람은 남편을 잃어서 기차가 서면 사람들은 죽은 이를 내려서 함께 묻어줬대. 언니를 묻은 곳이 어디쯤일까 궁금했지만 지명을 알 수 없었지. 시간이 많이 지난 뒤에도 우리 가족은 모이면 그 때 얘길 하곤 했어. 절대로 멈출 것 같지 않던 기차가 드디어 멈췄고, 듣도 보도 못한 낯선 땅에 내렸던 거야”

그렇게나마 새로운 곳에 정붙여 살면서 다시 한 세대를 거쳤을 때, 1991년 그 위세를 떨쳤던 소련이 붕괴되었다. 위성국가들이 독립하면서 이번에는 ‘자민족 중심주의’가 급물살을 탔는데 고려인들은 또다시 이방인이 되고 말았다. 중앙아시아에 정착해있던 그들에게 떠날 것이 강요되었고 압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위기를 느낀 리나 네는 부랴부랴 헐값에 집을 팔고 아버지의 고향 러시아로 돌아왔다. 두 번째 이주민 기차에 짐을 실어 보내면서 리나의 어머니는 “세상 참 좋아진 기라. 그래도 지금은 비행기를 타고 가지 않누” 라고 위안했다던가.

사람이 짐짝처럼 실렸던 예전에 비하면 이번에는 호강한다는 뜻이었다. 그녀에게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 모든 것에 초연해지지 않고서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나마도 결단이 늦은 이들은 한 움큼의 재산도 가져오지 못하고 맨몸으로 빠져 나와야했다는 말을 전하면서, 리나는 지금도 누군가에게 쫒기 기라도 하는 것처럼 숨을 몰아쉬었다. 그들에 의해서 중앙아시아로 흩어졌던 고려인들은, 다시 또 다른 그들에 의해서 러시아로 돌아왔다.

우술리스크 고려인들을 취재하고 있을 때 같이 간 일행 한 분이 장난 같은 질문을 던졌다.

-할머니, 레닌은 좋은 사람이예요?

-고럼, 좋은 사람이지!

-사회주의는 좋은 거예요?

-고럼, 좋은 거지!

여기까지는 사회주의 국가였으니까 어느 정도 예상했던 답변이었다. 그러나 다음 질문에서 우린 아연실색했다.

- 스탈린은 좋은 사람이예요?

- 고럼, 좋은 사람이지!

- 할머니 가족에게 총칼을 들이대고 하루아침에 강제 이주 기차에 태웠는 데도요?

- 어쩔 수가 없었던 기라. 여기가 인구가 좀 많나. 이 사람들 살리려면 우리를 희생하는 수밖에.

그랬다. 이들은 지배자의 논리를 자신의 머리에 그대로 이식함으로써, 용납할 수 없는 현실을 용납했다. 분노를 들키는 것이 무엇보다 두려웠을 것이다. 힘을 가진 자와 동일한 말을 함으로써 이미 동화되었음을 입증했다. 고등교육을 받았던 데다 무자비한 총칼에 가족을 잃었으면서도, 스탈린이 옳았다니! 고려인 전체가 스톡홀름 신드롬을 앓았던 것이 틀림없다. 생각의 자유마저 결박당한 아픔, 이것이야말로 중앙아시아의 유랑민족이 겪었던 뼈아픈 고통일 것이었다. 서러운 사람보다 더 서러운 사람

그날 점심 무렵에는 우술리스크의 한 아파트에서 할머니들을 인터뷰했다. 구순이 되신 분이 횡단 열차를 탔던 시절을 회고하고 있었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흐르는지 할머니 뺨은 금방 얼룩졌다. 창문 하나 없는 화물칸에, 여섯 달을 마냥 달렸노라고 했다. 한 칸에 세 가족 정도가 탔는데 작은 뻬찌까(난로) 하나에서 밥도 해먹고 돌아가면서 몸을 녹이곤 했단다. 그러다가 아무데나 벌판에 기차를 세우면 사람들은 우루루 내려 여기 저기 흩어져서 참았던 용변을 보았더란다. 간혹 아주 침울한 가족이 보였는데 어린 것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죽은 경우였다. 그 할머니도 여동생을 그 때 잃었다. 할머니는 여동생 잃은 얘기를 하다가, 마치 어제 일이기라도 한 것처럼 몸까지 부르르 떨었다. 평생 겪었을 트라우마가 느껴졌다.

눈물이 흐느낌으로 변해가고 있을 때, 교사를 하다 은퇴하셨다는 다른 할머니 한 분이 웬일인지 러시아어로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역정을 냈다. 러시아 말과 한국말이 섞여있는 통에 ‘거짓말’이라는 표현이 들렸다. 기억에 차이가 있는 모양이었다. 어린 시절의 일인데다 세월이 그만큼 흘렀으니 기억들도 퇴색하고 끊겨지고 할 것이다.. 그런데 왜 감정 통제가 안 될 정도로 화를 내는 걸까. 통역하시는 분께 슬며시 물으니, 그분은 고아였노라고 했다. “저 할마씨가 가족 칸에 탈 때, 나는 고아라서 가난해가지고 100명이 넘게 타는 칸에 탔다구! 저런 사람이 뭐이가 힘들었다고 기래.”

화를 냈던 할머니는 그날의 두려움과 설움이 한꺼번에 떠오르는지 복받혀서 한참을 울었고 눈이 뻘겋게 충혈 되었다. 어른들도 제 목숨 하나 건사하기 힘든 판에서 고아가 겪었을 일들은 오죽했을까. 얼마나 부러웠을 것인가? 어른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가족 칸에 탔던 이 할머니 같은 분들이. 이 분들끼리의 미묘한 온도 차이는 당연할 것이었다. 그러니 잠깐 듣는 것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우리들이 무엇을 제대로 이해했을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