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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진의문화기행 6)러시아
입력 : 2016년 08월 11일(목) 00:00


'고려인' 돌봐야 될 대상이 아니라 함께 걸어야 할 사람들
짙은 안개에 바다처럼 펼쳐진 '항카호수' 경외심 느껴
'고려신문' 한글을 보면서 애국자가 된 듯 반가워
소수민족 중에서 '고려인'은 교육 수준이 높은 편
문제 뿌리부터 해결할 수는 없어도 고려인 '동포자격’줘야






안개 속 항카호수

다음날 아침엔 스파스크달리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항카 호수를 보러 갔다. 김알라 여사의 남편이 관리 일을 하고 있는 곳이다. 차를 타고 얼마만큼 가다가 걷기 시작했는데 몇 걸음마다 급격히 달라지는 풍경 때문인지 미지의 세계로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이대로 가다보면 뫼비우스의 띠 위를 걷는 것처럼 다른 차원으로 넘어 가 버리진 않을까. 집채만 한 식물 종들이 우릴 잡아먹기 위해 에워쌀지도. 한참 공상에 빠져 있을 때 갑자기 눈앞이 열리더니 짙은 안개에 잠겨있는 항카 호수가 바다처럼 펼쳐졌다.

호수의 크기가 전라북도나 충청도 땅덩어리만 해서 위성에서도 잡힌다는데, 순가치강으로 흘렀다가 나중에 우수리강으로 합해진다고 한다. 안개의 장막이 만들어 놓은 신비 때문인지 경외감에 휩싸였다. 안개 깊숙이 시선을 던져 끝을 알 수 없는 어딘가를 응시했다. 습습한 공기를 한껏 들이켰다. 하루쯤은 일정을 비우고 이 언저리를 산책하면 좋으련만, 목적이 확실한 여행이라 호수를 제대로 눈에 넣을 틈도 없이 다음 행선지를 의논했다.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할 무렵, 우린 호수를 빠져 나왔다.

한 시간 정도 내리던 비가 그치기 시작할 땐 푸른 잔디가 덮인 널따란 들판을 지나고 있었다. 옥수수 밭이 펼쳐졌다. 다 익어서 줄기째 마른 잎들이 햇볕을 받아 연노랑으로 바스락거렸다.

어느새 말짱해진 하늘과 시선의 끝까지 펼쳐져 있는 옥수수 밭, 살면서 이렇게 넓은 옥수수 밭을 볼 기회가 다시 있을까? 러시아의 시골에서는 어디를 가든 빈 땅과 넓은 들녘을 지치도록 보게 된다.

우수리스크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배가 몹시 고팠다. 고려인 회관에서 미역국과 김치에 밥을 먹고 2층에 있는 고려신문사를 방문했다. 러시아 땅에서 <고려신문>이라는 네 글자의 한글을 만나니 갑자기 애국자가 된 듯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절반은 러시아인으로 살아가면서 절반은 혈통적인 정체성을 찾아가려는 의지가 느껴진다. 고려인들은 이곳의 소수민족 중에서도 교육 수준이 높은 편이어서 정계에 진출한 이도 있고 사회의 다양한 곳에서 활동을 넓혀가고 있단다.

요즘은 한글 공부 붐이 일어서 가는 곳마다 한국말로 말을 걸어오는 고려인들이 있었다. 회관에는 금발의 늘씬한 청년들도 간혹 보였는데 어떤 관심으로 여기에 왔을까. 한국 진입을 위해 한글을 배우러 왔을까? 고려신문사 임원들과 고려인들의 활동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건물 밖으로 먼저 나와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예닐곱 명의 아이들이 참새 떼처럼 우르르 달려와 근처의 벤치에 앉았다. 회관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끝내고 나오는 모양인데, 금발의 아이들과 까무잡잡한 흑발의 아이들이 섞여 있었다. 셔터를 눌러 댔더니 아이들이 제각각 재미있는 포즈를 취한다. 그 중 고려인으로 보이는 파란색 코트를 입은 아이와 그림처럼 예쁜 러시아 여자아이가 단짝친구인지 둘만 따로 찍어 달라고 했다. 몇 번 사진을 촬영한 뒤 사진을 보여 주었다. 자신들의 사진을 무척 좋아했는데 기념으로 주고 올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상안치혜와 하안치혜, 꼬레사람들의 흔적

우슬리스크에서 크라스키노로 가는 길에 빛바랜 주홍색 건물을 만났다. 벽 색깔이 예뻐서였는지 몇몇이 내려서 사진을 찍었다. 낡은 호텔이었다. 겨울 햇볕의 기묘한 따스함이 마당을 감싸고 있었다. 딱히 잘 곳을 정하지 않았던 터라 묵어가기로 했다.

체크인을 하러 들어간 사이, 문간에서 졸고 있던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잠시 고개를 들어 쳐다보더니 귀찮은 듯 다시 둥글게 만 자신의 몸속으로 얼굴을 파묻는다.

다른 놈은 슬로우 모션처럼 느린 걸음으로 졸고 있는 놈한테로 걸어간다. 느긋하기 그지없는 풍경이었다. 드디어 여행 며칠 만에 개인 공간에서 쉴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일까, 나른함이 몰려왔다. 한 방에 두 사람이 배정 되었다. 열 사람이 움직이다보니 늘 씻는 것이 문제였었는데 따뜻한 물에 느긋하게 씻는 기분이란! 우린 깊은 잠 속에 골아 떨어졌다.

다음 날은 크라스키노에 있는 특별한 시골 마을을 찾아보기로 했다. 물어물어 어렵사리 찾아 간 마을은 마침 햇살이 좋은 날이라서 정겨운 풍경이었다. 크라스키노는 포시예트와 함께, 조선 말 대기근으로 국경을 넘은 이들이 제일 먼저 정착했던 곳이다. 국권을 잃은 다음에는 일본의 눈을 피해 독립운동을 활발히 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들이 상안치혜, 하안치혜로 부르며 모여 살았던 마을, 나중에 블라디보스톡으로 주 근거지를 옮길 때까지 초기 고려인들은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삶을 개척했다. 그들은 러시아 땅에 벼를 심어 쌀을 보급했다. 황무지를 개간하며 얼마나 뼈아프게 살았을지 현장에 가면 무언가를 볼 수 있을까? 강제이주열차에 실려 이곳을 떠날 때 들판은 누렇게 벼가 익어가고 있었다고 한다. 한 해 농사를 추수하기 직전, 모든 것을 잃고 짐승처럼 화물기차에 실렸다. 가족이 서로 다른 기차에 실리기도 했다니 친지간 동승은 꿈도 꾸지 못했을 터였다. (참조. 고려인, 그들은 누구인가?

그러나 아무 것도 없었다. 꼬레사람들에 대한 어떤 흔적도 없었다. 그곳은 이미 평화로운 러시아의 시골 마을일뿐이었다. 갈퀴로 마당의 낙엽을 쓸고 있는 여인에게 이곳의 내력을 물었지만 모른다는 답변이다.

철저히 지워진 것이다. 인간은 역사적 동물이다. 어제의 기억으로 오늘을 산다. 그것들이 단절되어 버릴 때 해리에 가까운 심리적 통증을 느낄 것이다. 과거가 통째로 날아가 버리는 사건. 쭉 살아오던 삶의 맥락에서 탈취된다든지, 가족사에서 지워져 버린 다든지, 역사에서 지워진다든지, 그 모든 것이 하루아침 한 인생에 집중되어 일어난 것이다. 나는 아득한 슬픔과 함께 눈앞의 평화를 지켜봤다.

지금도 현재를 고단하게 살고 있는 그들의 문제. 러시아도, 한국도 책임지지 않을 개인의 문제로 전락해버린 그들의 문제. 그들에게 폭력을 가했던 거대한 세력들은 아직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들의 삶을 책임지지는 않을 것이다. 모국이었던 나라에서 온 나는 그들에게 어떤 연대 의식을 갖고 있을까. 답답해졌다. 문제를 뿌리부터 해결할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하루 빨리 ‘동포자격’이라도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재외동포법상의 동포자격을 받을 수 없는 이유는,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일제가 만든 호적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 선조들의 선택이었거나 국내 호적제가 시행되기 전에 이주했었기 때문이다. 당시 많은 항일 운동가들이나 독립군들은 그런 선택을 했다. 그런데 광복 후 대한민국은 그 호적을 그대로 받아들여 국적을 부여했기 때문에 호적이 없었던 그들은 국적조차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돌봐야 될 대상이 아니라 함께 걸어야 할 사람들이다. 그들과 동행하는 길만이 세계인이 되는 길일 것이다. 그리고 인간으로서 걷는 길일 것이다.

하산으로 가는 길, 고속도로 주변의 농가에서 직접 농사지은 것들을 들고 나와 길거리에서 팔고 있다. 야채며 과일이며 커다란 호박까지. 종류도 다양하고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작은 수레들을 손수 꾸몄는데 손글씨에 그림을 그리고 바람개비를 달고 키치한 장식들을 한 것이 소박하면서도 즐겁다. 과일도 사먹고 농가 화장실도 이용하기 위해서 잠깐 내렸는데 시골 아낙의 인심이 솔솔했다.

한유진은

공간 디자이너 문화기획자, 칼럼니스트로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마임이 가미된 음악공연을 연주자들과 공동 선보이는 ‘음악에세이’라는 독창적 프로그램을 기획 진행 총괄 운영해 광주에 첫선을 보였고 광주의 대표적 민간클래식음악회 상징이 된 ‘광장음악회’ 기획 공연 진행을 10년간 이끌어왔다. 오페라를 가족들이 편하게 만나볼 수 있도록 한 ‘그림자극 라 트라비아타’를 대본 공동기획했고 양림동 마을대학 강의와 포럼 진행하는 등 지역의 풀뿌리 문화 저변확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