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1(월)광주 11ºC
쉼 > 레포츠
박영진의 세계스케치 기행
입력 : 2016년 09월 28일(수) 00:00


5)중국 下-리장시, 여강고성, 동파공원
황화 유역의 문명과 티벳문화 결합한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 만들어
송찬림사
동양의 베니스라 칭하는 리장시, 낭만적인 아름다운 마을

리장문전 입구 '세계문화유산 려강고성 강택민 1999년 5월' 현판 내걸려

주혼문화 전통을 갖고 있는 모소족, 모계사회의 살아있는 화석

리장시-원난성 서북부의 해발 2400m에 위치한 나시족의 왕도로 새롭게 떠오른 관광도시이다. 도시는 강을 사이에 두고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눠 라후, 푸미, 바이족 등이 많이 거주하며 한족보다 소수민족의 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려강으로 들어서는 입구는 장장 2㎞ 직선 도로이다. 비에 젖은 가로수들이 차분한 느낌을 준다. 1996년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기도 했지만, 구시가지는 199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동양의 베니스라 칭하는 낭만적인 아름다운 마을이다. 시 북쪽엔 한번도 외부인의 발길을 허락지 않은 옥룡설산(5596m)이 있다. 높아서가 아니라 바위가 부스러져 징을 박을 수 없어서란다. 격자형의 중앙광장을 중심으로 골목이 이어지고 나무들로 된 고풍스런 집들과 휘어진 나무들, 돌로된 골목길 양옆으로 전통공예품을 파는 가게가 화려한 불빛으로 유혹한다,

성벽이 없다. 예전에 주로 木씨가 통치했으며, 목자에 성을 쌓으면 빈곤할

모든 성들은 성벽에 둘러싸여 있는것이 일반적이지만 구시가지 주위는 빈곤할 곤(困)이 되므로 성벽을 축조하지 않았다고 한다. 낡은 목조 건물들이 일렬로 서로 마주보는 형태로 밀집되어 있으며 수로가 뒤얽혀 흐르는 도시 구조다.

후세인들은 수로 때문에 성벽을 쌓지 않은 거라고 하지만 언덕에서 내려다 보면 밀집된 기와 지붕이 호수를 보는 듯 경치가 펼쳐진다. 리장문전 입구엔 '세계문화유산 려강고성 강택민 1999년 5월' 이라는 현판이 반긴다. 아마 이 현판이 쓰여지기전 려강은 훨씬 더 아름다웠으리라.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3개의 냇물이 흐르고, 목조 건물은 1층은 상가, 2층은 주거구조로 되어 있다. 은세공품, 목공예, 동파문자 스카프, 자수를 놓은 의상들, 악세서리 가게가 빼곡히 들어차 있고, 카페에선 높은 현의 음악에 맞춰 춤추는 무희들의 형형색색 치맛자락이 발길을 멈추게 하고 귀와 코를 자극한다.

오래된 도시를 생동감있게 하는 밤거리의 문화는 젊은이들이 절대로 놓치고 싶지않은 즐거움의 하나다. 중국 전역과 전세계에서 모여든 관광객으로 은빛으로 반짝거린다.

명나라때부터 성을 이루고, 모소족(모계사회)여인은 한가로히 베틀앞에 앉아 오색실로 베를 짠다. 기름을 칠한듯 반들반들한 돌들이 지나간 세월을 대변해 주는듯, 서북지역은 차무역의 거점을 이뤘고(차마고도가 시작된곳)중국내 55개 소수민족중 나시족의 고장답게 독특한 양식으로 지어졌다. 80%를 관광수입에 의존하지만 하루에 5만명이 넘게 모여든다니, 물반 고기반인 셈이다.

사자산을 따라 골목골목을 헤집고 다니면 떠나기 싫은 동네, 한달쯤 살고픈 곳이기도 하다. 리지앙의 주인인 나시족의 동파문자(상형문자)가 이채로운곳, 불빛과 더불어 냇물까지 또다른 이미지로 멈추지 않고 흐른다. (여강고성,동파문자,옥룡설산이 세계문화유산) 조그만 시골 산골 사람들이 부자가 되어서 생활고 걱정없이 놀고 먹고 산다. 려강은 나시족 제2도시이다. 나시란 검다란 뜻으로 강렬한 태양빛 때문에 얼굴이 검은데서 붙은 이름이며 검은색 천에 화려한 수를 놓아 머리에 두르고 옷을 해 입는다. 나시족 여인들은 모든 경제권을 갖고 살며 집사고 돈벌어 극진히 남편을 먹여 살린다. 남자들은 모두 집에서 아이를 보며 놀고 먹는다. 예전에 몽골, 대리, 라오스등 많은 대국들과 인접해 있다보니 잦은 전쟁에 시달렸으며 남자들이 많이 희생됐기 때문에 남자를 귀히 여기는 풍습이 전해졌다. 여인들은 경제권을 책임지다 보니 활동량이 많았고, 고산덕에 살이 찌지 않기도 하지만 여기서의 미의 기준은 살이 찐 여자이다. 나는 단연 미스 진이다. 그래서 중국의 다른 지역에선 아가씨를 부를 때 ‘샤오전’하지만 이 쪽에선 “팡진미” 하고 불러야 좋아 한단다. ‘팡진미’는 직역하면 뚱뚱한 자매정도 된다. 우리도 2개월만 이곳에 살면 검둥이가 된단다. 사실 리프트를 20분 타는데 무릎위에 쏟아진 햇볕이 뜨거운 국냄비를 올려 놓은 것처럼 따가웠다. 우리가 떠날때는 저녁 7시, 목조 건축의 중앙 마당에선 세계인들이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여강 댄스를 춘다. 하루쯤 묵으며 2층 베란다 창문을 열고 저 댄스를 구경했으면..., 불 밝힌 카페에 질펀하게 앉아 못마시는 맥주라도 마시며 목청높혀 호기를 부려 보고도 싶다. 고성에선 살게 너무 많다, 값도 싸고 착해서 2일정도 묵고 싶은 곳이었다.

주혼문화

중국 윈난성의 루구호(2680m)에 사는 주혼문화 전통을 갖고 있는 모소족은 모계사회의 살아있는 화석이다. 루구호는 사천성과 운남성 여강시의 교차점에 위치한 가장 높은 해발에 위치하며, 중국에서 두번째로 깊은 민물호수이다. 또 중국의 10대 여행지에 속할만큼 경관이 아름답다고 하여 '고원의 진주'라고 한다. 모소족은 매년 음력 설날에 만 12살된 여자 아이들이 성인식을 치른다. 아이를 낳으면 여자의 성을 따르고 여성은 나이가 들어 가장이 된다. 아이는 엄마의 성을 따르며 이모, 삼촌과 자란다. 아버지란 호칭이 없고 오직 삼촌만 존재한다. 결혼해도 서로의 생활을 간섭않고, 재산도 따로 관리하며 남·여가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결혼도 사랑이라는 감정과 생활이 분리되어 있다. 각자 따로 살다 저녁에 만나고 새벽이 되면 처가의 어른들이 일어나기전 남자는 조용히 떠난다. 그것이 예의로서 늦으면 굉징히 수치로 여긴다.

남자는 자기 어머니의 집에 가서 조용히 차마시며 아침을 맞는다. 모소족의 로맨스는 밤에만 이루어진다. 여자는 13살이 되면 '꽃방'이라는 혼자의 침실을 갖고 남자를 고를 수 있다. 배우자 선택권이 여자에게만 있다.

'주혼'이란 주(남자는 장가들지 않고) 혼(여자는 시집가지 않는다) '아샤'란 모소아어로 교재하고 있는 연인'이란 뜻이다. 결혼이 아니고 교재이기 때문에 모두 일생에 몇 번이든 가능하지만 한번에 두명과 동시에 만날 수 없고 해어진 후 만나야 한다 '양다리 걸치기'는 없다. '아샤관계'는 아무런 물질적 사회적 관계없이 정(사랑)으로 이어진 관계이기 때문에 마음이 식으면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다. 남자가 안 가던지, 여자가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던지, '밤에 오지 마라'하면 곧 이별이다. 실연의 상처로 아파하는 일도 없고, 어떤 남자를 고르던 주위의 시선에 눈치 보지 않아 스트레스도 없다. 모소족 여인들은 그 사람을 너무 많이 알지 않고, 너무 오래 같이 있는 것도 싫고, 그 사람의 부모를 모시는 일도 없다'라고, 요즘 딱 어울리는 세태, 쿨하다. 하지만 '주혼'이란 그저 하룻밤 즐기는게 아니라 평생의 반려자를 찾는 것이다. 결혼하면 90%가 평생 한명과 함께 하며, 남자는 가족과 아이들을 책임져야 한다.

동파공원

‘동파’란 인간 문화재를 뜻하며 지금도 70을 넘은 할아버지 한 분이 글씨를 직접 쓰는 시연을 보여 주고, 사진을 같이 찍어 주셨다.

나시족은 황화 유역의 문명과 티벳문화를 결합한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었으며, 산,강,바람같은 자연을 숭배하도록 가르치는 일종의 구전형식의 歌詞이며 현재 사용되는 최후의 상형 문자이기도 하다. 또 이들은 우수한 재질의 나시종이도 만들어 냈다. 첫인상은 밝고 단정했다. 우리의 비원정도나 될까? 먼저 반겨 주는건 형형색색의 국화들, 꽃말이 행복과 장수를 뜻한단다. 이 곳을 다스리던 족장이 고성에 자금성의 축소판 집을 짓고, 황제의 귀에 들어 갈까봐 국빈이 오시면 이곳 동파공원에 모셨다고 한다, 왕의 별궁이다. 호수를 중심으로 오작교가 이어지고, 호수 주위의 가로수 산책길을 따라 걸으면 아담하고 운치있어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서산 용문-쿤밍시에서 가장 높은 서산에 위치한 동굴로 해발 2280m이며 절벽을 따라 석굴을 늘어 놓았으며 석굴을 따라 걸으면 다양한 불상, 석각 예술품이 조각되어 있는 석실과 용문을 볼 수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용이 산을 뚫고 승천하는것 같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 앞쪽엔 중국내에서도 8번째로 크다는 쿤밍호가 흐른다. 호수가 아닌 거대한 바다같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깨끗한 설산의 물로 이모작을 하니 풍요로울 수 밖에, 온 시야가 푸르른 녹빛이다. 한 시인이 평생을 걸쳐 조성했다는데 사원 안의 곳곳엔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 효와 부를 얻고자 하는 염원을 기원드리는 곳이 갖추어져 있다, 중간에는 용문을 다녀간 세계각국의 정상들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20분 리프트를 타고, 전동차로 5분간 가서 도보로 1시간 정도 구불구불 좁은 굴을 오르락 내리며 경치도 즐기고, 소원도 비는 곳이다. 주말에는 도시락을 지참해오는 등산객이 많다고 한다.

송찬림사

300년 역사를 가진 티베트사원으로 작은 포탈라궁이라고 불리며 다양한 불교 미술을 감상할 수 있다. 집집마다 펄럭이는 붉은 깃발은 라마승을 출가시켰다는 집이란 표시이다. 라마승을 출가시키면 가문의 영광으로 여긴다. 이곳 송찬람사만 720명의 라마승이 거주하며, 가족들은 절 옆에서 같이 거주해서 인도의 틱세이 곰파에 비해 웅장함이라던지 아름다움이 조금 부족하지만 분지속에 위치한 절은 호수를 앞에 두고, 호수 중앙에 휘날리는 파르쵸를 바라보며 언덕위에 우뚝 서 있었다. 많은 계단으로 중앙에 도달하게 설치되어 있으며 계단 주위의 집들은 강원도의 굴피집과 비슷했다. 계단 중간쯤엔 키큰 해바라기 한그루가 고개를 떨구고 힘겹게 오르는 중생들을 묵묵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