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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톡 역 선로들 따라 낯선 도시 향해 끝까지 달려보는 날이 있기를
입력 : 2016년 10월 12일(수) 00:00


한유진의 문화기행
7)러시아
파스텔톤의 여자들
북한이 개방돼 광주 역에서 기차를 타고 중앙아시아 지나는 날을 상상

차이코프스키나 쇼스타코비치 같은 음악가 배출한 나라 복제음반 수두룩

러시아의 색감

"아유, 촌스러워"

러시아 횡단열차 티켓을 사러 가는 길, 일행 중 한 분이 차창에 눈길을 두고 말했다. 난 거리의 리드미컬한 색 물결에 열중해 있다가 그 얘길 듣고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마침 우리 두 사람 다 색상을 다루는 직업을 갖고 있었는데, 어째서 이처럼 다르게 느끼는 걸까?

파스텔 톤의 코트에 털모자, 가죽 부츠를 신은 두 할머니가 우리 곁을 스쳐간다. 촌스럽다고 했던 그 색감, 나는 며칠 전부터 특히 색감에 반해 있었다. 이탈리아나 프랑스 같은 나라들은 수많은 상품을 통해 세계에 자신들의 색을 수출했고 우린 오래 전부터 서방의 색에 적응했다. 최근에는 여행이 자유로워지면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해 그동안 낯설었던 국가들의 색들도 어느 정도 친숙해진 편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국제적인 색상회사가 ‘올해의 색’을 발표하면서 디자이너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영향을 받으며 상품을 만들어낸다. 그 해의 색은 단 두 가지 색으로 통일되어 ‘유행’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만든다. 색깔의 맛, 색깔의 온도, 그것이 품었던 고유한 것들은 사라져 간다. 같이 간 일행이 ‘촌스럽다’고 표현한 그것이 혹여 아직 사라지지 않은 개성은 아닐까? 특정한 기준을 통해 철저한 배제를 생산해 내는 유행, 그것에서 멀어지면 사람들은 촌스럽다고 느낀다. 진짜 자신의 느낌인 것처럼. 그러나 그 느낌이란 것은 제품의 생산단계에서 계획된 것들이다. 사람들은 매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양화된 것들에 자신을 포함시키고 만다. 채도가 낮은 준보색과 파스텔톤을 주로 사용하는 러시아의 색, 나는 그 배색들이 좋다. 도시로 나오니 색깔의 느낌들이 더 선명해진다. 착시나 위트 있는 내용의 벽화들로 꾸며 놓은 가게들도 눈에 띄었다.

블라디보스톡 역의 풍경

우리는 무려 두 시간 반을 기다려 티켓 예매를 했다. 무한정 기다려야 하는 인내심, 러시아 여행에서는 필수 덕목이었다. 제대로 항의하는 사람조차 없다. 타고 난 여유일까, 과거 삶의 잔재일까? 역에서 제일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타래실처럼 엉킨 선로들을 내려다봤다. 선로를 따라가다 보면 유럽으로도 중앙아시아로도 갈 수 있겠지. 평야를 지나 숲을 지나 사막을 거치고 낯선 이름의 도시들을 거쳐 가겠지. 지구상에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신비한 광경도 보게 되겠지. 언젠가는 선로의 끝까지 달려보는 날이 있을까? 북한이 개방되어 광주 역에서 기차를 타고 중앙아시아를 지나는 날을 상상했다.

역의 광장에는 레닌의 우람한 동상이 서 있다.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짜르를 몰아내고 볼세비키 혁명을 이룬 사람. 프롤레타리아트의 세상을 열겠다고 했던 사람. 러시아 사람들의 가슴에는 아직도 레닌이 있을까? 뛰어난 사상들을 제시하며 현실 정치를 했던 그의 길게 뻗은 팔에는, 비둘기들만이 줄줄이 앉아 깃털을 고르고 있었다. 새똥으로 얼룩진 동상처럼 한 시대가 간다. 그러나 곧바로 과거를 현재로 소환하는 믿기지 않은 광경을 보게 되었다. 북한 노동자들이었다. 똑같은 복장, 똑같은 가방을 메고 줄줄이 가던 그들. 노동 이외의 어떤 삶도 허락되지 않은 것처럼 후줄근한 노동복을 닮은 표정으로 걷던 그들. 단출한 회색 가방에 얼마나 무거운 삶을 담았기에 저리 축 늘어졌을까. 프롤레타리아의 혁명 같은 것이 실제로 있기는 한 것일까? 저들의 목적지인 시베리아의 추위가 벌써부터 그들을 얼려놓고 있다. 커다란 레닌 동상 아래에 줄줄이 앉아 잠시의 휴식을 갖는 그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러시아의 채취

오후에는 서너 시간 정도의 자유 시간이 주어져서 몇몇은 사진을 찍으러 가고 나는 친해진 두 사람과 강변을 산책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그들과도 헤어져서 혼자 광장으로 돌아왔을 때 몇 번인가 마주 쳤던 러시아 정교 사원이 보였다. 입구에 숄이 구비되어 있었는데 미사포처럼 머리에 쓰거나 짧은 반바지를 입은 여성들이 허리에다 두르는 용도인 모양이었다. 나도 얼른 푸른색 프린트가 있는 숄을 머리에 쓰고 그들 뒤에 섰다. 러시아 정교의 사원은 내부가 아담했다. 한꺼번에 수백 명을 수용하는 넓은 홀이 있는 우리식 성당과는 달리 열 댓 명 정도가 선 채로 기도문을 외우고 있었는데, 그레고리안 성가처럼 선율적인 기도문을 신부가 외우면 신자들이 짧게 답했다. 미사 형식이 아름다워서 푹 빠져 있을 때, 주도했던 젊은 신부가 음을 이탈했다. 자기도 민망한지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웃는다. 신자들도 따라 웃었다. 혁명 이후 러시아 정교는 소비에트 정권 10년 동안 박해를 받았다는데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까? 우리야 부활 달걀의 관습이 여기에서 왔다는 정도의 연관밖에는 느끼지 못하지만, 공산주의 하에서 살아남은 종교의 형태가 궁금했다. 미사를 끝내고 나올 때 사람들이 자꾸 뭔가를 물었지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알아듣지를 못했으니. 호텔에 돌아와서 선물코너에서 산 기도문을 틀어놓고 편안한 쪽잠이 잤다.

저녁에는 방에서 러시아 가이드와 함께 보드카를 마셨다. 보드카 토닉 정도야 가끔 마시기도 하는 술이었지만, 러시아에 와서 향과 맛이 다른 보드카들을 비교해가면서 먹다보니 그 깔끔한 매력에 새삼스레 흠뻑 빠졌다. 안주도 부족하고 이미 시작한 술도 부족해질 즈음 심부름을 자청한 친구와 거리에 나왔다. 마음씨 좋은 이 친구는 기다리는 사람들 걱정을 하지만, 나는 러시아의 밤거리를 쏘다녀 볼 작정을 하고 나온 터였다. 혼자 두고 들어갈 수가 없었던지 친구는 결국 두어 시간을 함께 다녔다. 러시아의 거리는 어둑어둑했다. 밤늦게까지 여는 상점도 별로 없었고 거리의 가로등도 은은했다. 그래도 군데군데 불이 켜진 통유리의 가게들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고 모퉁이를 돌다보면 지하에서 떠들썩한 빠의 흥겨움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 손을 잡고 걷던 청춘 남녀가 앞에서 키스를 나누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함께 간 친구가 며칠 간 짧게 배운 러시아 말을 통틀어 건네며 보행기를 끌고 가던 여인에게 길을 물었을 때, 무뚝뚝했던 그녀는 설명으로는 부족했는지 우리를 끌고 골목 끝까지 데려다 주기까지 했다. 잘 웃지 않는 러시아 사람들. 친절이 없었다기보다는 상업적인 미소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여기 젊은이들은 변화의 정점에 있는 것 같다. 신자유주의의 열풍은 공산국가였던 이곳까지 몰려 온 모양. 바이올린을 든 거리 악사의 리듬에 맞춰 한바탕 춤을 추고 통에 동전 몇 닢을 던져 넣고 돌아섰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건물들 사이를 누비면서 낮에 볼 수 없었던 도시의 뒷모습들을 최대한 눈에 담았다. 화려한 빠에 들어가서 금발의 그들과 섞여 한 잔 하는 것으로 이곳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싶었지만 같이 간 친구의 성화에 못 이겨 장을 보러 갔다. 러시아 슈퍼에서 우유를 사서 선 채로 꼴깍꼴깍 마셨는데 그 고소한 맛이 목마름과 함께 밤거리의 마지막 흥취를 가라 앉혔다.

다음 날엔 블라디보스톡을 떠나기 전에 핫산에서 받은 벌금을 은행에 납부해야 했다. 총무를 맡은 친구가 우리를 대신해 몇 시간을 고생하는 동안 시내 관광을 했다. 나는 서점에서 지도와 책을 샀다. 한 줄도 읽을 수 없는 책이었지만 그림이 흥미진진했다. 칼, 창을 비롯한 세계 무기의 변천사를 다룬 책이었는데 종이의 지질은 우리 것만 못했고 편집은 마음에 들었다. 다음 행보는 레코드 가게. 세르게이 트로파노프나 라흐마니노프, 무소르그스키 같은 러시아 사람들의 음악을 좋아해서 여기서만 구할 수 있는 귀한 음반을 열 장쯤은 골라 가겠다는 포부를 안고 왔지만, 곧 어림없는 계획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음반 가게가 없었다. 근처를 한참 헤맨 후에야 가이드에게 물으니 복제 문화가 너무 많아서 원본이 발을 못 붙인단다. 러시아 사람들이 러시아 음악을 외국에 나가서 사와야 하는 실정이라고. 발품을 헛되게 판 것이 가엾었던지 가이드는 마돈나의 복제 음반 하나를 선물해 줬는데 녹음 상태가 엉망이었다. 차이코프스키나 쇼스타코비치 같은 음악가를 배출한 나라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러시아가 지난 시절의 영광을 앞으로도 가져갈 수 있을까. 남의 나라 일이지만 아쉬움이 가득하다. 집합 장소인 호텔로 돌아가면서 선물 가게들을 구경했다. 저녁을 먹고 나면 드디어 기차를 타러 갈 시간이다.

한유진은

공간 디자이너 문화기획자, 칼럼니스트로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마임이 가미된 음악공연을 연주자들과 공동 선보이는 ‘음악에세이’라는 독창적 프로그램을 기획 진행 총괄 운영해 광주에 첫선을 보였고 광주의 대표적 민간클래식음악회 상징이 된 ‘광장음악회’ 기획 공연 진행을 10년간 이끌어왔다. 오페라를 가족들이 편하게 만나볼 수 있도록 한 ‘그림자극 라 트라비아타’를 대본 공동기획했고 양림동 마을대학 강의와 포럼 진행하는 등 지역의 풀뿌리 문화 저변확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