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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진 세계스케치기행 (6) 베트남(上) 역사와 전설이 스며든 땅
입력 : 2016년 10월 26일(수) 00:00


천년의 역사를 지닌 베트남에서 맛보는 쌀국수의 맛 더욱 특별하게 느껴져
베트남의 유행을 가장 빠르게 읽을 수 있는 '항다시장' 수천가지 상품들 인기
국부 ‘호치민’ 사람들 가슴속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전설…‘정약용’의 ‘목민심서’ 평생 간직
하롱베이
오토바이가 알리는 하노이의 아침

부릉부릉~천년의 역사를 지닌 하노이의 아침은 오토바이 소음과 함께 시작된다. 세계에서 인구대비 오토바이 보유율이 가장 높은 곳이 바로 베트남이다. 시내 곳곳을 누비는 오토바이는 하노이를 활기찬 도시로 만드는 원동력이다.

출퇴근 시간을 전후에 오토바이들이 한꺼번에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모습은 단순히 혼잡함의 차원을 넘어 이방인들에게는 낯선 볼거리이자 장관처럼 느껴진다.

거리에 서서 한참동안 오토바이 굉음을 듣고 있으면 활기가 그대로 전해 오는듯하다. 하노이의 푹푹 찌는 더위를 피할 곳은 달리는 오토바이 뿐인 것만 같다. 그렇게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은 제 일을 찾아 제 삶을 찾아 어딘가로 떠난다.

하노이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구 시가지는 오토바이와 사람들 그리고 시클로가 북적거리는 곳이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건설된 신시가지와는 달리 왕조 시대부터 있었던 구 시가지는 인간미가 물씬 풍긴다. 그중 36거리는 구시가지를 대표하는 거리로 19세기 하노이에 36개 상인조직이 각각 한 거리를 맡아 정착하면서 ‘향자오(비단거리),’항 맘(젓갈거리), 등 파는 물건에 따라 이름이 붙여졌다. 하노이 사람들의 진솔한 삶을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는 역사적인 곳들이다. 처음 발을 들여 놓았을 때는 정신이 없을 수도 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곧 익숙해진다. 아마 요란스러움은 어느새 경쾌함으로 느껴지고 덩달아 신이 나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호암키엠 호수 서쪽 구시가지에 위치한 항다시장은 베트남의 유행을 가장 빠르게 읽을 수 있는 곳이다. 다양한 물건과 시끌벅적한 풍경이 우리나라의 남대문 시장과 닮았다. 의류와 악세서리, 생활 용품 등 수천가지 상품들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어 현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쏠쏠한 재미를 준다.

이 북적거림의 한 복판에서 꼭 맛봐야할 것은 바로 누구나 인정하는 베트남의 대표음식인 쌀국수, 쇼핑을 하다가 출출해지면 시장 골목의 노점에 주저앉아 소박하게 한 끼 식사를 맛볼 수 있다. 비좁은 공간에 투박한 모양새지만 맛에 있어서는 어느 레스토랑에 뒤지지 않는다. 구시가지의 모습만큼이나 다양한 갖가지 향신료는 천년의 역사를 지닌 이 거리에서 맛보는 쌀국수의 맛을 더욱 특별하게 해준다.

역사의 휴식처 호암키엠 호수

하노이 ‘노아바이’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다 보면 홍강을 만나게 된다. 물빛이 황토색이어서 붙은 이름이다. 하노이는 한자로 하내(河內),즉 물의 안쪽이란 뜻이고, 여기서 물은 바로 홍강을 가리킨다. 하노이에는 이 홍강이 범람해 만들어진 호수가 무려 300개에 달한다. 그래서 하노이는 물의 도시이자 호수의 도시라고 불린다. 이 호수들 주변을 산책하다 보면 구시가지의 번잡함과는 달리 조용하고 여유로운 하노이 사람들의 또 다른 면을 만나게 된다. 나무 아래 자전거를 세워 두고 호숫가에 앉아있는 부부나 연인들, 그리고 친구들과 놀러 나온 젊은이들과 마주친다. 그러나 이들은 여유로움을 즐기면서도 결코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언제라도 탱탱한 공처럼 튀어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듯 하다.

하노이의 수많은 호수 중 가장 사랑받는 호수가 호암키엠 호수다. 폭 200m 길이 700m의 이 호수는 시민들의 말벗이요, 고단함을 풀어주는 휴식처이기도 하다. 젊은이들은 이곳을 하노이 아베크족의 성지라고도 부른다. 호수 주변에 늘어선 가로수들을 따라 걷다가 어디든 걸터 앉아도 좋은 곳이다.

호암키엠을 더욱 평화롭게 만드는 것은 호수가 품고 있는 전설이다. 호암키엠은 ‘검을 돌려받다’란 뜻인데 처음 하노이를 수도로 정한 ‘레왕조’와 관련이 깊다.

전설에 따르면 명나라가 침략했을 때 이 호수에서 거북이가 나타나 당시 왕이었던 ‘레왕조’에게 보검을 주었고, 이 검으로 적들을 물리쳤다고 한다.

호수 가운데에 있는 거북탑은 이 전설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하노이 시민들은 이 호수가 평화를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끝없는 외세의 침략에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그들의 낙천적이고 강한 일면을 볼 수 있다.

베트남의 지도자 - 호치민

하노이 사람들은 자존심이 강해 보인다. 왜소해 보이는 체구이지만 그 작은 어깨에는 늘 당당함이 배어있다. 이런 하노이 사람들의 중심에는 강력한 지도자이자 온화한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인 국부 ‘호치민’이 있다.

호치민에 대한 사랑과 존경은 그들을 이 세상에서 더욱 당당하게 살아가도록 이끌고 있다. 세상을 떠난 지 50여년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베트남 사람들의 가슴속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전설이다.

베트남 국회와 공산당본부 맞은편 ‘바딘광장’에는 호치민의 묘가 있다. 암갈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사각형의 웅장한 건물은 독립과 통일이라는 두 가지 과업을 이뤄 낸 위대한 지도자의 무덤이다. 그가 존경받는 이유는 한결같이 검소하고 소박했던 삶에 있다. 그가 죽을 때 남은 재산이라고는 나지막한 낡은 책상 하나와 몇 권의 책뿐이었다고 한다. 그가 평생동안 간직하고 아꼈던 책은 다산 ‘정약용’선생이 지은 ‘목민심서’였다.

호치민은 베트남과 결혼했다며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베트남의 발전과 베트남 사람들의 단결을 위해 헌신했다. 이 위대한 지도자는 화장시켜 달라는 자신의 유언과는 달리 유리관 속에 생전 모습 그대로 편안하게 자는 듯 누워있다. 후계자들이 국민의 통합을 위해 호치민의 유언을 어기고 레닌과 스탈린의 예를 따라 묘소를 지은 것이다. 1975년에 세워진 이 묘소에는 아직도 참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니 그의 유언을 따르지 않은 것이 결코 그의 뜻을 거스르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자연이 빚은 조각 - 하롱베이

하노이 시에서 동쪽으로 18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하롱베이’는 세계문하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근사한 동굴과 멋진 풍경이 감동을 선사한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피어 난 비극적인 사랑이 줄거리였던 영화 ‘인도차이나’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다.

평화의 바다, 위로의 섬, 베트남의 추억과 감동을 하롱베이처럼 단번에 표현해 주는 곳도 없을 것이다. 바다 위에 떠 있는 3천여개의 섬들이 만들어 낸 찬란한 아름다움은 온 인류의 가슴속에 오랫동안 살아 숨 쉬게 될것이다.

바이짜이 마을의 빈하룡 항구에서 배를 타고 1시간쯤 들어가면 안개 속에서 커다란 섬 하나가 불현듯 나타난다. 그리고 이내 하나씩 그 모습을 드러낸다. 숨겨둔 비밀을 풀어내듯, 품었던 마음을 알리고 싶은 듯, 안개 속에 숨어있다 조용히 다가서는 섬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것만 같았다. 모양도 제각각이어서 하늘로 치솟은 것, 부채꼴 모양으로 넓게 펴진 것, 병풍처럼 바다를 에두르고 있는 것 등, 그야말로 각양각색이었다. 3천여 개의 섬이 인간이 모두 다른 얼굴을 가진 것처럼 어느 하나 똑같은 모양이 없었다. 또한 인간의 손때가 묻지 않은 무인도이다. 그 섬들이 고요한 옥빛 바다와 어우러지니 신비롭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하롱만은 본디 석회암층이 두껍게 쌓여있는 곳이었지만 비나 바닷물에 섞여 오므라들고 구멍이 뚫리면서 독특한 모습을 갖게 되었는데 이런 지형을 ‘카르스트 지형’이라 한단다. 하롱(下龍)하롱이란 중국식 표현이며 용의 강림을 의미, 즉 하늘에서 용이 내려 왔다란 뜻이다. ‘하롱’이란 지명은 바다 건너에서 쳐들어온 침략자를 막기 위해 하늘에서 용이 이곳으로 내려와 입에서 보석과 구슬을 내뿜자 그 보석과 구슬들이 바다로 떨어지면서 다양한 모양의 바위가 되어 침락자를 물리쳤다고 하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베트남을 수호하는 용의 비늘이 떨어져 생겼다는 하롱베이의 전설은 풍광을 보는 순간 고개가 끄덕여 진다. 용의 비늘 사이로 붉은 목선이라도 지나가면 그 자체로 한 점의 수묵화가 된다. 억겁의 시간을 거쳐 이 하롱베이는 만들어졌으리라, 세계 7대 자연유산이라는 찬사는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이 아름다움에 보답하기에 부족한 듯하다.

한 획 한 획 자국을 남기며 하롱베이를 떠가는 배는 동굴이 있는 숭솟(SUNG SOT)에 잠시 정박한다. 배에서 내려 50m정도 걸어 올라가면 하롱베이 섬이 지닌 또 다른 광경에 사로잡히게 된다. 마치 성대한 궁전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종류석 동굴과 마주하는 것이다. 베트남 말로 송솟은 ‘놀랍다’라는 뜻. 하롱베이 곳곳에 숨겨진 놀라운 광경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배는 다시 띠돕(TITOP)섬에 정박한다. 러시아 우주 과학자 띠돕이 하롱베이를 방문했을 때 호치민은 그에게 전망이 좋은 섬을 고르라고 하였고, 그가 선택한 섬에 그의 이름을 붙여 주었다. 계단을 올라 정상에 서면 하롱베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한 눈에 들어찬다. 이름 없는 섬들도 많으니 좋은 섬하나 골라 자신의 이름을 붙여보는 호기도 누려보면 어떨까.

배가 마지막으로 멈춘곳은 깟바(CAT BA)섬. 해가 진다. 고요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배를 타고 나갔던 어부들은 모두 수상가옥으로 들어가고 우리들은 모두 섬에서 밤을 맞이한다. 깟바섬의 해변에 누워 고운 모래알들에 파묻혀 그 모래알만큼 많은 별들을 올려다 본다. 연인들의 웃음소리가 간간히 들린다. 별들마저도 고요하다.박영진 서양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