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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를 거쳐 유럽까지 열차 타고 고려인의 이주 발자취 느껴보고 싶어
입력 : 2016년 11월 09일(수) 00:00


한유진의 문화기행 9)러시아
엉덩이가 강조된 상품으로 여성이 묘사된 거리의 그래피티.
깜깜한 하늘 향해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 적막이 감돌아

최초의 한인 여성 볼세비키 '알렉산드라 김'이 생각나는 '하바롭스크'

사회주의 흔적과 자본주의 물결이 절묘하게 뒤섞인 러시아

러시아 횡단열차에서

한밤중에 바다에 떠 있는 작은 돛배처럼 깜깜한 하늘을 향해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달렸다. 허허로운 적막. “뭘 봐?” “글쎄. 정말 뭐든지 삼켜버릴 어둠 같아서” 술이 거나해진 우리 팀원 두 세명이 객차와 객차가 연결된 공간으로 나오더니 창문에 코를 박고 있는 내 등 뒤로 차곡차곡 섰다. 뭐라도 보이는 양 작은 창문에 매달려 있던 친구 하나가 한참 만에 떨어져 나오며 말했다. “아무 것도 안보여. 도대체 뭘 보고 있는 거지?” 우리들은 무엇을 보려했던 걸까? 한참만에야 저 멀리로 헤드라이트를 켠 자동차 몇 대가 지나갈 뿐인 풍경을.

사람 키 높이의 2층 침대로 올라가 누우니 생각 외로 편했다. 돌아눕기가 힘들만큼 좁기는 했지만 양어깨를 반듯하게 펴고 누우면 열차의 규칙적인 패턴에 맞춰 몸이 흔들렸다. 요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잠이 들 때까지 엄마가 흔들어주던 커다란 요람. 흔들리면서, 흔들리니까. 몸의 반동을 따라 마음도 흔들거린다. 러시아에서의 일상들, 고려인들, 열흘 전 한국에 두고 왔던 생각들까지, 묻어 두었던 이런 저런 상념들이 표면으로 떠오른다. 울고 웃고 껴안고 아쉽게 손을 흔들었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또 나에게, 무슨 의미가 되어줄까. 갑작스런 설움이 밀려 왔다. 옆 칸과 아래 칸에는 일행들이 누워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내 몸 사이즈의 침대에 실려 이미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었다. 새벽녘에야 까묵잠이 들었다.

하바롭스크 인상

열차를 내린 것은 아침 8시 10분. 하바롭스크 추위에 워낙 겁먹었던 탓인지 생각보다 상쾌하게 느껴지는 날씨였다. 도착 시간을 착각해서 허겁지겁 내렸더니 풍채가 좋은 백발의 신사가 우리를 맞이했다. 호텔에 잠깐 들러 짐을 풀고 우리는 곧장 하바롭스크 시내를 둘러 봤다. 조용하고 단정한 도시였다. 왼쪽으로는 우수르강, 오른쪽으로는 아무르강이 흘러와 합류하는 지점에 섰다. 아무르 너머는 중국 땅이다. 역사의 소용돌이를 거쳐 온 강 위를 쾌속정 하나가 빠르게 물살을 가르며 지나갔다.

아무르 강 위에 서서 “아무르강에 몸을 던지며” 라는 글로 뜨거운 심경을 표현했던 김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를 생각한다. 알렉산드라 김은 최초의 한인 여성 볼세비키였다. 당시 러시아 내전에서 백위파를 지원했던 일본과 맞서기 위해 한인 빨치산들은 적위파에 몸담았었다. 러시아어, 중국어, 불어, 영어에 능통한 여성 지도자였던 알렉산드라는 열정적인 활동을 펼치다가 전세가 기울었을 때 아무르강 배 위에서 백위파에게 잡히고 만다. 온갖 회유와 고문 속에서도 꿋꿋했던 그녀는 “나는 공산당원이다. 공산당원은 원수의 면전에서 얼굴을 숙이지 않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소비에트정권 만세! 볼세비키 만세! 자유조선 만세! 세계혁명 만세!”라고 외치며 총살당하여 아무르 강물로 떨어졌다. 바깥 벽에 김 알렉산드라의 얼굴 부조가 붙어 있는 한인사회당 창당 현장이었던 건물을 둘러보고 다나모 경기장으로 향했다.

양쪽 벽면에 그래피티가 그려진 통로를 만났는데 엉덩이가 강조된 상품으로서의 여성이 묘사되어 있었다. 사회주의의 티를 벗은 건가, 결국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인 건가? 몇몇이 우스꽝스러운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경기장의 다리 난간에는 무거운 자물통이 빽빽이 매달려 있었는데, 영원한 사랑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로망인 모양이다. 존재하지 않는 줄을 알기에 더 간절히 희구하는 걸까? 러시아의 곳곳은 지난 역사와 현재가, 사회주의의 흔적과 자본주의의 물결이, 절묘하게 뒤섞여 있는 모양새다.

88여단의 복무자들이 살던 마을, 위하스고예

다음 날은 커다란 버스를 타고 위하스고예 마을을 찾아갔다. 울퉁불퉁한 러시아의 악명 높은 도로를 제대로 체험한 셈이었는데, 길이 튈 때마다 뒷좌석에 앉았던 우리들은 천정에 머리가 닿을 만큼 튀어 올랐다. 아무르강 가에 있는 위하스고예 마을에는 오후 해가 뉘엿할 무렵에서야 도착했다. 우리는 소련군(극동군) 88여단 복무자들이 살았던 마을과 묘소들을 둘러보았다.

88여단은 김일성 주석이 속해 있었던 ‘혁명 11세대’의 모태로 역사적인 여단이지만, 출발지점에서 “88”이라는 숫자는 그저 건물의 번지수였다고 한다. 일본군이 만주에서 항일 세력을 대대적으로 토벌하자 조선인과 중국인들은 연해주로 도피했다. 소련은 일본군과의 충돌에 대비하면서도 외교적 마찰을 피하기 위해 이들을 자국군에 수용했는데, 주둔지 이름을 따서 “88연대”로 이름 붙였다. 동북항일군이 소련의 88여단으로 수용되면서 독립군으로서의 독자성은 사라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깊고 깊은 숲으로 들어온 사람들, 토벌대를 피해 들어온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갑작스레 소련 군복에 소련 계급장을 달게 되었을 때 싸울 의지를 잃었던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몇 명이나 죽었는지, 어떤 스토리를 가졌는지는, 어디에도 제대로 기록이 되어있지 않다고 했다. 자작나무 숲만이 모든 것을 보았고 알고 있을 것이다. 또는 러시아의 고문서 어디쯤에 기록되어 있던지. 전쟁과는 아무 상관없을 것 같은 자작나무 숲 속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곰” 토템의 흔적, 나나이족 마을

위하스고예를 다녀오면서 이곳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스카치알랸의 나나이족 마을을 방문했다. 이 마을은 참 흥미로웠다. 마을 앞 강가에는 소용돌이 모양을 가진 암각 바위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었는데 구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 느낌이었다. 예전의 단골네 집 앞처럼 나무에 빨간 끈, 하얀 끈을 매어놓은 것이 군데군데 보였고 마을 안에 위치한 박물관의 민속 전시품들은 왠지 눈에 익숙했다. 조바위, 남바위와 닮은 모자 형식이나 고구려의 삼족오를 연상시키는 문양이나 비슷한 복식 등이 그랬다. 전시품 중에 특히 나무젓가락 끝에 섬세한 곰 장식이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곰’ 토템의 흔적일 것이었다. 곰이 사람이 된 우리나라의 환웅 신화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거리상으로는 한국과 꽤 멀어져 있었지만 몽골족, 우랄알타이어권의 같은 문화를 이루고 살았던 흔적을 보면서 몹시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오래 전에 사라져버린 내 자신의 흔적을 엉뚱한 곳에서 발견한 느낌이랄까.

언젠가는 하바롭스크에 다시 와서 여행을 이어갔으면

돌아오는 길에는 돼지고기 샤슬릭을 먹었다. 우리에게 먹는 법을 가르쳐주신 하바롭스크 한인회장 김영준 선생님은 인상 깊은 분이었다. 연세가 있으심에도 늘 먼저 와서 기다려 주셨고 그분의 설명 속에서는 고려인들의 애환이 서린 역사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한 흔적이 느껴졌다. 나나이 마을에 갔을 때에도 곰 젓가락을 보여 주시며 다른 이들의 문화와 역사에도 조예와 애착을 표현했다. 언젠가 러시아를 다시 여행하게 된다면 하바롭스크에서 시작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던 것 같다. 다시 와서 여행을 이어갔으면.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까지 열차를 타고 가면서, 고려인의 이주 발자취를 더 깊이 느껴보고 중간 중간 의미 있는 도시에 내려 과거와 현재를 이어 봐도 좋을 것이다. 여행을 이틀 남겨 놓은 밤, 우리는 보드카에 얼큰하게 취해갔다. 러시아에서는 첫술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마시고 두 번째 술은 배를 타고 떠난 자들을 위해 마시고 세 번째 잔은 이 자리에 없는 이들을 위해 마신다던가.

한유진은

공간 디자이너 문화기획자, 칼럼니스트로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마임이 가미된 음악공연을 연주자들과 공동 선보이는 ‘음악에세이’라는 독창적 프로그램을 기획 진행 총괄 운영해 광주에 첫선을 보였고 광주의 대표적 민간클래식음악회 상징이 된 ‘광장음악회’ 기획 공연 진행을 10년간 이끌어왔다. 오페라를 가족들이 편하게 만나볼 수 있도록 한 ‘그림자극 라 트라비아타’를 대본 공동기획했고 양림동 마을대학 강의와 포럼 진행하는 등 지역의 풀뿌리 문화 저변확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