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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진의 문화기행
입력 : 2016년 12월 21일(수) 00:00


러시아 이주 고려인 지난 세기의 아픔을 녹여내고 새로운 파트너로 만나길
거리의 악사
뼈 아픈 시베리아 바람을 맡으며 유랑민족으로 억울한 삶을 살았던 고려인들

한국으로 수학여행 오는 러시아 학생 늘어 한국에서 유럽까지 가는 횡단열차 기다려져

고려인들 한국 정착을 위해 국가 차원 사업도 정비되고 민간 관심도 확대되야

하바롭스크의 아침 시장

아직 깜깜한 듯한데 같은 방을 쓰는 박 선생님이 일찍부터 일어나 부스럭거리고 있다.

눈을 부비며 일어나보니 호텔방에 물감이며 화구가 널브러져 있다. 좀 미안했던지 '돌아가면 하기도 싫고 느낌도 잃어버려서' 라는 짧은 변명을 했다.

베란다로 나섰더니 붉은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회색빛이던 도시가 노르스름해지는 시간. 숨을 깊게 들이키니 하바롭스크의 차가운 공기가 코를 매콤하게 찔러왔다. 오래된 건축과 현대 건축이 조화로운 하바롭스크 풍경.

아침 일찍 우리가 간 곳은 큰 시장이었다. 색색의 야채와 과일들이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러시아 도시인들의 바쁜 일상이 펼쳐지는 곳. 시장 광장에서는 높은 펌 머리에 스카프를 쓴 여인이 아는 분을 만났는지 한참 수다를 떨고 있고, 마트 유니폼을 입은 금발의 여인은 두툼한 외투를 걸친 사람들 사이로 반팔에 슬리퍼 차림으로 뛰어간다. 골목 한편에는 장기나 체스처럼 보이는 놀이판 앞에서 아침부터 두 남자가 몰입해 있다. 내가 구경꾼으로 어슬렁거리니까 모자를 파는 중년의 남자가 센스 있게도 "안녕하세요!"를 외치며 호객 행위를 한다.

나는 "디 드라스부이쩨"라고 답하며 생긋 웃어줬다. 가게 주인은 어느새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와서 내민다. 지난번에 먹고 반했던 연유맛이 뜸뿍 든 아이스크림이었다. 처음 본 아저씨와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으며 모자를 구경하다가 두툼한 베레모 하나를 샀다. 결국 낚인 셈이다. 한국에서 이 모자를 쓸 일이 있을까? 두께가 시베리아 눈밭에서 굴러도 멀쩡할 것 같다. 마지막 날의 아쉬움 때문이었는지 일행 한 분이 옆 가게에서 털실로 짠 스카프 하나를 송별 선물로 사줬다.

그들에게 우린 무엇이었을까?

점심은 하바롭스크 고려인회 분들과 자리를 가졌다. 간단노래를 부르고 대금의 아리랑 가락에 춤을 추고. 짧은 시간의 만남을 끝내고 나오는데 한분이 눈시울이 붉히더니 이내 눈물을 흘렸다. 다른 분들도 따라 우셨다. 연세가 지긋한 분들. 강제 이주 열차를 탔거나 그 이후 태어난 분들이다. 뼈 아픈 시베리아 바람을 맡으며 성장한 분들이었다. 스탈린에, 소련 해체 이후에는 자민족 중심주의에 배척되어 유랑민족으로 억울한 삶을 살았던 분들. 우린 이분들에게 무엇일까? 무엇이기에 오늘 처음 만난 우리를 보며 이렇게 반갑고 서럽게 우시는 걸까? 이들과 우리를 잇는 끈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나는 착잡하고 무겁고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이곳을 떠나면 다시 이분들의 삶을 돌아보기는 할는지? 짧게 건네는 위로조차도 위선으로 느껴진다. 내 삶 속에 빠져 다시는 이곳에 오지도 않을 거면서. 다시 잊어버릴 거면서.

한국으로 수학여행 오는 러시아 아이들

현재로 돌아왔다. 한국행 비행기. 왠 금발의 아이들이 이렇게 많을까요? 했더니 한국으로 수학여행을 가는 길이란다. 러시아와 한국이 얼마나 가까운 거리인지 비로소 실감했다. 돌아와서 기사를 찾아보니 광주·전남에도 다녀간 기사가 있었다. 곡성 기차마을에서 증기기관차와 레일바이크를 타는 체험을 했다는. 언젠가는 러시아를 통해 육로로 세계로 나갈 수 있는 있는 날이 올까? 횡단 열차가 한국까지 이어진다면. 기차를 타고 광주에서 출발해 북한을 거쳐 유럽까지 가는 날이 온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하바롭스크에서 이어가기로 마음먹은 여행을 광주에서 당장 시작해 봐도 좋을 것이다.

중앙아시아 진출의 새로운 파트너, 고려인들

높은 학구열 덕분으로 고려인은 식자층이 많다고 알려져 있고 정계에 진출한 고려인 기사가 한국 뉴스에 뜨기도 했었다. 성공한 소수민족이라는 것이다. 주류사회에 끼어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 싶기도 했고 기사에 나오는 엘리트층 말고 저변의 삶은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다. 층위가 나뉘면서 괴리가 커지고 있지는 않을까?

러시아인들과의 마찰은? 시골에 사는 고려인들은 아직도 설을 지내고 추석을 지내고 보름 놀이도 하면서 풍습을 이어간다는데, 도시인들의 삶은 우리가 그렇듯이 빠르게 변해 가고 있을 터였다. 고려인 사회도 다양한 층위가 형성되어 있을 것이다. 10박 11일의 여행으로 그런 속사정까지 알 수는 없었지만, 다시 간다면 더 깊은 면모를 볼 수 있으리라.

현재 고려인 사회와 한국 사회는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고 앞으로는 더 그럴 것이다. 한국에 취업하거나 귀환 이주를 하려는 분들이 늘고 있는 추세이다. 고려인들은 대다수 농업인이고 직업의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해서 새로운 모색으로 한국 진출을 꿈꾸기도 한다. 한국 기업이 중앙아시아에 진출했을 때에는 고려인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었다. 한국 기업들은 그들의 말을 하고 그들의 문화와 사정을 깊숙이까지 알고 있는 고려인들의 중간 역할로 비즈니스를 할 수 있었다. 여행 이후, 우리 가이드였던 분도 러시아의 광물과 농수산물을 직거래하기 위해 일 년에 한 두 번씩 한국에 들어온다. 그러나 고려인들 사업가들이 아직은 영세하고 이곳 물정을 몰라서 문제가 벌어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러시아를 여행하면서 한국어 공부에 열정적인 고려인들을 많이 만났다. 잊어버린 한국어를 떠듬떠듬 다시 읽고 쓴다. 언어가 느는 만큼 관심의 깊이도 늘어난다.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 뉴스를 듣는다. 한국에 여행 올 꿈을 안고 저축을 하기도 한다. 그에 비하면 우리의 관심 수준은 무관심에 가깝다. 이곳 광주에도 고려인 단체가 있고 인원이 늘고 있는 추세이지만 아직 정착을 위한 지원이 원활하지 않다. 국가 차원의 사업도 정비되고 민간의 관심도 확대되어서 함께, 지난 세기의 아픔을 녹여내고 새로운 파트너로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한유진은

공간 디자이너 문화기획자, 칼럼니스트로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마임이 가미된 음악공연을 연주자들과 공동 선보이는 ‘음악에세이’라는 독창적 프로그램을 기획 진행 총괄 운영해 광주에 첫선을 보였고 광주의 대표적 민간클래식음악회 상징이 된 ‘광장음악회’ 기획 공연 진행을 10년간 이끌어왔다. 오페라를 가족들이 편하게 만나볼 수 있도록 한 ‘그림자극 라 트라비아타’를 대본 공동기획했고 양림동 마을대학 강의와 포럼 진행하는 등 지역의 풀뿌리 문화 저변확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