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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벡의 힘을 확인하고 싶거든 땅에서 솟아나는 풍부한 지하 자원을 보라'
입력 : 2017년 01월 18일(수) 00:00


박영진의 세계스케치기행
8)우즈베키스탄 공화국(上)-동방의 에덴
사마르칸트 실크로드
서울의 절반정도 크기 우즈벡, 사마르칸트, 부하라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 지정

산과 강, 계곡이 있는 페르가나 분지, '흙속의 진주'로 불리며 한국적 분위기 보여줘

우즈벡 역사 '티무르'로 부터 시작…예술의 보호자와 살생 즐기는 폭군으로 부조화



세상에서 일본처럼 가깝고도 먼 나라가 있는가 하면, 멀고도 가까운 나라 바로 우즈베키스탄이 아닌가 한다.

대한민국이 900번 정도 외세의 침략을 받았다고 하는데 우즈벡 역시 지형적으로 여러 나라와 국경을 접하다 보니 외세의 침략과 지배로 역경과 고난의 역사를 자랑한다.

세계에서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인 우즈벡은 72년간 러시아의 지배를 받아오다 1991년 독립했다. 이슬람 문화+유럽식 문화+러시아 문화가 융화된 나라이며. 130여 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이다,

이슬람 이라지만 여자들은 머리에 ‘히잡’이라 부르는 스카프도 없고, 씩씩하고 당당한 모습에 전혀 이슬람 답지 않다. 소득은 한국의 10/1수준이지만 문화,인종,언어가 다 달라도 매우 친절하고 입가에 웃음을 달고 재미있게 산다.

고려인들이 15만 6천명정도가 사는데, 1937년 스탈린 정권 때 구소련에서 강제 이주되어 정착한 사람들이다.

인천에서 7시간 반 정도 날라서 아시아 대륙의 심장부인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쉬켄트에 도착했다. ‘스탄’이란 이란어로 ‘땅’을 의미한다. 보통 ‘스탄’형제들 하면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타지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 키르키스탄, 다섯국가를 말한다.

타쉬켄트는 서울의 절반정도 크기로 70%가 황무지와 산지이고 특히 중심부는 사막으로 이루어졌다.

기후는 열대 공기의 영향으로 매우 뜨겁고 건조하며, 비가 미처 땅에 닿기전에 말라버리는 마른 비가 내려서 여행 적기는 3월-6월, 9월-11월이 좋다.

옛날 티무르 왕이 ‘만약 너희가 우리의 힘을 확인하고 싶거든 우리의 건축물을 보라 ’라고 악사라이 여름궁전의 문지방에 새겨 뒀는데, 지금은 ‘우리의 힘을 확인하고 싶거든 우리 땅에서 솟아나는 자원을 보라’ 라고 할 정도로 지하자원이 풍부하다. 목화생산은 세계 2위이며, 석유는 자급자족하고 있다

사마르칸트, 부하라, 히바는 도시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다.

텐산에서 발원하여 동에서 북으로 흘러 아랄해로 접어드는 ‘사르다리아’강을 중앙아시아의 ‘어머니의 강’이라 부른다. 남부를 흐르는 ‘아무다리아’강은 우즈벡 영토를 가로질러 아랄해로 흘러드는데 대부분 도시들이 이 두 강을 끼고 형성된 오아시스 도시들로써 강주변은 인구 밀도가 높다.

아랄해는 한 때 세계에서 4번째로 큰 대륙호로 담수어장과 가축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지만, 1960년대 소련정부가 목화생산 향상을 목적으로 무분별하게 관개수로를 개발하고 강물의 아랄해 유입을 막은 탓에 아랄해의 수량이 급격히 줄어 오염, 생태계 파괴, 기후의 변화, 질병 발생 등 환경문제를 일으켜 현재 지구상에 환경파괴의 재앙을 단 50년 만에 확실히 보여주는 곳이 되었다.

동부지역 페르가나 분지는 산과 강, 계곡이 있어 ‘흙속의 진주, ’장미의 골짜기라 불리며 한국적 분위기를 보여준다. 옛 사마천의 기록에 의하면 ‘대완’이라 부르는 나라가 있었다고 전한다.

우주벡 돈은 ‘숨’이라 부른다. 1불에 4600숨, 타쉬켄트에서 25불을 바꿨는데, 난생 처음 지갑이 닫혀지지 않을 정도롤 두둑, 손에 쥐는 느낌이 빵빵해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여긴 사회주의 국가라 전통시장에선 달러사용이 금지라 우즈벡 돈만 사용해야 한단다. 호텔과 식당은 화장실이 무료지만 다른 곳에선 꼭 600숨이나 1000숨을 내야만 볼일을 치를 수 있다.

이슬람 문화권에선 화장지를 잘 사용하지 않으므로 화장지는 주머니에 돈처럼 필수로 넣고 다녀야 한다. 타쉬켄트는 사막에 세운 도시답지 않게 으리으리한 고층빌딩에 아름드리 고목들이 도시를 빛내고 있었다. 거리를 누비는 대우 자동차, 초르수 시장앞의 전광판엔 삼성, 아모레 화장품 펩시콜라,광고가 눈낄을 끈다.

우스타킬릭 광장앞 분수대는 1991개의 물줄기에서 뿜어져 나온 분수로 인해 35도의 기온을 단번에 식혀준다.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유명하단다. 우즈벡 100숨짜리 지폐에 나오는 부노드코르 광장은 1966년 대지진때 지진 복구에 참여한 소련인들을 기리기 위한 우정의 기념물이다.

초르수 바자르 시장은 우즈벡어로 네 개의 길이 만나는 ‘교차로’ 라는 뜻으로 타쉬켄트의 대표적 시장으로 실크로드 시대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 한국인들은 철수 시장이라 부름) 식료품,카페트,일상 생활 용품, 김치등, 없는것 빼고 다 있는 한국의 동대문 시장쯤 된다.

브로드웨이 거리는 뉴욕의 중심부가 아니고, 타쉬켄트의 번화가로 서울의 명동거리와 비슷하다, 골동품, 예술품, 특히 그림, 액세서리 같은 물건을 파는 노점가인데, 소련시절 엔틱 자동차들까지 여전히 잘 굴러 다닌다. 젊은이들한테 가장 인기있는 거리로 대로 옆엔 공원이 있고, 고층빌딩과 명품거리가 있어 여기가 수도임을 증명해 준다.

이슬람은 지금으로부터 1100년전 무하마드라는 상인에 의해 이슬람이란 제국이 성립되었다고 한다. 바그다드에 수도를 정하고 번창해 ‘지혜의 도시’ 로 불리며 세계인의 도시로 성장하였다. 중앙집권제로 입법, 사법, 행정, 국방 분야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수표를 제일 먼저 사용한 나라로 언제든지 다른 도시에 가서 현금화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매매시엔 중개인을 세워 적당한 가격을 제시해 사고 파는 천년전의 직업이었다.

우리가 어렸을때 읽었던 아라비안 나이트 에 등장하는 ‘알라딘과 요술램프’의 주인공 알라딘은 중국인, ‘신밧드의 모험’의 신밧드는 인도인. 당나라 양귀비와 현종에 등장하는 안록산 장군은 우즈벡 공화국 부하라인이요, 당나라 장군인 고선지장군(나당연합군에 고구려 패함,고구려 유민)은 여기 사마르칸트를 함락하고 당6국을 세워 현종께 바친다.

사마르칸트-타쉬켄트에서 사마르칸트까진 300㎞, 열차는 우리를 2시간 10분만에 레기스탄 광장옆 아시안 호텔에 데려다 주었다. 예전에 사마르칸트는 ‘번영과 영광의 길, 바로 실크로드의 중심지로 이슬람 침략전 ‘고대 동방의 에덴’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광장은 최근에 단장한 듯 보도 블럭이며. 집들의 담벼락, 가로수들이 잘 정돈된 모습이었다. 모스크의 청색 타일과 도시민들의 핑크색 지붕은 참 잘 어울렸다.

최고의 관광명소는 ‘천일 야화’의 세계로 이끄는 레기스탄(모래땅) 광장에서 비비하눔 모스크까지, 이 곳에서 색깔중에 으뜸은 파란색, 터키옥색, 물망초색, 하늘색, 군청색, 에머랄드색, 보랏빛을 띤 푸른색, 나의 기억속에 있는 파란색은 여기 다 모여 있다. 이슬람에 정복 당하면서 궁전이나 대상들의 숙소를 갖춘 커다란 도시로 발전하게 되었단다. 751년 중앙아시아 최초로 종이를 만드는 공장이 들어서고, 이슬람 세계에서 제일 먼저 제지업이 발달한 첫 중심지 이기도 하다. 이슬람 최대의 대학 등 경제 문화의 중심지, 세계최초의 천문관측소 관측기구, 백과사전, 의학사전등은 사마르칸트의 문화유산이다. 14세기 징기스칸 부장의 손자였던 아무르 티무르는 사마르칸트를 제국의 수도로 정하고 번창시켰다.

징기스칸보다 더 넓은 지역을 정복했다는 티무르, 우즈벡 역사는 티무르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예술의 보호자이며 살생을 즐기는 폭군이었다고 한다. 자기가 살육한 주민들의 해골을 두 쪽으로 쪼개어 피라미드처럼 쌓기를 즐겼다니..., 예술과 살생, 참 아이러니 하다.

사마르칸트 아이들은 3개 국어를 사용한다. 집에서는 타직어로, 거리에선 러시아어로, 그리고 학교에선 우즈벡어를 사용한다. 2004년부터 모든 공식서류를 100% 우즈벡어로 발행토록 규정하였다. 의료 보험이 없어서 거리를 걷다보면 200m마다 약국이 보인다.

아프로시압 역사박물관

언덕아래 자리잡은 조그맣고 하얀 건물이 역사박물관이다. 전시물중 최대의 볼거리는 7세기 왕의 별궁에서 발견된 사절도이다. 7세기 바흐만왕의 즉위식때 이 곳을 방문한 외국사절단을 그린 벽화이다. 특히 벽화에는 조우관을 쓴 삼국시대 고구려 사신들의 모습이 있어 눈낄을 끈다. 7세기 당나라의 침입으로 절박한 상황에 놓인 고구려가 내륙 아시아 국가들의 동맹을 추구하여 협공을 위해 고심했던 외교 노력을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이다. 정문에서 오른쪽 하단에 깃털을 모자에 꽂고, 두 손을 모으고, 허리에는 둥근고리 큰 칼을 차고 늠름하게 서 있었다.

비비하눔 모스크

'비비하눔'은 큰 마누라라는 뜻이다. 중앙시장을 가로질러 모스크 앞에 도착하면 초대형 정문이 위엄있는 모습으로 우뚝 서 있다. 크기가 축구장 넓이 정도로 사마르칸트 내에 있는 건축물로는 중앙 아시아에서 최대 규모란다.

8명의 부인 중 가장 사랑한 첫째 부인의 이름을 따와 지은 모스크로 방 212개, 제국 각지에서 모인 기술자 200명, 500명 이상의 노동자, 95마리의 코끼리가 사용되었다고 전한다. 자신이 매일 현장 지도를 할 만큼 애착을 갖다가 인도원정으로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젊은 미남 건축사가 왕비의 미모에 반해 모스크를 짓는 고통을 빙자로 딱 한번의 키스를 허락해 달라고 떼를 썼다. 왕비는 비비하눔 모스크의 조기완공을 조건으로 빰에 키스를 허락하나, 그곳엔 지워지지 않는 빨간 멍자국이 생기고 말았다. 인도를 정복하고 돌아온 티무르는 그간의 일들을 듣고 진노했고, 건축사와 왕비를 미나레트에서 떨어뜨려 죽이고‘ 그 뒤 여자들의 얼굴은 남자의 마음을 흐리게 한다하여 ‘히잡’을 쓰게 명하였다고 전한다.

사이진다

14-15세기에 완성된 '사이진다'는 무덤 유적지로 종교지도자, 순교자, 왕족들이 잠들어 있다. 페르시아의 아제르 바이잔에서 온 최고의 건축가들에 의해 지어졌고 티무르의 가족들과 마호메트의 사촌인 쿠산이븐 압바스(저명한 코란 해설가)가 묻혀 있다.

언덕 위에 자리잡은 사이진다는 많은 계단을 오르며 살펴 보아야 한다. 높은 청색 타일의 건축물들이 만들어 낸 그늘로 시원하고 주위 풍경들과 도시가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을 만깍 할 수 있다.

후스니아 아줌마

사마르칸트 첫날 레기스탄 광장에서 만난 후스니아는 한국에서 7년간 일한 경험으로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 오며,우리를 저녁식사에 초대해 주었다. 이슬람 전통엔 점심이 아닌 저녁초대에 남자를 초대하는 건 흉잡히는 거라해서 여자인 내가 함께하게 되었다. 이슬람 전통가옥 구조는 대문을 들어서면 정사각형 마당이 나오고 한가운데는 올리브 나무가 서 있고 빙둘러 방이 있는데 보통 2층으로 되어 있다. 방문은 모두 커텐으로 가려져 있었다. 넓고 깔끔하게 청소되어 있어 눈이 환해 졌고 잘 살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대문옆 오른쪽 평상에 카페트를 깔고 상없이 상보를 깔아 음식을 차렸다. 에피타이저로 견과류에 차가 나오고 메인요리로 볶은밥, 그리고 디저트가 나온다.

음식은 며느리가 가져왔다, 손녀인 5살 사브리나는 생면부지인데도 옆에서 재롱을 떨며 우리 일행인 남샘 무릎에 앉곤했다. 남편은 5년전에 사별했고, 큰아들은 미국에, 외손자는 한국의 수원대에 있다고 한다. 한국의 수원 과자공장에서 월급 50만원을 받으며 7년을 일해 최소한의 생활비만 남기고 고국에 보내 이집을 완전 리모델링 했다고 한다, 공장생활은 어눌한 한국말에 지리도 몰라서 아침부터 밤까지 일만 했다고 하였다. 이슬람 여자하면 히잡쓰고, 외간 남자는 쳐다보지도 않은 줄 알았는데 이런 당찬 용감함에 놀라웠다. 나이도 현 65세인데, 그 와중에도 월급 800을 떼었고, 그래도 한국을 그리워 하며 우리를 초대해서 이런 친절을 베풀다니 우즈벡 인들의 인간성을 알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부하라로 떠나기 앞서 다시 레게스탄 광장 앞에서 스케치하고 있는데, 후스니아가 선물을 들고 찾아왔다. 큰손자가 장사를 하는데, 손에는 실크스카프와 더운데 가면서 나눠 먹으라고 큰 패트병에 든 이슬람 요구르트를 가져왔다. 한국에 오라며 작별 인사를 건네며 포옹을 하는데 가슴에 뜨거운 뭉쿨함이 솟구쳤다. 그 따스함을 뒤로 하고 부하라로 향했다.박영진 서양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