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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위에서 내려다 본 도시, 색색의 점들을 찍어 놓은 듯 너무 예뻐"
박영진의 세계스케치 기행
1)시간의 모래위에 남긴 발자국-북인도여행
입력시간 : 2017. 05.10. 00:00


라자스탄여인
사막과 정글의 땅 북인도 지역 화려한 예술과 생동감 넘치는 문화 현장

역사와 전통 오래된 도시 '바라나시' 보지 않고서는 인도 본 것이 아니다

아들을 앉히고, 칼을 높이 치켜든 인도 잔다르크 여인 동상 신처럼 추앙받아

인도 여행이 처음이신 분들께는 라자스탄 주를 권하고 싶다. 인도다운 인도를 만나고 싶다면 라자스탄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기억들과 가방에 넘쳐나도록 기념품을 구입하는 등 행복이 충만함을 얻을 것이다

아시아 대륙의 심장 같은 북인도 지역은 사막과 정글의 땅이다, 낙타행렬, 호랑이, 반짝이는 보석, 화려한 예술과 생동감 넘치는 문화의 현장이고 예술가들의 팔레트를 가득 채울 만큼 모든 여행자들에게 신비로움과 구경거리를 제공한다.

전사민족이라 까칠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붉은색 카이젤 수염, 새하얀 셔츠, 앞이 뾰족한 가죽구두, 유독 다른 지역에 비해 친절하고 정이 넘치는 곳이라는 걸 실감한다.

예전에 이곳은 인도,이집트, 아라비아, 페르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잇는 길목에 위치하여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 또한 종교자들의 숱한 사연, 당시를 떠 올리게 하는 폐허, 과거의 영광을 재현한 아름다운 자태로 노을이 질 무렵이면 건물들이 마치 영원의 빛을 내뿜는 듯하다. 유구한 역사 속에서 숱한 왕조가 명멸해 갔지만 이들은 격정의 역사를 자랑스러워 한다.

현재는 릭샤왈라(자전거 인력거꾼)가 휴대폰을 가지고 장사하며, 총인구 13억명중 이동통신 사용자가 10억을 넘고, 3억이 휴대폰을 가진 나라, 29개주에 7개의 직활시, 지하철 도시가 11개, 혼잡으로 고동치고 가난에 찌들어 보이지만 과거의 유물은 그들에게 자부심을 불어 넣는다. 이 드넓은 인도에서 가장 넓은 주가 라자스탄주이며 우리 대한민국의 3배에 달한다.

머리위의 터번, 펄럭이는 붉은색, 노란색, 사프란색 사리, 화려한 라자스탄 전통치마, 머리에 쓰는 스카프등등, 라자스탄에서 제일먼저 눈에 띄는 게 색이다.

색은 사막과 대비되 더욱 강렬하게 빛난다.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색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사회적 제약에 묶인 그들 나름의 언어이기도 하다. 터번은 처음엔 사악한 기운으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썼으며 전쟁시엔 갑옷의 역할, 옛 시절엔 가치가 있어 대금업자로부터 담보로 돈을 빌릴 수도 있었다고 한다. 최대 길이가 18m이며 오늘날은 베개, 냅킨, 안전모등의 역할을 대신한다.

터번의 색은 카스트, 종교, 그리고 특정상황을 나타낸다. 라지프트족은 전통적으로 기사도를 의미하는 붉은색, 브라흐만은 분홍색, Dali(시체담당 계급)갈색, 유목민은 검은색, 다양한 색상의 터번은 축제용이다,

미혼여성 그리고 신부들은 밝은 분홍+빨강+노랑을 곁들여 입는다. 빨강과 노랑이 섞인 것은 아들을 낳은 여인만 착용한다. 마치 지금 파티에 가려는 듯이 보이는 화려한 색상의 사리를 입고 육체노동을 우아하게 해낸다. 칠흙 같은 검은 머리를 셋으로 묶고 그 곳에 생화를 꽂는다. 그런 여성들의 모습은 여유롭고 아름답게 보인다. 결혼한 힌두교도 여인들은 팔찌, 발까락링, 머리 부분에 약간의 주홍을 사용, 조심스럽게 남성들의 접근을 막는다.

사르나트(녹야원)

산스크리트어로 ‘사슴의 땅’ 석가모니가 최초로 불법을 전한땅으로 불교 4대 성지중 하나다. 다메크 수투파=부처님이 처음으로 설법한 장소이자 부처님 사리를 모신 곳, 넓고 시원하게 펼쳐진 경내는 좌우에 옛 사찰과 불상을 모셨던 수많은 기단들이 허물어진 잔해로 우리를 맞이했다. 조선시대 탕건의 모습처럼 형태는 매우 단조롭고 투박했다. 우리는 탑돌이 7바퀴를 돌고, 공원처럼 넓은 잔디밭을 걸었다. 보리수는 지혜의 나무라 신성시 하며 부처님을 상징한단다. 가부좌한 부처상의 손 모습은 모든 문제는 자기로부터 나왔으며 그 해결도 자신이 풀어 나가야 한다는 심오한 뜻을 이제사 알았다.

바라나시
바라나시


바라나시를 보지 않았다면 인도를 본 것이 아니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미국의 대문호 ‘마크 트웨인은 "역사보다, 전통보다, 진실보다 오래된 도시"라고 말했다.

우리는 호텔에 짐을 풀고 오후 4시반 고들리아 중앙광장으로 릭샤를 타고 ’푸자‘의식을 보러 갔다. 인구 250만명, 인도 비단산업의 중심지. 사이클 릭샤의 도시, 힌두교 최대의 성지이며 오랫동안 영성과 요가의 중심지로 명성을 지닌 곳이다. 이곳 사람들은 영적인 빛의 도시 ‘카쉬’로 불리길 원한단다.

대부분이 좁은 골목길로 이루어져 있어 릭샤꾼은 손님을 싣고 롤라코스터를 몰듯 혼잡한 물결속을 미끄러지듯 달린다. 릭샤는 두발로 몸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일년 4계절 24절기가 소리없이 흘러가듯 서로 비비대며 부딪치고 떠밀고 이끌면서 자연스레 흘러간다.

보트투어는 일출과 일몰 무렵이 장관이란다. 노을에 물드는 강가의 모습, 강가와 가트가 만들어내는 풍경만큼 충격적이고 감동적인 건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만큼 인상적이다.

가트는 강가의 계단을 뜻하는 말로 다섯줄기의 강이 합류하는 곳이며 바라나시는 약 1천여개의 가트가 있다. 갠지스강은 인도인들에게 힌두교 7대 성지중 제 일의 성지, 번영을 베풀어 주는 존재요, 구원을 보장하는 어머니로서 친숙한 존재. 신의 강, 어머니의 강. 힌두인들의 자존심의 상징이다. 갠지스 강물에 몸을 씻으면 자신의 오염된 영혼이 치유된다고 믿는다. 살아서는 물론 죽어서도 갠지스 강물에 뿌려지는 걸 축복으로 여긴다. 이승에서 살 때는 기쁨으로 죽은 뒤 내세에서는 희망으로 다가서는 존재, 곧 삶과 죽음을 하나로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고지순의 종교적 신앙심, 원초적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솔직한 세상이 바로 이곳이 아닌가 싶다. 바라나시는 사랑스러운 맛, 경건하고 활기찬 도시라 생각되었다.

드넓은 강 위로 수백척의 크고 작은 보트들이 관광객, 순례자를 태우고 기다린다. 조용히 흐르는 강물위에서 벌어지는 ‘푸자의식’ 사제의 역동적인 춤사위가 휘황찬란한 불빛과 더불어 향 연기는 광장의 넓은 공간에 자욱하다. 화장되는 영혼들은 불과 연기와 강물에 따라 신에게로 다가갈 것이다. 사람과 소의 배설물부터 덜 탄 시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부유물이 떠 다니지만 힌두인들은 경건한 자세로 얼굴과 몸을 씻고 기도를 올린다. 오늘날까지 신 사상의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진 바라나시가 인도 제일의 전통 교육도시로 명성을 떨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특히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단다. 가트위의 웅장한 이슬람 사원 ‘알람가르모스크’는 1천500여년간 시바신을 모신 ‘비쉬와나트’ 사원이 있었던 곳이지만 아우랑 제브가 라마사원을 부수고 세운 것이다.

황금사원은 1776년 인도르의 ‘아할야바이’가 지은 사원으로 라호르(파키스탄)의 마하라자 ‘란지트’싱이 800㎏에 달하는 금을 시카라(북인도 형식의 사원)탑에 씌운 뒤부터 황금사원이라 불리게 됬단다.

마니까르니까가트 화장터는 규모가 크고 오래 되어서 바라나시를 대표하는 화장터이다.

힌두교인들은 이곳에서 화장된 뒤 갠지스 강에 뿌려지면 영원히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가트 옆 큰 건물들은 병원, 요양소, 호텔들로 죽음을 기다리는 손님들로 가득하다. 배로 시신을 실어오면 Dali들이 ‘라마신은 알고 계신다’라고 외치며 시신을 화장터로 옮기는데 가까이서 볼 수는 있어도 사진은 절대 찍어선 안된다, 사진에 찍히면 영혼이 사라진다고 믿기 때문. 대나무 우산이 쳐진 곳은 순례자들의 의식을 도와주는 뿌자바바가 있고, 주변에는 여러 성구를 파는 사람들이 있다. 1194년 이슬람 세력이 무려 3세기 이상 통치하며 사원을 파괴했고, 학자들을 무참히 학살했던 아픈 과거를 가슴에 묻고 강물처럼 조용히 흐른다.

인도인들은 목욕을 잘 안하는 민족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들에게 목욕이란 단순한 위생문제를 떠나 정신의 때를 말끔히 씻어내고 정화시키는 종교적 행위에 가깝다. 강에 몸을 담글 때는 마치 의식을 행하듯 머리는 항상 동쪽을 향하고 입으로는 만트라(Mantra)를 외운다.

카주라호

인도항공 Jet Airways 항공을 타고 인도 유적지중 가장 에로틱한 도시로 불리는 카주라호로 향했다. 국내선은 짐이 15㎏이상이 되면 초과금이 붙는다. 줄인다고 줄였는데도 2백루피 벌금을 물었다. 그것도 꼭 인도 루피만 고집, 달러를 받지 않아 난리가 났다.

땅이 넓다 보니, 밭두렁 표시도 대리석이다. 먼저 호수가 있었고, 넓게 펼쳐진 푸른 잔디, 물안개, 피어오르듯 서있는 나무들, 1000년 전의 신화 속에 들어선 느낌이다. 녹색의 정원을 거닐며 편안한 마음으로 사원을 구경하니 여긴 분명 신들의 정원이었단 생각이 들었다. 인도인들의 생활과 결코 뗄레야 뗄 수 없는 신들에 관한 이야기를 가득 담고 우리들을 신화의 세계로 인도해 주었다. 보는 이를 당황스럽게 민망스럽게 할 만큼 노골적인 조각들이 동,서,남으로 나누어진 사원군의 외벽에 수없이 많은 에로조각 미투나(mithuna)가 부꾸러움 없이 속살을 보여준다. 미투나 조각은 대담하고 정교함과 다양함, 직선적인표현,창의적인 성행위의 형태를 고루 갖춰 인도의 성애서 까마수트라(Kamasutra)의 원전이 카주라호란다.

신성해야 할 사원에 일반 종교에서 금기시하는 성행위 조각이라니, ‘마하트마 간디’는 ‘모두 부셔 버리고 싶다 라고 했다나’, 금욕주의자들의 분노를 살만큼 노골적이지만, 원래 인도인들은 추상적인 사고와 함께 구체적이고 관능적인 현세의 쾌락을 선호했다. 인도가 아시아 대륙의 북쪽에서 남쪽까지 넓게 퍼져 있듯이 그들의 사상 역시 폭이 넓었다. 그 안에는 금욕도 존재했고, 방탕도 존재했다. 종교와 성이라는 기묘한 접합과 조각상의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의 흥미와 관심을 끌어왔다.
사막의 여인들


쉬즈마할

호텔 쉬즈마할은 인도에서 가장 저렴한 궁전 숙소중의 하나로 꼽혀 인기가 높다.

인도의 잔다크라 불리는 락쉬미바이궁전은 성벽만 남은 채 성안은 건물 하나 남은 것 없이 세월의 덧없음을 일깨워 주었다.

모두 가족끼리 나들이 온 모양, 깨끗한 옷에 봉지봉지 먹을 것을 싸 들고 사진찍고, 난리들이다. 언덕 위에 우뚝 솟아 있는 성벽은 장엄함과 그 길이가 어마어마해 말하지 않아도 지난 날의 영광을 알 것 같았다.

성벽 위에서 내려다 본 도시는 색색의 점들을 찍어 놓은 듯 정말 작고 예쁘다. 영국군에 대항해 싸우다 아이와 함께 장렬히 전사했다니, 이곳에선 신처럼 추앙받는 인물이란다. 인도 가는 곳마다 뒤에 아들을 앉히고, 칼을 높이 치켜든 여인 동상이 가끔씩 눈에 뛰는데 바로 인도의 잔다르크다.

잔시역

인도에선 되는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고 그저 느긋하게 기다리면 다 해결되는 것 같다

기차가 연착, 긴시간이 지겨워 역내를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인도인들은 유난히도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지, 젊은이들로부터 수없이 모델이 되었다.

개인 트위트에 올리고 많은 사람들게 자랑 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의' 천안'도시 정도 되는 교통의 요지로 델리→뭄바이, 캘커타→뭄바이를 오간다. 인도는 어느 곳보다 철도 교통이 좋은 곳이다.

역에서 주는 식사가 간식 정도겠지 했지만, 끝도없이 풀코스다. 양이 어찌나 많던지 우리의 4인기준에 정식이 나오고 애프타이저까지, 인도철도 최고! 중간 아그라에서 내려야 하는데 일행들 좌석이 천리로 떨어져 우리는 이산가족 방지책으로 조를 짜고, 조장을 두었지만, 아그라역이 양쪽으로 고속도로에 얼마나 넓은지 저절로 미아가 되었다. 인도 가이드 ‘산딥‘은 우릴 찾느라 기차칸을 돌며 찾아 해매는 등 50세의 나이로 기차에서 뛰어내리는 수고를 겪기도 하였다.

우린 다른 조 찾느라 대합실을 해매고, 우리나라가 작은 게 좋다는 걸 감사히 여기면서 무사히 아그라의 Jay Pee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무등일보 zmd@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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