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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의 삶 장터의 맛 <8> 벌교5일장-개떡도 팔고, 개떡 같은 세월도 팔고
"벌교에서 주먹자랑하지 마라"
벌교시장은 '벌교에서 주먹자랑하지 마라'는 '전설의 주먹'이 탄생한 장소이기도 하다.
경술국치를 2년 앞둔 1908년, 당시 낙안군에 살던 안규홍이라는 장사가 벌교장터에서 일본 헌병을 맨주먹으로 때려 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안 장사가 벌교 장터로 나무를 팔러 갔다가 일본 헌병이 조선인을 채찍으로 내려치는 것을 목격하고 한 주먹을 날렸는데 그만 헌병이 죽고 말았다.
항일의식이 확산될 것을 우려한 일제가 이에 대한 보복으로 당시 벌교지역이었던 낙안군을 없앤 뒤 벌교 지역을 분할, 지금의 순천과 보성으로 편입해 버렸다. 지금은 1만3천명 남짓의 주민들이 사는 작은 읍으로 쇠락했지만 당시만 해도 벌교는 5만 여명이 거주하는 교통과 상업의 요충지였다.
'벌교의 주먹'은 어쭙잖은 건달의 주먹이 아니라 정의의 주먹이자 항일의 기개인 것이다.
입력시간 : 2017. 12.25. 00:00


그물 망태에 담겨 가게 앞 가판대에 쌓인 벌교 꼬막. 꼬막은 벌교의 하나에서 아홉이 됐지만 벌교시장에는 여전히 본래의 아홉이 남아 있다.
자동판매기의 '벌교'버튼을 눌렀더니 '꼬막'이 '툭'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한 번 더 눌러도 마찬가지였다. 열에 아홉이 '꼬막'이다. 오래전 모 방송국의 예능프로그램에 소개된 이후 꼬막은 벌교의 하나에서 아홉이 됐다. 아홉이 된 꼬막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꼬막의 전국화에는 기여했지만 대신 수요가 공급을 앞서면서 '한 바구니 삶아서 푸짐히 먹었다'는 말이 전설이 되고 말았다. 꼬막에 밀려버린 본래의 아홉은 어디로 갔을까. 벌교5일장에서 본래의 아홉은 하나 되기를 거부한 채 여전히 아홉으로 남아 자리를 지켰다.

벌교5일장은 4일자와 9일자에 장이 선다. 벌교역 3거리에서부터 장은 시작됐다. 별도의 장터라기보다는 도로 좌우로 난전이 형성되고 난전은 상설시장인 벌교시장 안으로 스며들었다.

벌교5일장에는 의류나 그릇 등 공산품이 드물었고 농산물과 해산물이 풍성했다. 장터에서는 인근의 농촌과 어촌에 사는 할머니들이 직접 농사를 짓거나 갯벌에서 채취한 각종 농수산물을 가지고 나와 팔았다. 특히 여자만과 순천만 등에서 잡은 꼬막, 새조개, 키조개, 운저리, 장어, 낙지, 굴, 파래, 매생이 등은 막 건저 올린 듯 식지 않은 체온으로 싱싱했다.

벌교5일장의 시간은 정중동으로 흘러 차분했다. 별도의 먹거리 코너나 이벤트 등이 열리는 공연무대도 없고, 장터의 감초격인 각설이가 없는 것도 한 몫을 했지만 스피커를 앞세운 트럭의 장꾼이 없어 더욱 그러했다.

분주하지 않는 장터에서 상인들은 손님에게 다가서기보다는 손님이 오기를 기다렸고, 손님들은 필요한 곳에 스스로 머물며 장을 봤다. 쫓기지 않아서 좋은 발길을, 붙들어 매지 않은 마음이 뒷짐 지고 따랐다.

◆ 꼬막과 함께 '양다래'도 일품

벌교의 '아홉'이 되어버린 꼬막은 그물 망태에 담긴 채 주로 장터 도로변의 가게 앞에 쌓여 팔렸다. 까무잡잡한 참꼬막과 희멀건 새꼬막, 털복숭이 피꼬막이 '꼬막'이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함께 했다. 참꼬막이 새꼬막에 비해 3배 이상 비쌌다. 참꼬막은 3㎏에 6만원, 5㎏에 10만원을 호가했고, 새꼬막은 3㎏에 2만원, 5㎏에 3만원을 불렀다. 플라스틱 쟁반에 담겨 5만원 단위로 파는 피꼬막은 크기에 따라 6개나 9개가 올려졌다.

늘어선 가게에서는 주먹 만 한 각굴도 그물 망태에 담겨 팔렸는데 10㎏ 기준으로 2년산은 1만2천원, 3년산은 1만5천원에 거래됐다.

벌교에는 꼬막 말고도 으뜸으로 치는 참다래(키위)가 있다. '꼬막' 만큼의 유명세는 아니지만 벌교의 참다래는 맛과 품질 면에서 전국 최고로 칠 만큼 뛰어나다. 무농약의 비옥한 땅에서 풍부한 일조량과 인접한 바다의 해풍을 맞아가며 자연과 인간이 함께 키워낸 결실이기도 하다.

양다래도 꼬막처럼 그물 망태에 담겨 10㎏ 기준으로 과실의 크기에 따라 3만원 또는 2만원씩에 팔렸다. 단맛이 강한 골드키위가 새콤한 맛의 일반 양다래보다 조금 더 비쌌다.

벌교시장 입구인 농협 하나로마트 옆에서는 난전의 아주머니가 운저리를 팔았다. 어른 한 뼘 크기에서부터 30cm가 넘는 것까지 섞인 운저리 15마리를 1만원에 팔았다. "한 마리만 더 주라"는 손님의 말에 주인아주머니는 "운저리는 지금이 씨알이 제일 굵을 때"라는 말을 앞세운 뒤 그중 작은 걸로 두 마리를 골라 덤으로 얹었다.

◆ 금순씨가 '뻥~' 터졌다

장터안의 노점에서는 첫물의 매생이가 선을 보였다. 푸른 윤기를 머금은 매생이는 한 움큼에 6천원이고, 비슷하게 생긴 감태파래는 2천원이라고 했다. 매생이는 이웃집 소녀의 머릿결을 닮았고, 감태 파래는 늙어가기 시작하는 소녀의 엄마 머릿결을 닮았다.

"매생이는 올 들어 처음 갖고 나왔는데 솔찬히 비싸제? 인자 내려갈 것이여." 노점 할머니는 첫물의 매생이 가격이 어쩔 수 없이 비싸서 어쩔 수 없이 미안했다. 하지만 시장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왔을 때, 할머니의 '비싼' 매생이는 다 팔리고 '값싼' 감태파래만 여전히 매대를 지켰다.

맞은 편 약초상 할머니는 "내가 보니 당신들 호랭이다"라고 한 마디 뱉은 뒤 입을 다물어 버렸다. '호랭이?' 메모지를 들고 카메라를 맨 내 꼴에서 퍼득 '원산지 표시 단속반'을 떠올렸다. 동행했던 이관행 친구가 불쑥 민감한 질문을 던진 탓이다. 약초 하나를 가리키며 국산이 맞느냐고 물어 본 것이다.

생 우슬과 말린 당귀는 각각 1근에 2만원씩 했는데 함께 넣어 달여 마시면 '관절에도 좋고 집안에는 향기가 가득해 진다'는 유혹에 '호랭이'가 아님을 증명할 겸, 슬그머니 넘어갔다. 생 겨우살이는 1㎏에 1만원을 불렀고, 지초는 양식은 1만5천원인데 비해 자연산은 6만원으로 가격차이가 많이 났다.

할머니는 '개떡같이'를 입에 물고 살았다. "우슬은 할아버지가 산에서 캐왔는데 개떡 같다"던 할머니는 인삼 한 뿌리를 더 달라는 아주머니에게 "새끼주면 근다 할 것 같아서 큰놈 하나 더 줬더니, 개떡같이 또 주라하네"라며 웃었다.

할머니는 이름을 물어보아도 "그건 뭐 할라고 개떡같이 물어봐"라고 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영업허가증에 적힌 이름을 보고 '금순씨~'라고 불러드리자 입에 물고 있던 '개떡같이'를 놓아버린 뒤 그만 '뻥~' 터지고 말았다.

◆ 어머니 생신떡이 따뜻한 이유

순천아랫장과 과역장, 조성장, 벌교장 등 4군데 오일장을 돈다는 올해 일흔 하나의 이금순 할머니는 "이젠 나이도 들고 해서 한 군데쯤 줄일라고 해도 그게 마음처럼 잘 안 된다"고 했다.

'광주 사는 며느리가 김장하러 내일 온다 길래 굴 사러' 장에 나왔다는 이용림 할머니(78·율어면)는 돌아가는 길에 '우리 집 영감'을 위해 시장 길목 3거리의 어물전에 들렸다.

할머니는 "우리 집 영감이 장어를 얼매나 좋아하는지, 구어 줄라고. 아짐씨, 대그빡은 띠어서 따로 싸 주시오"라고 했고, 역시 할머니만큼이나 나이가 들어 보이는 노점 '아짐씨'가 익숙한 솜씨로 장어를 손질하며 "겁나게 맛있어라우"로 화답했다. 손질된 갯장어 10마리가 1만 원 권 지폐 한 장과 교환됐다.

'우리 집 영감'과 함께 농사짓고, 소 키워서 오남매를 다 대학 보냈다는 할머니는 "애들 학교보내다 보니 몸이 망가졌다"면서도 큰 아들네 손녀가 회계사에 합격하여 순천에 프랑카드가 내 걸렸고, 둘째 아들 손자가 이번에 경찰이 됐는데, 서울 사는 셋째 아들은 '엄니, 별일 없냐'며 날마다 전화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에게 굽은 허리는 망가진 몸이 아니라 간난의 삶을 이겨 낸 훈장이다.

자식을 키우기 위해 억척스러워야만 했던 우리의 어머니들에게 세월은 '개떡같이' 흘러가고 허리는 휘어졌지만, 그게 어찌 '개떡 같은' 삶이겠는가.

아는 이라고는 하나 없는 벌교시장에서 누군가 반갑게 인사를 건네 왔다. 고향이 벌교인 직장 동료 양봉수 팀장이 어머니 생신을 맞아 주문한 떡을 찾으러 아내와 함께 시장에 들렸다고 했다. 그가 맛보라며 건넨 생신떡은 따뜻했다. 떡이 따뜻한 것은 방앗간에서 방금 나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들 어머니의 '개떡 같은' 지난 세월에 바치는 아들의 헌사가 뜨겁기 때문일 것이다.
여자만의 장대가 허연 속살을 드러낸 채 건조대에서 햇살과 해풍에 말라가고 있다.


◆ 소화다리와 홍교에 서면…

요즘 장터의 튀밥 집에서는 못 튀기는 게 없다. 흔히 말하듯, '비행기 날개'와 '책상 다리'만 빼고는 모두 튀긴다. 쌀이나 보리, 옥수수는 고전이 됐고 이제는 무나 당근 말랭이, 둥글레, 돼지감자, 작두콩 등을 튀겨 낸다. 보리차처럼 끓여 마시는 용도로 쓰인다.

튀밥 집 옆에서는 회천면에 사는 올해 일흔의 '김가 아주머니'가 난전을 펼쳐 수수깡으로 만든 빗자루를 팔았다. "요즘 누가 이걸 빗자루로 쓰기나 하나. 그냥 문간에 걸어 놓으면 복이 들어온대. 장사해도 나는 뻘이여 뻘, 빗자루 사가는 사람들이 가르쳐주었어" '뻘'을 자칭하는 김가 아주머니는 수수깡 빗자루를 하나에 5천원 받고 팔았다. 쓰레기를 쓸어 모으던 빗자루가 세월이 흘러 복을 쓸어 모으는 귀한 신분이 됐다. 빗자루가 내게 말했다. "시간 앞에서 겸허 하라"고.

시장을 둘러본 뒤 1km 남짓의 벌교천을 따라 걷다보면 부용교(소화다리)와 홍교를 만나게 된다. 다리는 굴곡진 역사의 현장이자 조정래의 '태백산맥'에도 등장하는 장소들이다. 혼절할 수 밖에 없었던 다리의 역사는 까마득히 아프고, 벌교천의 강물은 하늘빛을 닮아 시리다. 걸어볼 가치를 다리에 내걸린 '설명문'의 간추림으로 대신한다.

<소화다리>는 일제강점기였던 소화 6년(1931년) 건립됐다. 부용교로 이름이 바뀌었으나 여전히 소화교로 불린다. 여순사건과 6·25때 양쪽에서 밀고 밀릴 때마다 이 다리위에서 입장이 바뀐 총살형이 집행됐다. 지금도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총알자국이 군데군데 남아있다.

<홍교>는 세 칸의 무지개형 돌다리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홍교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답다. 보물 제304호다. 원래는 벌교천위에 뗏목다리가 있었는데 홍수 때마다 떠내려가자 조선 영조5년(1729)에 순천 선암사의 승려인 초안과 습성 두 선사가 지금의 홍교를 건립했다.

벌교(筏橋)는 '뗏목다리'의 보통명사가 고유명사로 바뀌어 지명이 된 것이다. 뗏목다리를 대신하고 있는 홍교는 벌교의 상징이다.

조영석 시민전문기자 kanjoys@hanmail.net

"아~ 맛나!"- 대갱이 무침

대갱이 무침


특별한 맛이라기 보다는 한번쯤 먹어보아야 할 특이한 음식이다. 대갱이의 학명은 개소겡이로 뱀장어나, 드렁이를 닮았다. 바닷고기지만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기수지역의 뻘에 산다.

순천과 고흥, 벌교 등 서식지가 매우 한정된 탓에 다른 지역에서는 맛볼 수 없다. 옛날에는 수랏상에도 올랐고, 전량을 일본에 수출할 만큼 귀했으나 요즘은 예전에 비해 많이 나오는 편이다. 벌교시장의 노점에서는 까맣게 말린 대갱이 한 묶음(15~20마리)을 1만원에 판다.

시장의 동막식당에서 대갱이 무침을 맛볼 수 있다. 바짝 말린 대갱이를 북어 두들기듯이 두들긴 뒤 살결을 찢어 요리한다. 무침에는 파, 양파, 마늘, 청량고추, 참깨, 참기름, 물엿 등 갖은 양념이 들어가는데 반찬이나 술안주로 제격이다. 아직은 무침이 유일한 대갱이 요리다.

운저리 1만원어치


말린 대갱이


벌교 홍교


먼지를 쓸어 모으다 복을 쓸어모으신분으로 바뀐 수수깡 빗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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