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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사이드칼럼-나희덕의 예술이야기-만리장성을 다 걸은 후에
입력시간 : 2017. 12.26. 00:00


아브라모비치 작'여인들'
아브라모비치 작'예술가가 여기있다'


올해 처음으로 문을 연 제주비엔날레의 주제는 '투어리즘(Tourism)'이었다. 관광의 빛과 그늘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제주도로서는 중요한 화두가 아닐 수 없다. 초대된 작품 중에는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bich)의 다큐멘터리 '연인들 : 만리장성 걷기 The Lovers, The Great Wall Walk'(1988)도 있었다. 평소에 그녀의 작품세계에 관심을 가져온 나로서는 그 영상을 직접 보고 싶어서 비행기를 탔고, 한 시간 넘게 어두운 방에 앉아 눈으로나마 만리장성을 따라 걸었다.

아브라모비치와 그녀의 연인이자 동료인 울라이(Ulay). 다큐멘터리는 두 사람이 만리장성 양끝에서 각자 걷기 시작해 90일 만에 중간에서 만나기까지의 여정을 담고 있다. 붉은 외투를 입은 아브라모비치는 황해에서, 푸른 외투를 입은 울라이는 고비사막에서 걷기시작한다. 아직 겨울의 기운이 남아 있는 3월에서 여름이 가까워지는 6월까지, 두 사람의 걸음에 따라 계절이나 주변 풍경도 바뀌어간다. 광활한 산맥이 펼쳐지는가 하면 드넓은 들판이나 물가에 이르기도 하고, 염소 떼를 모는 유목민들과 만나거나 원주민 마을에서 음식을 먹고 바닥에 누워 잠을 자기도 한다. 낯선 풍경과 사람들 속에서 느끼는 경이로움이나 두려움은 여행이 우리에게 베풀어주는 선물이다. 특히, 길고 긴 도보여행이란 몸의 한계와 싸우면서 스스로 마음을 비워가는 정신적 여정이기도 하다. 비평가 토머스 매커빌리의 표현을 빌자면, 거대한 용을 닮았다는 만리장성의 내장 속에서 홀로 걸으며 두 사람은 "지표면을 한데 묶는 뱀의 힘"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은 왜 만리장성이라는 공간을 선택했을까? 여기에는 여러모로 상징적 의미가 있어 보인다. 동유럽과 서유럽에서 각기 성장한 두 사람은 일찍이 소련이 만들어놓은 '철의 장막'을 경험했다. 중국의 만리장성 역시 외적을 막기 위해 쌓은 거대한 성벽이자 배타적 경계선이다. 따라서 만리장성을 처음부터 끝까지 걸어낸다는 것은 장벽을 길로 여는 일이고, 냉전의 질서를 평화의 질서로 바꾸어내는 상징적 행위다. 그런 점에서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신체적 활동이 아니라 중요한 정치적·문화적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리베카 솔닛은 '걷기의 인문학'에서 걷는 행위를 바느질에 비유했다. "걸어가는 사람이 바늘이고 걸어가는 길이 실이라면, 걷는 일은 찢어진 곳을 꿰매는 바느질입니다. 보행은 찢어짐에 맞서는 저항입니다." 아브라모비치가 주로 수행해 온 퍼포먼스들이 세계의 전쟁과 폭력을 고발하고 그 상처를 치유하려는 제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연인들'에서 개인적 관계에 대한 탐구를 넘어선 사회문화적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이 지나친 해석은 아닐 것이다.

서로를 향해 걸어오던 두 사람은 1988년 6월 27일 산시성 선무현 근처 산길에서 마침내 만난다. 그런데 그 극적인 해후를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헤어지고 만다. 애초에 결혼여행을 계획했던 것이 우여곡절 끝에 이별식이 되어버린 셈이다. 영혼의 샴쌍둥이처럼 생일조차 똑같은 이 연인이 10여 년 동안 함께 해 온 시간을 정리하기에는 90일의 긴 고행의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많은 것을 비워낸 듯한, 마지막으로 포옹하고 돌아서는 두 사람의 짧은 미소가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돌연 헤어진 두 사람은 22년이 지나서야 잠시 재회하게 된다. 2010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에서 아브라모비치는 736시간의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예술가가 여기 있다 The artist is present'라는 제목처럼, 매일 7시간씩 석 달 동안 의자에 앉아 낯선 방문객들과 대면하며 1분간 말없이 서로의 눈을 응시하는 것이었다. 그 작품의 가장 극적인 장면은 옛 연인 울라이와의 만남이었다. 아브라모비치의 흔들리는 표정과 흘러내리는 눈물. 그녀는 자신의 규칙을 깨고 탁자 위로 두 손을 건넸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두 사람이 손이 다시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연인들'의 마지막에 지었던 짧은 웃음보다 말년에 이른 그녀의 눈물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은 내 나이 탓만은 아니리라.

시인.조선대 인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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