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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근의 미술기행- 베이징 798구
입력 : 2018년 01월 05일(금) 00:00


여행이란 공간과 정서에 질문하는 것이다
798예술구의 역사와 현실,
공장과 갤러리,
역사 흐름의 시간과 공간,
쓸모없이 남아 있는 기계들과
전시작품, 옛 붉은 벽돌과
현대적 실내등들의 종횡은
관광은 낯선 문화를 눈으로 접촉하여 앎을 넓히는 것이며, 여행은 역사와 문화의 질문에 답하고 공간과 정서에 질문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은 눈의 즐거움과 놀이의 재미를 찾는 관광을 넘어, 그동안 익숙함을 버리는 저항의 행위인 여행은 자기의식과 대상의식을 찾는 사색과 산책이다. 따라서 여행지 선택에 있어 필요 불가결 요소는 거기의 그곳에 역사와 문화의 질문에 답하는 지역민과 공간이 있어야 하고 우리는 공간과 정서에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찬란한 문화유산을 소유하는 곳이지만 지금 그곳에 답한 지역민과 공간에 질문할 수 없는 곳이라면 고고학자 외에는 아무도 가질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경제자산 보다 문화자산을 더 중시하는 선진국들은 끝없이 남김과 버림의 고민에서 남겨 다듬어 새롭게 하는 정책을 통해서 답하는 공간을 남겨 두고 질문하는 공간을 만든다. 남김없이 버리고 새롭게 하는 것은 역사의 물음에 침묵하는 죽음의 장소이며, 더 이상 질문에 대한 공간을 만들지 않는 상실과 단절의 벽을 만드는 곳이다.



관광이 아닌 여행지로서 광주와 베이징은 다르면서 같은 문화예술에 대한 특화된 지향점이 존재한다. 광주는 예향의 도시로서 ACC와 비엔날레가 있고 베이징은 798구 등 예술구역이 있다. 무안과 베이징 간의 시간은 매우 짧은 거리이지만 도착한 겨울 베이징은 온 도시가 갈탄과 매연 냄새로 가득하고 사야거리가 짧아 보인다. 눈과 코를 막는 이곳에서 예술의 보물지역을 찾는 설레임은 이 모든 것을 앞섰다.

광주에 예술의 거리가 있듯이 베이징 다샨즈 지역에 예술의 거리인 798예술구의 그 규모는 중국다웠다.

이런 규모의 예술구는 수천명 작가들의 작업실이 있는 '송장'과 광주시립미술관 베이징센터가 있는 '환철' 등과 같은 예술구역이 십여 개가 넘는다 하니 상상의 한계를 넘는다. 이곳 798구는 원래 옛 소련의 지원과 독일의 기술로 세운 군수산업 공장 지역 중 하나로 봉건에서 신중국 산업화 과정의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다.

동서 냉전이 끝나고 구식 군수산업이 필요 없게 되자 정부에 의해 이 일대는 새로운 도시계획에 의해 전자타운이 조성될 계획이었다. 그러나 2002년 일군의 예술가들이 이곳에 예술 공간을 조성하고 대외 예술행사를 개최하며 주목받기 시작한다. 결국 2006년 798 구역은 남김과 버림의 고민에서 남겨 다듬어 새롭게 하는 정책으로 전환하여, 역사에 답하는 공간을 남겨 두고, 새로운 질문하는 공간으로서 예술구역 798을 보존하게 되었다.



던'처럼 모두가 버려진 발전소와 공장지대 등이 예술의 메카로 진화된 것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798 예술구에 있는 공장 건축구조들은 당시 독일 바우하우스(Bauhaus)학교와 같은 도시에서 건축에 대한 마인드가 통했던 데사우(Dessau)라는 건축회사가 설계와 시공을 책임지고 건축하였다. 그들의 주요 임무는 각 군수공장의 실용성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과 당시 새로운 재료와 구조의 첨단 기술성과 바우하우스 미술적 가치성을 추구하여, 이를 반영하다 보니 다양하고 독특한 모양의 공장건물이 탄생한 것이다. 이런 안목과 훈련이 없는 사람들은 지금도 한낱 허름한 공장으로 보이지만 예술가 눈에는 최고의 작업 공간이며 보존의 가치로 보였던 것이다. 이들 건축들은 건축 소재는 거의 같지만 독립적인 구조와 공간의 설계를 통해 독특한 거리 공간을 구성하여 일률적으로 같은 형태를 배제 시켰다. 이들 내부 공간에 들어가 보면 더욱 재미있는 공간을 연출한다.

얼룩진 빨간 벽돌과 기와들, 거대한 생산 기계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거나, 천장은 온갖 파이프로 어지럽게 고정되어 있어 전시작품들과 교묘한 조화를 이루고, 이를 설명하는 갤러리 도슨트는 자기 갤러리 건축의 역사와

구조와 공간에 얽힌 이야기로부터 시작한 후 전시 작품설명에 들어간다. 이들 도슨트에 의해 이곳 이 공간은 798구의 역사와 함께 동행하도록 되살아 내고, 현재 지금과 내 앞의 멋진 시 작품을 보이게 만들어 낸다. 조그마한 것에서부터 세계적인 기획전시, 편리한 교통, 스타일이 독특한 건축 등은 결국 많은 문화예술업체, 예술가들의 작업실, 갤러리, 미술관, 패션숍, 멀티문화공간 등을 불러 오게 하였다.

이런 798예술구의 역사와 현실, 공장과 갤러리, 역사 흐름의 시간과 공간, 쓸모없이 남아 있는 기계들과 전시작품, 옛 붉은 벽돌과 현대적 실내등 들의 종횡은 완벽하게 하나로 융합되어 조화된 완벽한 아트로서 역사의 물음에 흔적과 도시 미학에 답하고 있다.

798 예술구의 눈으로 예향의 도시로서 광주의 위상을 보면 상징적 구호로만 존재한다. 왜냐하면, 역사의 물음에 답하는 공간을 제거하고 일반화 표준화의 성장 발전모델에 응답하여 지역과 마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긴 안목의 역사와 미래에 응답하는 문화자산에 대한 지향자와 경제자본의 발전 욕망자들 간의 서로 대립적으로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남겨야할 것은 이곳과 저곳에 역사의 흔적과 혼이 담겨진 이름인 지명과 거리이다, 광주읍성, 꼬두메(호두산), 밤실(율곡), 임, 방림, 돌고개, 근대건축물, 학생운동 등의 흔적과 이름에 답하는 공간은 사라지고 지우기를 통해 발전의 상징으로 '지구'라는 어느 지역에도 없는 개발공사들이 개발사업명이 그대로 점령하고 있다.

첨단지구, 문흥지구, 금호지구, 신창지구, 수완지구, 용산지구…. 지구는 독립 불연속 구획된 개발권력의 행정 편의적 영역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런 지구라는 말이 광주에서 지역민에게 그대로 사용하는 원조가 되었다.

개발 중심에서 나온 도시 발전의 행동은 역사 물음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공간들의 흔적과 이름 지우기에서 시작된다. 이제 광주가 먼저 예향의 도시를 되찾기 위해서는 역사의 물음에 흔적과 정신인 지명과 거리로 답하는 것이다.



즉, 흔적과 이름이 없는 도시는 이미 혼이 나가 정신이 없는 도시이며, 다시 정신 차려 도시의 혼이 들어 올 혼구녕(혼구멍)을 내어 되살릴 동력을 찾아야 한다. 의미 없는 '지구'에서 탈피하여 예향에 걸맞은 '예술지구' 가 하나쯤 생겼으면 한다.

'남김과 버림 그리고 남겨 다듬어 새롭게 할 것인가' 라는 의사소통과 역사의 물음에 답하는 공간을 강조하는 사회만이 미래를 열 수 있는 도시의 새로운 표상이 됨을 베이징 798에서 찾아야 한다.



김용근은

전남대 물리학과 출신으로 28세에 동강대 교수로 임용돼 창업보육센터장, 교수학습개발원장, 도서관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전공을 전환해 인문사회에 관한 다양한 연구와 대중강연을 전개하고 있다. 과학철학, 인문-예술-과학 융복합, 뇌과학 등의 대중 강의를 하고 있다. 학림학당을 창설, 인문학 보급운동을 펼치고 듣세뮤직카연구회를 통한 음악보급, 교육부 인문도시사업을 통한 융합인문학 보급 등을 전개하고. 화가로도 활동하며 미술평론 등으로 학문 간 융합화 운동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