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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칼럼-김요수의 꾸브랑 나브랑-낯선 관료
입력시간 : 2018. 01.16. 00:00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우리는 날마다 비슷비슷한 생각과 몸짓을 한다. 똑같지 않고 조금씩 바뀐다. 변화다. 더 행복한 삶을 꾸리려는 우리의 몸부림이기도 하다. 조금씩 바뀌지만 어느 시점을 두고 견주면 확 바뀌어 있다. 변화의 시간이 흘러 확 바뀌면 변신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성격)이 바뀌고, 몸(태도)이 바뀐다. 그리 많이 바뀌지 않았다면 모자람이 없는 만족의 삶이었거나 게으름이다.

나비는 알에서 애벌레로, 애벌레에서 번데기로, 번데기에서 나비의 모습으로 바뀐다. 변태다. 시간을 품는 동안 전혀 다른 모양으로 바뀐다. 변태란 말은 '비정상적' 성행위를 하려는 욕망을 일컬을 때도 쓰인다. '비정상'은 올바르지 않다는 뜻이다. 겉모습이 좀체 바뀌지 않았더라도 성질이 바뀌면 '변질'이라고 한다. 우유가 상해서 변질이 되면 먹을 수 없고 버려야 한다.

변화와 변신은 긍정의 뜻으로 자주 쓰이고, 변태와 변질은 부정의 뜻으로 자주 쓰인다. 변화와 변신, 변태와 변질은 처음엔 별 차이 없이 느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는 마음의 다짐이나 몸의 자세에 따라 그 차이가 크고,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도 엄청나게 다르다.

그런 말 가운데 전향과 변절이란 말도 있다. 전향은 갖고 있던 사상(신념)을 전혀 다르게 '바꾸는' 일인데 대개 특정 정책이나 추구하는 노선의 변화를 말한다. 변절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꿋꿋한 신념을 '팽개치는' 일인데 개인의 욕망이 끼어들기 때문에 기회주의나 철새라 불리고 심지어는 배신이란 딱지를 붙인다.

전향과 변절은 동전의 앞뒤처럼 자신의 관점과 남들의 관점에 따라 달리 읽혀지기도 한다. 일제강점기 때 왜노므시키에게 충성의 혈서를 쓴 군인이거나 알랑거림의 글을 쓴 문인들은 전향이라고 뱉었을지 모르나 그런 글을 읽은 사람들은 변절이라 했다. 일제강점기 때는 전향과 변절의 다툼이 있었겠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는 쉽게 구별이 된다. 사람들은 '역사가 알려 준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를 모질고 끔찍하게 빼앗았던 일본은 왜노므시키라 불러야 마땅하다.

전향과 변절 사이에는 제3의 경우도 있다. 마땅한 이름씨(명사)가 없으니 '영혼 없는 지아이(GI)'쯤으로 쓴다. 지아이(GI)는 특별한 일에 쓰려고 불러 모은 병사를 뜻하는 미국말인데 GI는 보통 '왜 그 일을 하는지'보다 '주어진 일'만 한다.

일제강점기 때 왜노므시키들의 뜻을 따르며 기사를 썼던 기자, 왜노므시키의 수사 지시에 따라 독립군에게 온갖 고문을 했던 검찰·경찰, 왜노므시키의 법률에 따라 독립군을 판결했던 판사가 영혼을 팔아치운 좋은 보기다. 그들이 아돌프 아이히만처럼 '맡겨진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이라며 억울해하며 울부짖는다고 그들이 판 '영혼'이 돌아오지 않고, 그들이 죽인 '영혼'이 돌아오지 않는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유대인의 체포, 강제이주를 비롯 600만 유대인 학살 책임이 있는 독일 나치스의 친위대 장교였다.

어느 정권에서 국무위원이나 핵심 장관급의 자리를 지냈다면 그 정권 인사권자의 철학과 영혼을 함께 했다는 뜻이다. 철학과 영혼을 함께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더라도 '영혼을 팔았다'고 봐야 맞다. 죗값을 줄이려고 아이히만처럼 시키는 일만 한 '단순 부역자'라고 둘러대도 말이다.

그런데 장관급 이상의 정권고위직을 지낸 사람들이 자신의 경력을 '국가자산'으로 포장하거나 '정책기술자'나 '행정의 달인'으로 애써 자위하며 전향이나 변절의 경계를 무시한다. 영혼을 판 인물(?)들이 철학과 지향이 다르거나 반대인 정권에 바로 참여한다면 '영혼 없음'이란 표현은 백 번 옳다.

아마 일제강점기 때 기자, 검찰, 경찰, 판사, 관료를 했던 사람들이 별다른 제재나 눈곱만한 반성 없이도 제 자리를 계속 지켰던 경험 때문에 '영혼 없음'에 별다른 양심의 가책을 못 느끼는지도 모른다.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이어온 우리 관료체질에서 전향과 변질을 구별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한때 정권이 바뀌자마자 말을 갈아탄 관료들을 보고 '김일성이 와도~'라는 비아냥거림도 있었고, 일제의 조선병탄 때는 '그 많은 고시(과거) 출신 수령방백들은 뭘 했냐'는 비탄도 있었다.


영혼이 '있는' 기자, 법조인, 관료는 그래서 귀하고, 진정한 선비의 향기를 뿜는다. 그런 분들 뜻밖에 많지만 권력에 따라 춤추는 고위직들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아무튼! 우리는 더 행복한 삶을 꾸리려면 조금씩 더 나은 쪽으로 바꾸려고 애써야 한다. 그것이 변태, 변질, 변절만 아니라면 말이다.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콘텐츠산업진흥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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