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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의 삶, 장터의 맛 -<10>구례오일장
산수유는 날지 못하는 새조개의 고향 산이 궁금했다
입력시간 : 2018. 02.09. 00:00


지리산의 오만 가지 약재가 차고 넘치는 구례오일장.
'전통시장'하면 당신은 어떤 모습을 떠올리시나요? 시골 정취와 함께 잊혀져가는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지요. 동네 수퍼마켓에서도 살 수 있지만 더 싱싱하면서도 값싸게 물건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장터의 일석이조죠. 물론 진기한 물건도 만나보고 장터 특유의 먹거리도 있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너무 한적해도 안 되지만 그래도 혼잡하면 싫다고요?

꽤나 까다로운 분이군요. 그럼 구례오일장에는 가보셨나요?

구례오일장이 그랬다. 규모나 면적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장터는 풍성했다. 여느 오일장처럼 쇠락하거나 스산하지도 않고, 그와는 반대로 정신줄을 부둥켜안아야 할 만큼 번잡하지도 않았다.

먹거리는 무엇을 먹던 후회하지 않을 만큼 실속이 있었고, 장터에서 사람들은 지리산을 닮아 여유롭고 순박했다.

매월 3일자와 8일자에 열리는 구례오일장은 지리산주변에서 제일로 친다. 가수 조영남의 노래비가 세워진 하동의 화개장도 유명하지만 화개장은 종합시장이 아니라 약초시장으로 특화됐다. 하동사람들도 장을 볼 때는 구례장을 찾는 이유다.

구례장의 장옥은 모두 기와를 얹어 외관상 모습이 조선시대의 장터를 연상케 한다. 지난 2005년 마무리 된 시설현대화 사업의 결과다.

꼬리겨우살이


◆ 지리산 약초와 산나물의 본고장

구례오일시장 상인회에서 펴낸 '구례5일 전통재래시장 안내' 책자에는 '구례5일장을 무엇보다 유명하게 한 것은 산나물과 약재상이다'며 '지리산 자락에서 캔 각종 산나물과 들나물이 구례장을 풍성하게 만든다'고 소개하고 있다.

책자의 설명처럼 구례오일장에는 약초를 파는 장옥이 따로 있고 노점에서도 약재상을 자주 만난다. 약초를 파는 장옥에는 대추, 은행, 산수유, 생지황, 창출(삽초), 작약, 황기, 당귀, 오가피, 겨우살이, 영지버섯, 헛개나무, 느릅나무, 딱주, 더덕, 도라지 등 지리산에서 나오는 오만 가지의 약재가 쌓여 있다.

한 평생 지리산에서 약초를 캤다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머니와 함께 '자연약초건강원'을 운영하는 여도영(84) 할아버지는 '(지리산에서 약초를 캐며) 그걸로 늙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지리산 천황봉까지 단숨에 내달리던 스물 몇 살의 그 시절로 기억의 필름을 되돌렸다. "옛날에는 산에 갈 때 생쌀 조금 하고 볶은 소금, 된장 몇 숟가락만 가지고 갔어. 함구라고 아실까? 군인들 훈련가서 밥해먹을 때 사용하는 식기통 있잖아, 그거하고. 그러면 3-4일은 산에서 지내다 와. 밤에는 낙엽을 덮고 자고 그랬어. 그 때는 산에 약초가 많았는데..."

말을 끊고 잠시 회상에 잠겼던 할아버지가 "호랭이도 만난 적이 있다"며 전설 같은 '핫뉴스'를 꺼냈다.

"1961년도인가 그럴거야. 내 나이 스물다섯인가 여섯인가 됐을 때니까. 한 번은 비가 와서 잔다고 동굴로 들어갔어. 그런데 그게 개홀치 굴이었나 봐. 놀래서 숨죽이고 있는데 개홀치가 굴 밖에서 한 참이나 어슬렁거리다 나를 보고 그냥 가는 거야. 개홀치도 '저 아저씨 왔구나'하고 돌아간 거지. 호식(虎食)않고. 지금이야 그렇지만 옛날에는 산 밑에 살면 산신이 다 알아."

내가 물었다. "할아버지, 호랭이를 만났다고 하셨는데 개홀치는 또 뭐예요?"

지리산 곶감. 50개 한 묶음이 3만5천원이다.


◆'개홀치'는 어디로 갔을까

"개홀치도 호랭이 종류야. 개를 홀린다 해서 그렇게 불렀어. 그 때는 호랭이 보고 개홀치라고 하고 개홀치를 호랭이라고도 했어. 또 산신님이라고도 하고. 그 말이 그 말이야."

그 당시만 해도 지리산에 호랑이가 살았다는 증언이다. 한국호랑이는 일제시절, 일본인들의 무차별 포획으로 사라졌고, 1966년 환경부는 공식적으로 남한의 호랑이 멸종을 선언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지리산에 약초 캐러 다녔으나 지금은 못해. 산기슭에서 우슬이나 창출, 엉겅퀴 등을 캐기도 힘들어." 할아버지의 시간은 다시 현실로 돌아왔고, 돌아오지 못한 젊은 시절의 경험만 구례오일장에서 전설로 익어갔다.

시장 사거리의 노점 약초상은 더덕이나 버섯, 겨우살이 등을 팔았고, 산삼주나 말벌주도 전시품처럼 내어 놓았다. 자작나무 등에 기생한다는 '꼬리겨우살이'도 난생 처음으로 보았다. 쉽게 접하기 힘들다는 꼬리겨우살이는 잎 없는 줄기에 노랗게 빛나는 작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았다.

주인 사내는 "꼬리겨우살이가 일반 겨우살이에 비해 약효가 10배는 더 뛰어나고 가격도 더 비싸다"고 했다. 일반 겨우살이가 1kg당 1만원인데 반해 꼬리겨우살이는 6만원을 호가했다.

그는 주변에서 팔아달라고 맡겨서 가져 왔다며 메주 한 덩이를 2만원씩 받고 팔았다.

하지만 구례오일장에서 약초와 농작물 위주의 시장만을 생각한다면 그는 여지껏 구례오일장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게 분명하다.

팔각정 앞 난전은 물건과 상인이 서로 닮고, 또 달랐다.


◆포구 못지않은 산골시장의 어물전

구례오일장은 약초나 농작물 못지않게 어물전이 발달했다. 산에 기대어 살아가는 고장이다 보니 장은 바다에서 나는 물산을 필요로 했다.

붉은 빛이 선명한 싱싱한 아귀며 먹물을 뒤집어 쓴 갑오징어, 1m가 넘는 죽상어, 산낙지, 참돔, 미역, 김, 매생이, 꼬막, 굴 등 남해안의 여느 포구도 이보다 더하지 않을 성 싶었다.

중국 흑룡강에서 시집왔다는 하동군 화개면의 방미정(42)씨도 시어머니를 모시고 장보러 왔다. 방씨는 부부가 운영하는 어물전에 들려 갑오징어 가격을 물었다. 어물전의 남편이 아내에게 "오징어 이거, 어떻게 팔면 되는가?"라고 물었고, 아내는 "손질된 갑오징어는 3마리에 2만원, 손질하지 않은 갑오징어는 4마리가 2만원"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방씨는 손질하지 않은 갑오징어 4마리를 산 뒤 옆 가게에서 10재기가 든 매생이 한 박스를 1만원에 샀다.

상인회 이을재(70) 회장은 "여수와 하동, 광양 등에서 어물들이 몰려들고, 그러다 보니 그 지역의 사람들이 자기네 동네보다 구례오일장이 더 싸고 싱싱하다며 찾아 온다"고 했다. 그의 말에서 긍지와 자랑이 묻어났다.

특이하게도 구례오일장에서는 생선의 회를 떠주는 노점이 서 너 군데 있다. 숭어, 광어, 붕장어 등의 회를 포장하여 판다. 종류에 상관없이 한 접시에 1만원이다.

다만 새조개 회만 유독 차별나게 비쌌다. 새조개가 올해는 귀한 탓인지 500g 한 접시에 3만원이었다. 회 파는 아주머니가 투명한 비닐 봉투에 담긴 새조개를 가리키며 "야만 비싸!"라고 타박했다.

구례오일장에서 산수유가 새조개의 고향을 물었다. 산수유는 날지 못하는 새조개의 비릿내가 어느 산에서 묻어오는지 알 수 없었다. 지나던 아주머니가 "영감탱이 갖다 줄라고..."하며 비싼 새조개 한 봉지를 가리켰다.



◆동네 소식이 쌓이는 팔각정 앞 난전

장터 중앙의 팔각정 앞에는 60-70대 아주머니 10여명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볕바라기 하며 난전을 폈다. 마산이나 문척, 토지면 등에 사는 주민들이 직접 캐거나 농사지은 물건들을 가지고 나왔다.

난전은 고만고만했고, 물건들은 같고도 달랐다. 어떤 아주머니는 냉이와 시금치, 시래기, 말린 고구마 줄기를 가져왔고, 그 옆의 아주머니는 산수유와 대추, 밤, 곶감, 검정콩을 좌판에 펼쳤다. 그 옆의 또 다른 아주머니는 가시오가피 나무와 말린 고사리, 생강, 은행 등을 내어 놨고, 빨간 털모자를 쓴 할머니는 찹쌀 몇 되박과 메주 서 너 개를 앞에 놓고 졸았다.

젠피는 지리산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향신료다. 민물고기 요리의 잡내를 잡는데 으뜸이다. 누군가 젠피를 가르켜 '지상 최고의 향신료'라고 표현 했던 것을 기억한다. 졸고 있는 할머니의 난전에 '지상 최고의 향신료'인 말린 젠피가 소복이 쌓였다.

날은 차고, 오늘따라 손님의 발길은 좀처럼 머무르지 않았다. 하지만 난전의 아주머니들은 자신들이 내어 놓은 물건 앞에 언젠가는 멈춰 설 손님들의 발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시장은, 장사는 그런 날도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 매천사와 운조루에서 답을 찾다

구례의 내면을 보고 싶다면 광의면의 매천사와 토지면의 운조루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시대의 간절한 물음이 되고 있는 선비와 부자의 삶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 있는 곳이다.

매천사는 경술국치를 맞아 '나는 벼슬한 적이 없으니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다만 나라가 선비를 5백년간 길렀는데 나라가 망하는 날 죽는 자가 한 명도 없다면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라는 절명시를 남기고 자결한 매천 황현 선생을 기리는 사당이다.

운조루는 조선시대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종택이라는 건축사적 의미도 있지만 부엌에 남아있는 타인능해(他人能解)의 뒤주가 핵심이다. '타인능해'는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릴 때 '누구나 뒤주를 열어' 곡식을 가져가도록 배려한 '함께 사는 세상'의 참된 가치다. 재물층이 재물충이 되어가고 있는 탐욕의 시대일수록 '타인능해'의 가치는 빛을 발한다.

혹시 계절이 맞아떨어진다면 산동면의 흐드러진 산수유 꽃에 마음을 다 빼앗겨볼 일이다. 마음을 빼앗긴다는 것이 얼마나 황홀한 기쁨인가를 깨닫게 된다. 산수유 꽃은 3월말이 절정이다.

조영석 시민전문기자 (kanjoys@hanmail.net



'아~맛나!'



수구레 선지국밥

수구레는 소의 가죽 껍질과 살 사이에 있는 아교질의 얇은 막을 가리킨다. 지방이 적고 콜라겐과 엘라스틴 등의 성분이 많아 관절에 좋다고 알려져 있는 부위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흔히 접할 수 있는 음식이지만 주인장의 말에 따르면 호남지역에서 수구레국밥집은 구례오일장이 유일하다.

경상북도 청도에서 시집온 박경화(67)사장이 친정 어머니로부터 요리법을 배웠고, 친정 어머니는 다시 그의 시어머니로부터 배웠다고 하니 3대에 걸쳐 100년을 이어 온 맛이다. 선지의 부드러움과 수구레의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잘 어울린다. 가게이름이 수구레 선지국밥이다.





'지리산 오여사'의 수제돈가스

냉동하지 않은 생고기로 매일 직접 만들고, 만든 것도 냉동하지 않는다. 돈가스 전문점에서는 등심이나 안심을 주로 사용하는데 안심이 더 고급에 속한다.

'지리산 오여사'의 오민애(43)사장도 안심만 사용한다. 얼리지 않은 생고기에 반죽을 입혀 튀겨낸 탓에 겉은 바삭하고 안의 고기는 더없이 부드럽다.

깨절구에서 볶은 참깨를 갈아 매실엑기스 등으로 만든 소스에 버무른 뒤 찍어 먹는다.

토종밀과 국산들깨를 사용한 들깨칼국수와 영양들깨탕도 인기 있는 메뉴다.





'삼겹살데이'의 장닭떡국

지금은 사라져가고 있는 전통 떡국이다. 닭고기나 꿩고기를 이용한 떡국은 가끔씩 맛볼 수 있으나 장닭을 만들어 떡국을 끓이는 요리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없다. 구례오일장에서 그 맛을 볼 수 있다.

재료인 닭은 '삼겹살데이'의 오흥기(64)사장이 직접 키운다.

닭뼈를 푹 고아 우려낸 육수에 조선간장을 이용해 만든 장닭과 흰두부를 함께 넣어 끓이는 것이 특징이다. 진하면서도 고소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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