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3(수)광주 20ºC
쉼 > 레포츠
김허경의 미술기행- 오르세미술관
입력 : 2018년 03월 09일(금) 00:00


절충된 공간서 만나는 인상주의와 기차역 그리고 시민사회
오르세 미술관의 상징인 대형 시계 내부
밤하늘의 별빛이 강물로 쏟아져 내린다. 어느 쪽이 강물이고 밤하늘인지 경계 없이 별빛으로 일렁인다. 아름다운 명화, 고흐의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이다. 숲 속에서 나체의 여성과 정장을 갖춰 입은 신사들의 소풍 식사를 그린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원시성에 대한 동경을 드러낸 고갱의 '타히티의 여인'등 내로라하는 19세기 미술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 다름 아닌 파리의 오르세미술관이다. 파리를 방문하는 여행자하면 어김없이 발걸음을 재촉하는 곳으로 일 년 내내 미술관 앞이 북적거리는 것만 보아도 오르세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다. 우리에게 미술관은 당대의 문화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공간이기에 어느 사회, 어느 지역에 있어서나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1793년 설립된 루브르 박물관은 개인 수장고의 역할을 하던 작은 공간인 '캐비넷(cabinet of curiosities)'과 '갤러리(gallery)'를 병렬 배치하여 공개되었다. 방과 방으로 이어진 공간의 형태는 바로 박물관 건축의 전형이 되었다. 하지만 루브르 박물관은 전시물을 보존하는 수장고라는 공간특성 때문에 관람객들로 하여금 마치 성당 제단화와 마주하듯 제의를 위해 구조화된 공간 안에 머물게 한다.

이와 달리 1986년 개관한 오르세 미술관은 미술 작품을 '전시'하기 위한 즉, '공중'에게 보여주기 위해 절충된 공간 양식으로 새롭게 등장하였다. 원래 이 공간은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건설했으나 1973년 역이 폐쇄되고 호텔마저 영업이 중단되면서 철거의 위기를 맞았다. 이후 1977년 루브르 박물관의 소장 전시물 중 19세기(1894~1914) 회화, 조각, 장식 미술, 건축, 사진 등을 아우르도록 설계되면서 미술관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밟는다. 주변의 오랜 건축물이 다시 미술관이라는 새로운 환경으로 창출된 것은 바로 후기 산업사회의 역사적, 사회적 연계의 증거이자, 시민사회의 대두를 의미한다.



오르세는 '19세기 미술관'으로서 전시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기존 철도 역사와 호텔의 흔적을 살리면서 플랫폼과 철로에 해당하는 중앙 홀을 통로로 삼고, 중앙 통로의 옆쪽은 반개방의 캐비넷형 전시실로 활용하였다. 이러한 구조적 특성은 관람자들이 관람 도중 언제든 중앙 홀을 내려다 볼 수 있으며 순차적 경로, 서사적 통로를 따라 옆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로비의 전시실에 들어서자 경건함과 숙연함을 갖게 하는 밀레의 <만종>, <이삭줍기>, 쿠르베의 <화가의 아틀리에>, 앵그르의 <샘> 등 인상파 이전의 작품들이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인상주의를 선도적으로 이끌었던 마네의 <올랭피아>,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드가의 <발레수업> 등의 작품도 이어진다. 그들은 자연의 풍경, 시민사회의 일상을 묘사하는 것에만 머물지 않고 인간 소외, 갈등, 빈민의 삶 등 내면에 대한 '인상'도 다채롭게 담아냈다. 5층에는 미술도판의 책장을 넘기듯 거장들의 작품이 줄지어 펼쳐진다. 후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고흐의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를 비롯하여 세잔의 <바구니가 있는 정물>, 고갱의 <타이티의 여인들> 뿐 아니라 신인상주의 작가인 시냑의 <우물가의 연인들>에 이르기까지 벅찬 감동을 전해준다. 무엇보다 현실과 이상이란 이중주 속에서 갈등했던 고흐의 <자화상>과 색조 분할로 점묘법을 완성시킨 쇠라의 마지막 작품인 <서커스> 앞에 서니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2층 공간으로 내려가면 19세기 말 살롱회화와 자연주의, 상징주의 작가와 테라스 공간에 자리한 로댕, 마욜, 부르델 등의 조각 작품, 그리고 아르누보 공예품과 가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오르세 미술관과 인상주의 등장은 서로 닮아있다. 1853년 파리 시장 오스만은 낡은 건물과 시설을 새롭게 단장하기 위해 도시 재개발사업을 착수했다. 도로를 정비하고 확충하면서 카페와 음식점, 오페라 극장, 공원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 때 개설된 기차역은 파리와 농촌지역을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인상주의 화가들의 이동 수단이 되었다. 모네, 고흐 카유보트 등 인상주의 화가들은 어두운 실내에서 벗어나 직접 야외사생을 하고자 생 라자르 역을 자주 이용했으며 아르장퇴유, 퐁투아즈, 오베르 등 시골과 강변의 교외에서 작품을 제작하곤 했다. 빛과 색채를 탐구해 나간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기차역을 통한 도시의 이동은 이젤과 금속 튜브로 된 유화물감의 발명, 사진기술의 발달만큼이나 큰 영향을 끼쳤다.



오르세는 과거와 현재, 기차역과 미술관, 관람객과 미술작품이 서로 융합된 일종의 '총체적 예술'로서 우리에게 다가선다. 인상주의 대가들의 작품을 통해 진한 감동과 경험의 향유를 주는가하면 과거 건축물의 정체성을 껴안으며 새로운 문화공간으로의 탈바꿈을 성공적으로 이뤄낸 것이다.



21세기 예술의 대중화라는 시대적 요구에 의해 미술관은 없어서 안 될 문화공간이 되었다. 뿐 만 아니라 전시공간과 관련하여 어디까지가 작품이고 주변 공간인지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이제는 미술관 공간을 먼저 인식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위대 작가의 작품을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김허경은

전남대학교에서 미술이론을 전공한 미술학 박사다.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HK), 전남대학교 의학박물관, 한국미용박물관 학예실장과 아시아문화개발원 문화정보원 사업팀 조감독(책임연구원)을 거쳐 2016 국제여성미술제 큐레이터 등 역임했다.

현재 사단법인 광주미협평론분과이사, 프랑스문화학회 편집위원, 유럽문화예술학회 활동 중이며 전남대학교에서 강의, 연구를 기반으로 미술평론, 다수의 논문, 저술활동에 힘쓰고 있다.